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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Jan 21. 2023

여행기를 팔았다. 작가가 된 걸까.

미국 프로야구 구단 뉴욕 양키스에서 뛰면서 우승 반지만 15개를 수집한 전설의 포수 요기 베라는 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제안받은 때는 바야흐로 작년 8월, 불쾌지수가 하늘을 찌르는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었다. 하지만 원고료가 입금되고 모든 일이 마무리된 것은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계약서의 잉크가 미처 마르기도 전부터 입이 근질거렸지만 오래된 격언을 떠올리며 자중했다. 이 정도로 오래 걸릴 줄은 몰랐는데 어느 틈에 계절은 두 번이 지났고 사람들은 새로 찾아온 해의 복을 바라고 있다. 생각보다 늦어진 듯하지만 어쨌든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막연히 상상만 하던 일이었는데 현실이 되었다. 처음으로 출판사에 여행기를 팔았다.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간밤에 찾아온 더위를 쫓아내기 위해서 여느 때처럼 에어컨을 만지작거렸다. 컴퓨터를 켜고 주문을 확인하기 위해 인터넷 창을 띄웠다. 그러고 나서 네이버 블로그의 방문자 통계와 유튜브 채널 통계도 확인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같은 5,500명의 구독자와 함께하는 나의 유튜브 채널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나 다름없다. 하지만 사람 일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혹시 모르는 알고리즘의 기적을 바라며 채널 통계를 열지만 역시나 어림없.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라면 애시당초 기적이라는 이름이 붙었을 리 없다. 당연히 실망할 이유가 하나도 없지만 짧은 탄식이 새어 나온다. 하지만 괜찮다. 일상이다. 이내 또 다른 요행을 바라며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언제나처럼 적당히 주접스러우며 애매하게 쓸모 있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브런치에게서 날아든 메일을 발견한 건 그 부산스럽고 정신없는 아침이 지나간 뒤의 일이었다. 오늘은 누가 나를 스팸 메일로 귀찮게 할까 생각하며 열어본 메일함에 웬일로 유용해 보이는 제목의 메일 하나가 눈에 띈다.



'작가님께 새로운 제안이 도착했습니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메일이다. 약간의 의심과 매우 큰 기대를 함께 품고 열어 본 메일의 발신처는 어느 출판사의 편집부다. 여행기 한 편을 써줄 사람을 찾는 중인데 마침 내가 쓴 세렝게티 여행기가 마음에 드셨단다.



2016년 7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니 꽤나 오래되었다. 내가 만든 가방을 파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어 시작한 브런치였다.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해 모니터를 후려치고 싶을 만큼 졸필이었지만 나름 열심히 했고, 꽤 쏠쏠했다. 아마도 나의 노력을 어엿비 녀긴 어느 에디터님 덕분이다. 꽤나 많은 수의 글이 카카오톡 채널 메인과 다음 메인에 올랐다. 그 덕분에 나는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내 브랜드와 가방을 많은 분들께 알릴 수 있었고, 팔 수 있었다. 브런치는 나의 더할 나위 없는 벗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데면데면해졌다. 갑자기 시작된 이 시국 탓에 여행을 갈 수 없게 되었고 글을 쓸 건덕지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찾는 이도 줄 수밖에 없었고 그런 판국에 일감 같은 건 당연히 언감생심이었다. 간판밖에 없는, 간신히 셔터만 열어 놓은 집에 손님이 찾아들 리 없다고 생각했다.


출판사의 제안을 유난하게 느낀 이유였다. 이제야 비로소 손톱만큼이라도 쓸 만한 글을 쓰게 된 건가 싶어 조금의 안도가 되었다. 기대와 바람이 하나도 없었던 와중에 받은 관심이라 그랬는지 감사한 마음도 유난했다. 혹시 보고 계실지도 모르니 다시 전합니다.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계약서와 관련한 몇 차례의 대화가 오가고,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여행하면서 찍었던 사진을 다시 열었다. 마음에 드는 걸 추리고 또 추렸다. 계속 추렸다. 대부분의 사진들이 진즉에 보정을 끝낸 것이었지만 괜스레 부족함을 느꼈다. 자세를 고쳐 앉고 다시금 포토샵을 마주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집어넣었을까. 사실상 영혼을 봉헌하다시피 갈아 넣은 끝에 탄생한 열 장의 사진이 폴더에 차곡히 쌓였다.



그저 순조로울 거라 생각했지만 잘못된 생각이었다. 난관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게다가 생각보다 훨씬 녹록지 않았다. 그저 의욕만 앞선 탓이었을까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것일까. 키보드 위에 올려진 손가락이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않는다. 황량하기 그지없는, 주기적으로 깜빡거리는 커서를 제외한 그 무엇도 채워진 것 없는 화면 앞에서 나는 그저 황망할 뿐이었다. 머리를 잔뜩 싸매고 내쉬는 한숨은 혹여나 모니터를 뚫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쓰고 지우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을까, 기진맥진한 채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이 없다 느낄 즈음에야 원고가 완성됐다.



하지만 선뜻 보낼 수 없었다. 어째선지 글은 읽을 때마다 만족스럽지 않고 사진도 시원찮았다. 딱히 의미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지만 몇 번의 탈고와 보정이 이어졌다. 원고가 떠난 것은 최초의 계획보다 며칠이 더 지난, 어느 평일의 늦은 오후였다.



그렇게 원고가 내 손을 떠난 이후로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잡지는 아니었지만 출판사에서 돈을 받고 글을 쓰기는 처음이었다. 계좌에 꽂히는 돈도 아주 중요하고 궁금했지만, 그보다 애타게 기다린 것은 내 손으로 빚은 글과 사진이 세상의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찍은 사진과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완성한 문장이 두 면에 걸쳐 가지런히 담겼다. 그렇게나 기쁠 수가 없었다. 아마도 문장부호의 위치까지 외워 버린 글이지만 읽고 또 읽었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축제였다. 작가의 꿈을 간절하게 원한 적은 없지만 그럼에도 매일 글을 쓰고 사진을 찍는 나에게 벌어진 갑작스런 축제였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나. 한 번의 축제를 무사히 끝낸 나는 반절보다는 조금 더 나아간 듯하다. 어쨌든 글을 팔았으니 작가가 된 걸까. 아직은 민망스럽지만 언젠가는 나를 '여행 작가'라고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날이 오겠지. 그날을 상상하며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글도 팔고 가방도 팔고 돈 되는 건 다 팝니다. 글 사세요. 가방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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