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혁 Aug 05. 2023

똑똑, 새 가방 배달왔습니다.

또 다른 여정의 시작, 우리 가게 영업 합니다.

무려 반 년 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기 위해 들렀다. 언제나처럼 곡절의 파고를 넘나들며 부지런히 달린 지난 상반기였다. 누구나의 삶이 그러하듯, 반복되는 매일 속에 이따금 웃을 일이 있었고 머리를 싸매고 한숨 짓게 만드는 일도 있었다. 어쨌든 우직하게 살아냈고, 오늘도 그렇게 살아가는 중이다.



별반 다를 것 없어 보이는 매일의 반복인 듯했지만 돌이켜 보니 새롭다. 무엇보다 반길 만한 일은 고대하던 일상의 귀환이다. 물론 이 시국의 잔상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하지만 적어도 거리의 풍경 속에 그 우울하던 시절의 흔적은 더 이상 없다.


분명하다. 비행기에 몸을 실은 횟수만 세어 봐도 알 수 있다. 3년 가까이 이어진 영어의 시간을 상환 받기라도 하듯 나는 하루가 멀다하고 제주도로 향했다. 달마다 한 번씩은 꼬박꼬박 출석 도장을 찍었다.



변화는 그뿐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기쁘고 반가운, 그리고 즐거운 변화도 하나 있었다. 마침내 새로운 여정의 닻을 올리게 된 것이다.


여행 가방을 파는 나에게 이 시국은 빙하기보다 엄혹하고 잔인했다. 하지만 어쨌든 살아 남았고, 슬그머니 불어닥친 일상 회복의 봄바람을 타고 여행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도 마침내 돌아오기 시작했다. 몇 가지 프로모션을 더하니 기존 재고는 꽤나 빠른 속도로 소진이 되었고,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이른 시점에 주력 제품을 모두 팔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웅크린 사이에 세상의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그탓에 잠시 어리둥절하기도 했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정확하게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만 말이다.


생산 단가가 믿을 수 없이 올랐다는 뜻이다. 말 그대로 믿을 수 없이 올라 버렸다. 나름 대외비라서 입 밖으로 꺼낼 수는 없지만 생산을 접고 가방도 접어야 하나 생각했을 정도로 어처구니없이 올랐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나는 차라리 이것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기로 했다.



로고를 금속으로 교체하고 지퍼와 몇 종류의 소재도 조금 더 좋은 것들로 갈아치웠다. 눈에 띄는 변화가 대부분이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었다. 한 푼이 아까운 상황에서 이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었지만 이럴 때 하지 않으면 왠지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쉽지 않았다. 너무 오래 웅크린 탓에 잔뜩 굳어 제멋대로인 장사 근육은 일깨우는 것마저 쉽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꽤나 큰 도약까지 새롭게 해야 했으니, 그 과정은 돌이켜 보면 꽤나 깊은 심연 속에서 쉴 새 없이 이어진 갈등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겨냈고, 얻어냈다. 두 차례의 검증 끝에 완성한 샘플은 꽤나 만족스러웠고, 나는 곧바로 생산 공장이 있는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내 가방을 생산하는 공장은 베트남의 '하이퐁'이라는 도시에 자리하고 있다. 생소할 수 있지만 베트남 북부 지역 물동의 핵심 관문 역할을 하며 규모로는 세 번째인, 꽤나 중요하고 커다란 도시다. 비록 내 가방 공장은 택시 기사들조차 들어오기를 꺼려하는 꽤나 촌동네에 위치하고 있지만 말이다.



변한 것은 내 나이뿐인가 했다. 분주하게 돌아가는 미싱이 만드는 분주한 소음 속에서 익숙한 얼굴들이 나를 반긴다.


사실 매사에 시비나 걸고 검사하러 온 나의 존재가 딱히 반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워낙에 간만이라서 그랬나 보다. 서로의 얼굴에 미묘하게 번진 미소를 적어도 나는 읽을 수 있었다. 혼자만의 착각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시시각각 완성되는 가방들을 보고 있으니 비로소 실감이 난다. 자꾸만 붉어지는 눈시울이 갈 길 바쁜 나의 발목을 붙잡으려 한다. 벅찬 마음을 애써 떨쳐내며 완성된 가방을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2주 남짓의 시간이 지났다. 컨테이너에 실린 나의 신작 여가 오사카는 무사히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인천항에 닿았고, 마침내 물류 창고의 파레트 위에 안착했다.



그리고 이어진 무한 검수의 시간. 베트남 현지에서 아무 문제 없이 생산되고 있음을 확인했지만 너무나 오래간만의 생산인 탓이다. 한 번 더 확인하지 않으면 마음이 놓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모든 박스를 열어 한 놈도 빠짐없이 환영 인사를 나누었다.



포장이 살짝 튿어진 녀석이 하나 있어서 봉투를 교체한 것 말고는 문제될 만한 것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마지막 상자를 봉인하고 기분 좋게 검수를 마무리했다.



새로워진 가방이 새로운 손님들과 만날 준비를 모두 마쳤다. 어제도 그제도 장사는 하고 있었으니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하지만 마치 새로운 막을 열어젖히는 듯한 기분이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지만 오늘은 감회가 새롭다. 훗날에 나는 오늘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런지. 어느 2023년의 여름 한가운데에서 나는 마음에 점 하나를 찍는다.





마침내 돌아왔습니다. 트래블러스 하이 여가 오사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