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인혁 Aug 30. 2023

1호 구매평 손님, 6년 만의 재회

청운의 꿈같은 것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별 생각었다. 2년간 몸 담았던 첫 직장을 그만두면서 다음 걸음을 딛기 전 잠시 찍는 쉼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올해로 여행 가방을 만들기 시작한 지 8년째가 되었다. 만으로 따져도 7년이 넘었고 말이다.


아무 부담 없이 시작한 일이 생각보다 너무 순조로웠 탓이다. 반쯤은 등 떠밀리다시피 계속하게 된 일이었지만 정말로 열심히 했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열과 성을 쏟는 데에 스스로도 꽤나 진심이었고, 호응하는 손님들의 관심과 사랑 역시 의심의 여지없는 진심이었다.


갑자기 들이친 시국, 여행이 거세된, 그나마도 기약이 없었던. 그 기나긴 터널의 초입으로 향하던 찰나는 아직도 나의 뇌리에 선연하게 남아 있다. 가혹했다. 하지만 어쨌든 살아남았다. 잔뜩 웅크린 채 목숨 부지하기 바빴던 몸뚱어리도 웬만큼 툴툴 털어낸 지 오래다.


그렇게 나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필요한 일은 잘 팔리던 제품들의 지위와 역할을 제 위치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모든 재고를 털어낸 뒤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뜻밖에 지체되긴 했지만 얼마 전에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고, 녀석들은 새 주인을 찾아 떠날 준비를 마쳤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순조롭다. 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 녀석들은 오늘도 새 주인을 찾아 택배 기사님의 품에 안겨 옥천 허브로 향한다.



이미 가방을 사용하고 계신 고객님과의 재회는 언제나 즐겁다. 마치 자식을 출가시킨 부모 된 마음에, 재구매를 원하는 고객님들의 문의는 여전히 내 자식과 같은 녀석을  돌보고 계신다는 안부 인사 같아서 절로 아빠 미소를 짓게 된다.


어느날 올라온 질문의 주인은 내 가방과 함께 일본을 50번이나 다녀오 고객님이었다. '반값에 드려요' 프로모션이 가능한지를 물어오셨다. 구매 기록이 없는 탓에 문의를 남긴다는 단서와 함께 말이다.


구매 이력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유는 하나뿐이다. 아마도 와디즈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할 때 구매하신, '여가 오사카'진정 태초를 함께한 고객님이 분명하다. VIP께서 강림하신 것이다.


열과 성을 다해 모신다. 감사한 마음 가득 담아 기분 좋게 안내를 드리고, 간단한 확인 절차를 거친 뒤 배송을 마친다. 그리고 감사 인사를 전한다.



가방이 팔리는 숫자에 비해서 구매평이 너무 적어서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그래서 요즘은 평소보다 조금 더 간곡하게 고객님들께 구매평을 남겨달라는 부탁을 드리고는 한다.


물론 선택은 전적으로 고객님들 소관이기에 답장은 기다리지 않는다. 하지만 이날은 답장이 돌아왔다. 약간 뜻밖의 통성명과 함께 말이다.


나는 그렇게 여가 오사카의 1호 구매평을 남긴 고객님과 재회하게 되었다.



6년 반 만이다. 고객님께서는 그새 결혼을 하셨고, 조만간 아기가 태어난다고 하셨다. 지금까지는 여행을 위해 짐을 쌌지만 앞으로는 아기 용품으로 꽉 찰 것 같다며 웃음 짓는 고객님의 답장 앞에서 나는 핸드폰을 손에 쥔 채로 잠시 망연했다.


행복했. 그리고 포기하지 않은 내가 대견했다. 이 시국의 파도를 넘는 건 정말 쉽지 않았다. 지칠 때도 있었고, 때려치고 싶다는 생각 마치 밀물처럼 아침 저녁으로 셀 수 없이 들이쳤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덕분에 첫 번째 구매평을 남겨주신 고객님과 재회할 수 있었고, 첫 아이의 기쁨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장사꾼이다. 많이 팔고 잘 파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렇게 불현듯 찾아오는 보람이 없다면, 그 '잘 파는 일'의 현장인 매일은 나에게 그저 버티고 견뎌야 하는 것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는 오늘도 가방을 판다.


(소중한 아기와의 만남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이야기를 글로 남길 수 있게 허락해주신 것 역시 감사드립니다. 행복하세요!)




이게 바로 장사하는 보람이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