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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모 Jul 03. 2017

외로움을 인정하는 것

이별이 슬픈 것이 아니라

여름이 끝나가는 어스름한 저녁이었다. 비가 오기 전 부는 여름바람이 불었다. 나는 노을 질 때면 느끼는 조금의 슬픔을 안고, 혜화의 횡단보도에 서있었다. 나는 그쯤 집에 가며 음악을 듣고 있었는데, 당시 내가 만나던 남자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하루 정도의 잠수 끝에 온 전화는 예정된 것처럼, 이별을 말해왔다.

그 말이 전해지고, 통화는 끊어졌고, 기다리던 신호가 바뀌었고 듣던 음악이 다시 흘러나왔다. 아이유의 '싫은 날', 클라이막스 부분. 나는 일사분란하게 교차되는 사람들이 시야에서 흩어졌다. 쏟아지는 눈물에 그대로 걸을 수가 없었고, 누가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골목의 골목에 숨어 쪼그리고 앉아 울었다.

나는 당시 그 사람을 놓쳐서, 사랑을 잃은 슬픔에 운 것이 아니었다. 내가 너무 불쌍해서 울었다. 사랑을 받고 싶어서, 외로워서 시작한 만남이었다. 말수는 없어도 같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고, 만나는 것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 공허한 시간들을 채워주었다. 그 사람이 사귀자 말하지 않아도 마주친 사람 앞에서 요즘 만나는 사람이라 말하고, 의미 없음을 알면서도 그 사람이 먼저 끝을 말해주길 내심 기다렸다. 내가 가장 외로웠던 시기에, 내 곁을 가장 많이 내어준 사람이었다.

나에겐 커다란 구멍이 있었다. 그 구멍으로 외로움이 조금씩 새어나오길래 꽉 차게 막음새를 만들었다. 그 막음새가 나에게서 떠났을 때, 새어나오지 않길래 괜찮을 줄 알았던 외로움들이 쏟아져나왔다. 그건 횡단보도 앞에서 터진 나의 울음이었고, 쉽사리 멎지 않았다.

외로움을 인정하는 것은 힘들다. 자신이 그만큼 외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때 마다, 끊임없이 존재이유를 묻게 된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외롭지 않기 위해서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초라함에 버티지 못해 쉽사리 틀어막고는 하는 그 커다란 구멍 말이다.

그 구멍으로 나의 외로움 뿐만 아니라, 나의 어두운 내면찌꺼기 까지도 흘러가도록 내버려 뒀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2년 전 끝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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