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아빠는 꼴초였다. 나와 내 동생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린 우리 앞에서 담배를 뻑 펴대던 사람이었다. 벽지가 누렇게 되고, 담배 특유의 찌든 내를 맡을 때마다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스물여덟이 되었다. 다만 실연을 당하고, 삶의 목적이 없고, 어딘가로 달려나가야 한다는 사실이 숨막히는 스물여덟일 뿐이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직접 담배를 샀다. 그리고 다섯 개비를 피우며 그 연기에 질식했다.
사실 담배를 접할 수 있었던 적은 많았다. 고등학교 때 일탈 삼아 담배를 피는 친구들에겐 망을 봐주는 사람으로 남았다. 대학교 입학 후 우연히 입에 댔던 담배는 그냥 잠깐 삼아 일시적인 괴로움을 잊게 해주는 단순한 행위였다. 나는 이전까지 담배를 원한 적도, 중독된 적도 없었다. 그저 어린 시절 기억에 머문 아빠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으리라.
담배에 대해 진지하게 느낀 적은 고등학교 때였다. 한참 인소, 인터넷 소설을 읽을 때 어떤 책에서 그런 말이 있었다. ‘자신의 한숨을 보기 위해 담배를 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감상적인 말이지만, 나는 10년 가까이 된 지금 까지도 이 말을 기억한다. 담배는 인생을 회피하는 것이라는 인상이었다.
몇 년 만에 담배에 불을 붙이고 숨을 들이킨다. 그리고 담배는 나에게 어떤 존재로 자리잡았다. 사실 한숨을 쉬기보단 삼킨다. 그 담배의 독성이 내 속까지 스며들길 바라는 마음에서 삼킨다. 그리고 남은 숨을 내쉰다. 나는 그렇게 다섯번을 반복해서 폈다.
여태껏 나는 10대의 남은 독기를 빼내려 무수한 노력을 했다. 내 눈에 보이는 독기가 나를 해친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 독기가 사라진 지금 어떤 것도 원하지 않고 어느 방향성도 없는 나는 스스로를 깊은 늪에 처박고 있었다.
많은 것을 연속해서 잃었다. 독해지겠다고 생각했다. 혼자 국밥에 소주한병을 하고서 그 빌딩 화장실에서 입술을 빨갛게 칠하고 거울 앞에 섰다. 그 입술엔 담배가 어울릴 것 같았다.
어제까지만 해도 꺽꺽대며 울며 걸었던 거리를 담배를 물고서 걸었다. 어느 순간 왜 담배를 피는지 알 것 같았다. 쓸데없는 청승같거나 오글거림으로 보일 수도 있을테지만, 나는 내 안에 독을 집어 넣음으로써 그 순간의 고통을 마비시키는 울지 않을 독기를 필요로 했다.
나는 담배를 시작했다. 나는 한숨도 집어삼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