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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모 Nov 15. 2020

전남친의 현여친을 알게 된 기분

지난 사랑이 지워지지 않은 기분

헤어진 지 3년이 되어가는 남자친구가 있다. 내가 처음 사랑한다 말했기 때문에 마음 속으로 첫번째 남자친구라고 생각하는 남자. 헤어진 후 3-4달은 그 고통에 적셔진 채 이별에 갇혀있었다. 사실 말하자면, 어쩌면 만남, 연애, 이별까지 모두 내가 필요에 의해 만들었던 남자친구였다.


20대가 가기 전 뜨거운 사랑 한번 해봐야 하지 않겠냐며 적당한 남자를 골랐고 섣불리 사랑이라는 감정에 나를 밀어넣었다. 그리고 사랑한다 생각하며 2년 가까이 지속했다. 처음부터 끝을 생각했다. 그가 보여주는 진심어린 노력은 별순간 아무것도 아니게 될 때가 많았고, 그가 가진 매력을 넘는 단점들이 보이자 상처를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예상대로 헤어졌다. 처음 겪는 ‘사랑의 상실’이 크게 대단한 것처럼 속앓이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였는지 아닌지 스스로도 모르겠다.


그런 그의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던 내 습관은 새 환경, 새 남자친구를 만나며 확연히 줄었다. 인스타 아이디도 기억이 잘 안난다. 그런데 오늘 동네에서 그와 너무 비슷한 외모를 가진 남자를 얼핏 봤다. 나는 오늘의 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댓글들을 보다 문득 다시 그 남자를 떠올리며 오랜만에 그의 인스타그램을 찾아 들어갔다.


계정 피드를 내리다 낯선 여자를 봤다. 1주년 사진이다. 심장이 쿵 내려앉고 복잡한 마음이 든다. 생각들이 꼬리를 물기 시작한다. 그 여자의 계정으로 들어간다. 나랑 닮았으면서도 다를 그 여자를 보며 다시 먼지 쌓인 상자 속 기억들을 꺼낸다.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호감을 느꼈던 포인트, 사귀기 시작한 날, 내가 좋아하던 표정, 같이 쌓은 추억 사이사이 내가 불안해했던 모습, 사랑을 더 증명받기 위해 떼쓰던 모습, 그렇게 지쳐가던 이 사람의 표정, 마지막 헤어지자고 말하던 날의 공기. 그 사람이 떠나간 곳에 혼자 앉아있던 하얀 테이블. 그렇게 나를 정말 사랑했고, 나를 놓은 남자가 지난 1년간 다른 여자를 사랑했다.


전 남자친구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새 여자를 발견한다는 것은, 지난 과거의 좋았던 기억이 현재엔 없는 일이 되어버렸단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부터 시작된다. 분명 내가 사랑했던 사람을 지금 내 곁에 없도록 떠나보낸 것은 나였으므로 나의 부족함에 부끄러워진다. 이런 부족한 나를 경험한 뒤 만난 새 여자는 나보다 나은 여자일 것임에 질투가 난다. 이런 류의 복합적인 기분이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그건 꽤 지난 일이다. 지금 내 곁엔 사랑하는 다음 사람이 있다. 이 사람과의 사랑을 상실한다면,이라는 공포가 급습한다. 적어도 첫 이별만큼, 어쩌면 그 이상 아플지도 모른다. 그건 지금은 안될 일이다. 나는 지난 사랑으로 내 연애의 취약점을 알았다. 상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나만의 취약점. 그래서 당연하게 지금 연애에도 이 취약점이 끼어들어 관계가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사이 많이 성숙해졌다. 내 소중한 사람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취할 태도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다.

그래, 그것이면 되었다. 지난 사랑으로 인해 지금 사랑이 귀한 줄 알았으니 그것으로 되었다. 다시 꺼낸 상자를 지워버릴만큼 진하게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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