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온기를 먹고사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사회
"마음이 추운 사람은 증오와 분노의 온기를 먹으며 산다"
무슨 괴기 영화나 호러 영화의 외계 생명체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나 혹은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사람들, 유독 화를 잘 내거나 화가 많은 사람들의 특징을 이렇게 표현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한으로 생산할 수 있는 증오와 분노라는 감정은 단어에서 느껴지는 것과는 다르게 온기처럼 보이는 차가운 냉기를 발산하는 것 같다. 뜨거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화"라는 행동을 통해서 증오와 분노라는 감정을 토해 내면서도 내 마음속 작은 감정의 조각하나 조차도 태울 수 없으니 말이다... 오히려 증오와 분노를 발산하면 할수록 내 마음과 삶은 더 차가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거짓된 이미지로 포장된 온기 그리고 증오와 분노.
증오하면 분노하게 되고 그런 감정을 "화"라고 하는 행동으로 발산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뜨겁고 불타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자세히 그런 감정을 들여다보면 그 속 안의 깊은 곳은 습기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메마른 건조함과 차가움으로 가득하다.
마음이 추워진 사람은 증오와 분노의 차디 찬 붉은색으로 상대방이 다가올 수 없게 겁박을 주고 그 냉기로 내 마음속 감정의 상처를 꽁꽁 얼리고 "화"라는 거짓된 온기로 다시 한번 타인을 위협한다. 나는 우리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살고 있으며 또 그렇게 살아야만 하는가...
만일 내가 만드는 분노와 증오라는 감정으로 모든 것을 태워버릴 정도의 온도를 만들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완전히 녹여버릴 수 있을 정도의 융점을 만들어 나와 그 대상을 완전연소 시켜버리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모두의 마음의 분노와 증오와 상처는 전부 사라지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화"라는 것은 뜨겁지 않다.
마음에서 무한 증식이 가능한 증오와 분노는 매우 차갑다. 그래서 그런 감정을 만들면 만들수록 나와 내 주변을 차갑게 얼려서 딱딱하게 만들고 그 어떠한 냄새도 맛도 느낄 수 없게 만들고 그러한 감정들이 영원히 썩지 않게 만들어 버린다. 분노와 증오는 만들어 내면 낼수록 눈사람을 굴려 만드는 것처럼 더욱 크고 견고하게 내 마음을 얼려버린다.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 증오 그리고 그런 마음에서 느껴지는 분노 그리고 화라는 행동으로 연결되는 우리의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속엔 꽁꽁 얼어붙은 나 자신이 있다. 온기처럼 보이는 "화"라는 행동으로 상처받은 나를 녹일 수 있을 것 같아 분노와 증오를 이용하려고 하지만 실상은 얼어붙은 나를 더욱더 딱딱하고 견고하게 얼리고 있는 행동인 것이다.
"화"를 내고 있는 나는 분노와 증오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상처받은 나 자신을 혹시나 모를 세상의 나쁜 사람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내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대신 계속해서 나를 더 단단하게 얼리려고 하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외투를 먼저 벗기는 내기에 대한 해와 바람의 우화처럼 사람들로부터 상처받지 않고 나를 사랑하기 위해선 받은 상처보다 더 강하게 공격하고 나를 더 강하게 보호하기 위해 나 자신을 꽁꽁 싸메는 것이 아니라 솔직하게 내 마음을 열고 나를 더 사랑하는 행동이 아닐까...
사랑하는 마음은 항상 따뜻한 온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줄 때도 받을 때도 언제나 따스함이 느껴진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그 따뜻함의 온기를 더욱더 뜨겁게 올려 남은 내 마음속의 차가운 증오와 분노마저도 녹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