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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차의맛 Sep 28. 2020

6. 꿈이 틀렸다는 사실

그리고 새로운 모멘텀의 필요성

그토록 갈망하던 방송국 입사 그리고 방송 엔지니어 되기라는 '꿈'을 이루면 다 되는 건 줄 알았다. 

이제 힘든 날들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 사회생활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예비 직장인의 매우 나이브한 생각일 뿐이었다. 애석하게도 꿈을 이뤘다는 행복과 성취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입사를 하고 정말 운이 좋게도 내가 하고 싶었던 분야의 일을 맡았다. 부서가 생긴 이래로 처음 들어온 신입사원이었기에 여러 선배들의 관심을 받았다. OJT를 돌며 내가 속한 곳들의 일들을 경험해보고 배웠다. 또한 회사는 단순히 일만 하는 곳이 아니라 여러 명분과 입장들이 뒤섞여 있는 복잡한 조직이라는 것도 배웠다. 처음 몇 개월은 긴장감과 어리바리함을 탑재한 채로, 내 눈앞에 펼쳐진 것들을 머릿속에 흡수하느라 정신없었다. 그리고 문득문득, 아 내가 정말 이 곳에서 일하는 구나를 깨달으며 괜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나에게 역할이 주어졌고,이 일을 오래 맡아 온 선배한테 도제식으로 가르침을 받으며 일을 배워갔다. 빨리 그처럼 전문가가 되어 독자적으로 프로그램을 맡아 작업하고 싶었다. 때때로 자발적 주말 출근과 야근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 노력했다. 바람직한 신입의 자세였다. 시간이 좀 더 흘러 선배의 그늘에서 벗어나 나도 나만의 업무를 부여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서서히 연차를 쌓아가며 회사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모든 게 분명 원하던 바대로 흘러갔다. 그러나 회사에서 안정감을 느낄수록 그만큼의 공허함이 더해졌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그저 무기력하고 답답했다. 그리고 대학생 시절을 마냥 그리워했다. 그때의 열정과 도전 의식을 지금의 나는 좀처럼 느낄 수 없다고 안타까워하면서. 당시 만났던 남자 친구들에게, 가족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내 속 사정을 조심스럽게 얘기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나의 상황은 나쁠 게 없었기에 완전한 이해를 받을 순 없었고 별다른 해법을 찾을 수도 없었다. 사춘기 때도 별 징후를 보이지 않았던 나였는데, 20대 중반이 넘은 나이에 겪는 이러한 방황은 생각보다 깊고 오래갔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점점 그 원인은 정체를 드러냈다. 더 이상 꿀 '꿈'이 없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꿈을 가져봐야겠다, 이제 뭐가 되고 싶은가?' 나에게 물었다. 답을 찾으려고 하니 새로운 것을 깨달았다. 나에게 있어 '꿈'이라는 단어의 정의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꿈이라는 것은 구체적인 무엇이 될 수 없고 추상적이어야 했다. 가령, 특정 회사에 입사하기, 특정 직업을 갖기는 꿈이 될 수 없으며, 되면 안 되었다. 그것은 목표였다. 최종적 꿈에 가까운 여러 가지 현실적인 목표들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저 하나의 목표를 달성한 셈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목표가 내 꿈이라고 외치며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수 년 동안 이를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막상 그 지점에 도달해보니 이제 어디를 향해서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잃었던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내 마음을 이래저래 달래보기도 하고, 소소한 취미들을 가져봤으며, 작은 목표들을 수도 없이 세워봤다. 그러나 다 일시 방편일 뿐이었다. 앞으로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진정한 꿈은 무엇인지 그리고 나란 사람은 무엇을 원하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어 불안했다. 학생 때의 열정과 눈 속의 총기는 잃은 지 오래요, 빠른 속도로 무기력해지고 소심해졌다. 일이 분명 매력 있긴 한데 전처럼 열정을 쏟을 만한 동력이 생기지 않았다. 그저 어떤 목표나 방향 없이 하루하루 주어진 일을 해내기에 바빴다. 또한 회사 내 여러 조직 간 이해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늘어갔다. 나의 색과 개성은 희미해지고 그저 여느 직장인 중 한 명이 되어간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새로운 터닝포인트의 등장이 절실했다. 

단순히 취미나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이 시기 자체를 잠깐 멈출 수 있는 큰 선택을 내려야 함을 직감했다. 아직 젊다고 볼 수 있는 이 혈기 왕성한 시기를 무기력하게만 보내기가 너무 아까웠다. 무엇이라도 새로 시작한다 해서 전혀 무리 없을 20대(후반)의 나이었다. 회사를 그만둘 배짱도 없었고 일도 분명 재밌었기에 휴직이 적당했다. 그리고 아예 다른 환경에 나를 두고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해보리라 다짐했다. 한동안 움직임을 멈춰두었던 내 안의 톱니바퀴들에 다시 기름칠을 하고 열심히 굴릴 수 있는 새로운 자극과 경험을 갈망했다. '유학이 모든 것의 답이 될 순 없겠지. 그러나 분명 생각 전환의 기회를 주고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거야'라고 희망하면서.


그렇게 '휴직'과 '유학'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마음속에 몰래 설정해놓고 이를 위한 행동을 서서히 개시했다.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투자할 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뚜렷하게 무엇을 얻으려고 가는 걸까, 그저 현실 도피성은 아닐까라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수백만 번 던졌다. 이 의구심들과 싸워가며 영어 공부를 하고 학교를 알아보고 입학 요건을 충족시켜갔다. 유학 기간을 기다려줄 수 없다는 남자 친구와의 헤어짐과 굳이 뭣하러 가냐는 부모님의 반대 또한 겪어야 하는 일들 중 하나였지만 그것들은 내 결심을 꺾진 못했다. 


그렇게 준비 기간으로 1년 이상을 보내고, 본격적으로 다시 학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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