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턴십 도전 과정
그동안 '예정'만 되어있던 인턴십의 시간이 점점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인턴을 하기엔 조금 많지만, 그렇다고 너무 늦진 않은 나이인 31살.
그동안의 미국 인턴십 지원 여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인턴십에 대해 어느 한 회사와 본격적으로 이야기했던 것은 지난 2월이었다.
석사 과정 중 필수 과목인 인턴십 수행을 위해 당시 나는 여름 동안 일할 곳을 찾고 있었다. 학교에서도 매년 그맘때쯤 Career Fair를 주최하는데 미국 전역에 있는 다양한 회사 관계자들이 학교로 방문을 한다. 사실 이 행사에서 바로 채용의 기회를 얻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본격적으로 인턴 혹은 잡을 지원하기 전에 회사 관계자와 간단하게 인사를 주고받고, 회사에 관한 정보를 얻는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내가 지원해볼 만한 영화/방송 관련 부스들은 약 다섯 곳 정도로 많지도 않았다. 따라서 나는 큰 기대 없이 몇 장의 레쥬메(이력서)와 작업 영상들을 보여줄 수 있는 노트북을 품에 않고 한 곳씩 방문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곳에선 내가 지원하려는 포지션을 뽑지 않는다고 했다. '역시나 별거 없네, 집에 가서 링크드인이나 찾아보자'라고 생각했을 때, 내 리스트에 있던 마지막 남은 부스가 생각났다. 피곤함을 잠시 접어두고 일단 슬쩍 구경만이라도 해볼 마음으로 부스를 찾았다. 그런데 기회는 포기하려 할 때 얼굴을 드러내는 법. 그 부스 앞에 전시된 패널에 내가 지원하려는 포지션이 떡하니 써져있는 게 아닌가. 서둘러 그 회사 이름을 구글링해 회사의 신상을 다시 파악했다. 시애틀에 위치하고 규모는 좀 작지만 나름 재밌는 광고들을 제작하는 회사였다. 그리고 담당자에게 가서 내 소개를 시작했다. '여기 패널을 보니 이 포지션도 채용하시는 것 같은데, 제가 관련 경력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얘기를 건넸다. Casey라는 이름의 담당자는 눈이 똥그래진 채 나를 매우 반겨주었다. 나는 신이 나서 내 레쥬메를 건네고 내 작업 영상들을 간단히 보여주었다. 그는 안 그래도 해당 포지션의 사람을 뽑고 싶었고, 보아하니 경력이 이미 충분한데 잡이 아닌 인턴십을 지원하려는 게 맞는 거냐 재차 물었다. 그리고 그는 내 레쥬메에 큰 동그라미와 별표까지 그려 넣으며 자신의 메일로 꼭 다시 연락을 달라했다. (물론 한국에서의 경력은 있지만) 아직 영어를 더듬거리는 수준의 외국인인 나를 인정해주는 회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흥분되었다. 집에 와서 바로 그에게 나를 소개하는 장문의 메일을 공식적으로 보내고, 그렇게 본격적인 인턴십 지원이 시작되었다.
지원 과정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fair 때 짧게 이야기 나눈 덕분인지 추가적인 인터뷰를 요청하지도 않았고 메일을 몇 번 주고받고, 회사에서 공식 오퍼 letter를 보내주었다. 그렇게 나는 올여름부터 3개월 동안 인턴십을 하기로 '예정'했다. 사실 영어 실력에 너무 자신감이 없던 터라 인턴십에 대한 걱정이 늘 있었다. 졸업을 하려면 인턴십을 꼭 해야 하는데, 아직 수업을 듣는 것도 버거운 내가 미국인들 사이에서 일을 하는 것, 아니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조차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를 반겨주는 곳을 만나다니 그저 행운일 뿐이었다.
그러나, 역시도 너무나 순조로웠던 거지.
코로나 사태가 바로 터진 것이었다. 2월 말부터 한국에선 슬슬 심각성을 더해갔지만 미국은 그 당시 안전지대였다. 그러나 3월 중순 이후로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나빠졌다. 어제까지 멀쩡히 운영하던 식당과 카페들이 문을 닫고 학교 수업들도 온라인 강의로 전환되었다. 갈 수 있는 곳도 점점 줄어들어가고, 마스크와 손 세정제를 구하기엔 너무 늦었으며, 괜한 공포심으로 발생한 사재기 현상 덕분에 마트에 물건들도 동이 났다. 주변 한국 친구들도 하나둘씩 한국으로 돌아가는 티켓을 끊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몇 주 전만 해도 안정기에 접어든 유학 생활에 재미를 느끼고, 뜻밖에 굴러온 인턴십 기회로 희망에 부풀어 올라있었는데. 갑자기 미국에 있는 것 자체가 무서워졌고, 가족들도 빨리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나를 설득했다. 그리고 고민을 시작한 지 일주일 만에 나는 한국행 비행기를 끊었다. 일단 한 3개월 정도 한국에 있다가 여름에 인턴십을 하러 다시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상황은 나아지긴커녕, 빠른 속도로 악화되었다.
4,5월 정도쯤에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의 상황은 최악이었다. 주변의 모두가 지금 미국으로 돌아가는 건 사지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며 나를 말렸다. 나 또한 이 상황에선 가족과 함께 한국에 있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결국 여름 인턴십을 최소 했다. 회사에서도 내 상황을 이해해주었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보자고 했다. 그렇게 나는 올봄과 여름 동안 한국에서 지내게 되었다. 몇 개월 뒤 미국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회사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아직 그곳에서 일할 기회가 있을런지요....?'
라는 소심한 질문과 함께 회사와 그의 상태가 안녕한지 물었다. 그리고 내가 다시 미국에 왔으며, 가을 학기가 끝나자마자 12월부터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계속 keep in touch 하며 상황을 보자고 했다. 부디, 코로나로 회사에 큰 피해가 가지 않기를 바랐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다시 문의 메일을 보냈고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다행히도, 아직 나에게 일할 기회를 주겠다 했지만, 분명 전보다 과정이 좀 더 까다로워진 것을 느꼈다. 전에 지원할 때는 좀 더 가벼운 느낌으로 몇 번의 메일을 통해 offer를 내주었지만, 이번엔 나의 비자 상태나 졸업 후 계획 등에 대해 진지하게 묻는 질문들이 많았다. 또한 결정을 내리기 전 화상으로 먼저 미팅을 요청했다. 이것이 잡 인터뷰인지 아님 그저 서로 가볍게 이야기하자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았으나,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나는 긴급 면접 준비에 돌입했다. 혼자 Zoom 어플을 켜놓고 예상 질문에 대답하는 연습을 계속했다. 그리고 엊그제, 나는 회사의 CEO와 몇 명의 담당자들과 함께 영상 미팅을 가졌다. 잡 인터뷰는 아니었으나 분위기가 사뭇 진지했다. 그들은 단순히 나를 삼 개월짜리 인턴으로 생각하는 것 같진 않았다. 내가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지, 어떤 tool(software)를 쓸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물어봤고, 나에게 기대하는 바들을 이야기했다. (영어를 잘 못하는) 외국인을 뽑는 건 그들에게 처음 있는 일이기에 그들도 약간의 긴장을 하는 듯해 보였다. 나 또한 덩달아 긴장이 되었기에 나의 참혹한 영어실력이 더 도드라졌지만 그래도 아주 치명적인 실수는 없었다.
기나긴 과정을 거쳐, 이제 드디어 확정이다.
회사에서 예상보다 빨리 일을 시작하길 원했기 때문에 지금의 나는 부리나케 회사 근처의 머물 곳을 알아보는 중이다. 시애틀로 가기까지 약 3주도 남지 않았다. 비록 아는 사람 하나 없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이지만, 설레는 게 사실이다. 곧 마주할 '새로운 것들', 가령 전부터 가보고 싶던 도시에서 살아본다는 것, 학교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회사에서 일을 해본다는 것, 그리고 경험해보지 않은 광고라는 새로운 영역의 일을 해본다는 것 등에 대해 기대 중이다. 다시 패기 넘치는 신입 사원 모드로 돌아간 것만 같아 의욕에 넘친다. 이번 인턴십이 내 석사 과정의 마지막 단계이다. 따라서, 단순 삼 개월 인턴십 + 한국 복귀가 될 수도 있고, 이 시간이 미국 정착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겠다. 내년 3월의 내가 어떠한 상황일지, 어떠한 결정을 내릴지 너무도 궁금할 뿐이다. 확실한 건, 지난 짧은 유학 기간을 통해 이제 어디에 있어도 혼자 씩씩하게 살아나갈 힘을 길렀다는 것이다.
내 발길이 어디로 향하던 긍정적으로 상황을 맞이하고 그곳에 새롭게 뿌리내리면 그만이다. 잘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