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Habari Kenya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한수 Sep 14. 2020

나이로비의 지도:  사람들이 소변을 누는 지점

오늘 점심시간에 카페에 갔다가 동료 둘과 수다를 떨면서 돌아오는데 오래간만에 노상방뇨의 현장을 목격했다. 어떤 사내가 길 모퉁이 한 곳에서 몸을 돌리는데 우리 셋은 모두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설마 하는 느낌을 동시에 받았고, 1-2초 상간에 소변 줄기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청각으로 또는 시각으로 인지하고야 말았다. 사실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때부터 일터로 돌아가는 내내 우리 대화의 주제는 노상방뇨를 한 그 인물에 대한 불쾌함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대낮에 사람들이 다 보이는 곳에서 노상방뇨라니. 그렇게까지 급했던 것인가. 조금만 찾아보면 화장실을 갈만한 곳도 많았는데. 뭔가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행위였다.


그러다가 문득 길에서 소변을 누는 사람들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을 하나 떠올렸다. 하루하루의 생존을 위해 몇 시간이고 걷는 사람들이 멈춰 서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소변을 보던 그 벽을 처음으로 목격했던 그 날의 기억이다.  


나이로비에서 내가 가장 몰두하던 주제 하나가 걷는 것(walking)이었다. 정말로 치열하게 걸으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걷는 것에 미쳐서 지내던 어떤 날- 작정을 하고 외박을 할 준비를 하고 나와 오치엥 선생님의 집에 따라가 그 집 막내딸의 방에서 잠을 얻어 자고 나왔다. 내가 지내던 수녀원에서는 제아무리 일찍 나와도 따라잡을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걷기 위해서는 그들이 사는 곳 근처에 사는 오치엥 선생님네에서 신세를 질 수밖에 없던 시절이었다.


어둑한 새벽 출근길에 선생님 부부는 승용차에 나를 태우고서 적당한 길가에 내려주려고 했는데, 나는 무슨 거대한 물줄기가 밖에 있는 듯 좀처럼 차문을 열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건 물줄기가 아니라 사람들이었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길을 채우고 또 걸어가는지, 길가에 세운 차에서 문을 열지도 못할 정도였던 것이다.


몇 분 애를 쓰다가 가까스로 차문을 밀어서 열고 사람들 사이에 몸을 끼워 넣고 들어갔다. 내가 걷고 있는 것인지 사람들에게 그냥 쓸려가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일단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인가, 시위 행렬이라도 되는 것인가 싶을 수도 있지만, 그건 매일 아침 나이로비의 대형 빈민가인 키베라(Kibera)나 마다레(Mathare) 같은 곳에서는 일상적으로 보이는 행렬이었다. 캄캄한 새벽 4-5시면 일터가 많은 Industrial Area로 가기 위해서 2시간이고 3시간이고 한 방향으로만 걷는 사람들. 그 몸뚱이 하나하나가 모여서 마치 인간의 몸이 거대한 기차가 되어 움직이는 듯한 그런 모습이었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현장연구를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날 때까지 차마 그 거대한 움직임 속에 몸을 욱여넣을 자신이 없었다. 무서웠다. 그러다가 오치엥 선생님이 "너 니가 원하는 논문을 쓰려면 그 걷기를 꼭 해야 한다"라고 몇 번이나 자극을 주셨고, 결국에는 "우리집에 와서 자고 나가서 걸어라"라고 까지 말씀을 하셔서 굉장히 소극적인(?)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한 40분 정도를 걸었던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면서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길가는 순식간에 질퍽해졌는데, 내 기분은 다행히 살짝 편해졌다. 걷다 보니 나도 그 걷기 행렬의 일부가 된 느낌에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기도 하고, 또 조심스레 말도 걸어봤다.


나이로비에서 걷는 것에 대해 공부를 한다고 하니 누군가는 그냥 웃고 지나가기도 했는데, 아저씨 서너 명은 나와 보폭을 같이 하면서 자기가 어디서부터 얼마나 걷는지, 이러면 매일 돈을 얼마나 아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을 해줬다. (덕분에 나온 작은 챕터의 제목이 "Calculating mobility"이다) 또 어떤 청년은 신이 나서 자기가 지금 향하고 있는 일터에서 하는 일에 대해서 설명을 하기도 했는데, 흥미로웠던 것은 이들이 내게 열심히 이야기를 하다가도 순식간에 너무나 쿨하게 자기들의 갈길로 축지법을 쓰는 듯 사라져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나도 정신을 차리고 대체 내가 어디까지 걸어온 건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던 어떤 순간, 내 눈앞에 들어온 광경은 낡고 부서진 듯 서있는 한 벽면 근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소변을 누고 있는 모습이었다. 시커멓게 얼룩진 벽은 여기저기 소변 자국으로 도배가 되어 있었는데, 그 벽을 향해 많은 남자들이 서서 소변을 쏟아내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풀숲에서는 여자들이 앉아서 소변을 누고 있었다.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이상하게 지금도 내게 강렬하게 남아 있는 것은 그 후각의 기억이 아니라 시각의 기억이다. 입김이 나올 정도로 차가운 나이로비의 이른 아침 공기를 뚫고 소변 줄기를 따라 여기저기 피어오르던 뜨거운 김. 그 모락모락한 김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루벌이로라도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라면, 어둑한 새벽에 일어나서도 팔팔 끓인 우유에 싸구려 찻잎을 띄운 차이를 컵에 가득 채워 한 잔 마시고 나왔을 터이다. 그러고 나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걸으면 소변이 마려울 수밖에 없다. 추운 날일 수록 더더욱 소변이 마려울 것이다. 이들이 일터에 늦지 않게 재빨리 생리적인 소변의 욕구를 해결하려면 화장실에 가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아니, 사실 거기엔 화장실이 없다. 그러니까 마치 마라톤 선수가 식수대에서 물을 집어 들고 지나가는 것과 같은 리듬으로, 이들이 걷다가 소변을 누는 지점이 바로 그 지점이었다. 소변을 누는 그 잠시의 멈춤이 멈춤처럼 보이지도 않고, 걷는 리듬의 일부처럼 보였던 그 지점.


지금도 내가 그리는 나이로비의 지도 위에는 그 지점이 참으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은도뇨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