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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Sep 23. 2020

중국어를 할 줄 모르던 중국인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필드노트에 대한 흥미로운 책이 하나 출판되었다고 해서 관심을 가지고 읽어보다가, 문득 내가 두서없이 써 내려갔던 필드노트들을 오랜만에 다시 꺼내 읽어보게 되었다. 여러가지 기억하지 못하는 일들이 있어서 새삼스럽기도 한데, 한 가지 눈에 띄는 부분이 "열 받아서"라는 단어가 많이 등장하는 것이다. 대체 뭐 그리 열을 받았던 날인가 궁금한 생각이 들 정도다. 지금 생각하면 늘 그립고, 다시 가더라도 반복할 수는 없는 시간과 만남들이라 귀하고 귀하게만 느껴지는 필드워크인데. 그 시간 속에 내가 이렇게 열 받았던 날이 있었던가, 하는 것을 깨닫는 것이 우스우면서도 신기하다. 


이 순간순간의 분노들의 배경을 살펴보면, 주로 나를 중국인으로 인종차별적인 방식으로 놀리는 사람들이나, 성희롱으로 분류되는 말을 한 사람들, 그리고 나한테 어떻게든 푼돈을 받아내 보려고 했던 사람들 때문인 경우들인데, 신기하게도 지금은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 순간들이다. 그리고 설사 기억이 나는 것들이라 하더라도 이제는 미화되거나 왜곡된 탓인지 그다지 "열 받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은 것 같다.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은 어쩌면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기억을 선택하는 것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한편, 기억을 선택한다는 것은 사실 일방적이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모르게 긍정적으로 또 그리운 마음으로 선택한 수많은 기억의 편린들이 있는데, 그 순간에 나와 함께한 케냐사람들과 나와 대화하고 또 나를 관찰한 케냐 사람들의 기억은 어떨까. 


필드워크를 마치고도 한참 동안 내가 고민했던 주제는 내가 인류학자로서 관찰을 하러 갔는데도 불구하고 관찰을 "당했다"는 부분이었다. 당했다고 표현하니 약간 부정적인 어감이 있기는 한데, 꼭 그런 것은 아니고, 조금 자세히 설명하자면 나는 나에게 관찰자로서의 지위를 부여하고 열정적으로 필드에 뛰어들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미친 듯이 관찰을 당하는 대상이더라는 것이다. 


다른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으로는 흔치 않게 도시 구석구석을 걸어 다니고, 외국인들은 위험하다고 꺼리던 마타투도 열심히 타고 다니고, 빈민가와 도로에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러 다녔으니, 사실 관찰을 당하는 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나는 어디에 가도 눈에 띄는 존재였다. 그런데도 나는 내가 관찰의 대상이라는 것을 인지할 때마다 당혹스러움을 많이 느꼈다. 그 기억을 들여다보면 나는 늘 불편했던 것 같다. 내가 나이로비의 공기에 섞여서 관찰을 하고 인류학자로서 뭔가 하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려는 욕구가 강했던 것인지, 내가 자연스럽게 온몸으로 표시하는 동양(또는 중국)이 드러날 때는 뭔가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참 어리석고 답답한 일이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충고를 해줄 수 있다면, 릴랙스~라는 말을 해주고 싶을 정도다. 뭐 그리 온몸과 마음에 힘을 주고 다녔던 것일까. 


사실 나의 "이동(또는 이주)"을 통해 나이로비에서 작은 교류의 순간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실제로도 내 존재가 관찰의 대상이었을 때 가장 배운 것이 많았던 것 같다. 물론 거기까지 가는데 그어졌던 경계는 무수히 많았다. 나의 국적, 나의 피부색, 나의 머리카락, 나의 언어, 그리고 나의 눈매까지. 모든 것이 경계를 그을 대상이었다. 처음 나를 바라본 사람들의 눈빛이나 표정, 그리고 내 움직임을 따라오는 눈자위의 동선에서 그 경계가 그어졌고, 나는 "다름"으로 관찰되는 대상이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그 다름의 경계가 그어져도, 내가 만난 케냐 사람들이 그 경계를 쉽게 넘어서더라는 것이다. 일단 '너는 우리랑 다르지만, 그런데 너랑 이야기해보고 싶고, 너한테 묻고 싶은 것이 있어-' 그런 느낌이랄까. 한국에도 빈곤이 있니? 너는 왜 교회를 다니지 않니? 너는 왜 중국어를 할 줄 모르니? 너희들(중국 사람들)은 어떻게 이렇게 도로공사를 빨리 잘하니? 처음에는 지금 내가 케냐에 머무르는 중요한 목적인 연구와 무관하다는 생각에 당혹스러워했던 질문들이다. 그런 질문 속에서 읽을 수 있는 배움과 사람들이 전하는 나에 대한 관찰을 통해 케냐를 더 잘 이해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사실 관찰을 당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궁금하다. 그렇게 관찰을 당한 나는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내가 기억하는 케냐사람들이 기억하는 나는 긍정적인 모습일까, 아니면 다름의 경계에 갇혀서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일까. (아니면 중국어를 할 줄 모르던 중국인일까.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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