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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한수 Dec 06. 2020

마음을 다시 열기까지

한 사람의 독자가 있었다


논문 심사를 해주신 교수님들 외에 내 박사논문을 완독해 준 최초의 (그리고 아마도 마지막?) 독자는 지금 내가 부심으로 심사에 참여하는 논문을 쓴 학생이다. 이론적으로나 구성면으로나 고칠 구석이 있기는 했지만 예심은 잘 통과했고, 요즘 밤낮없이 본심을 위해 글을 쓰고 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2016년 12월 12일에 공식적으로 졸업했기 때문에 내 논문은 그 날짜가 서류상의 생일이다 (물론 논문 완성은 그보다 2-3개월 전이었다). 이제 만 4년이 되어가는데 사실 나는 그 시간 동안 내 논문에 대해서 마음을 닫고 있었다. 아니, 한 3년 정도 마음을 닫고 있었는데, 작년 가을인가에 위에 말한 학생 덕분에 그 문을 슬그머니 열어보기는 했다. 


학생은 논문을 정말 열심히 읽고 나타나서 "아프리카에 대한 에뜨노그라피는 처음 읽어 본건데 마치 나이로비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어찌 보면 참 단순한 소감을 말해줬는데- 나는 "아 그런가?" 하며 마치 딴사람의 논문을 대하는 느낌에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내 논문 파일을 열어 슬~쩍 읽어보기 시작했다. 


이런 표현이 우습지만- 참 열심히 쓴 논문이었다. 무엇보다도 15개월 동안 발바닥으로 나이로비를 느끼면서 썼고, 몸으로 그 도시의 리듬을 체감하며 쓴 논문이었다. 논문 심사의 부심이셨던 지리학자 선생님은 약간 속된 표현으로 번역하자면, "이건 정말 네가 개고생 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구나"라고 심사 중에 말씀하시기도 했는데... 다른 것은 몰라도 내가 정말 애를 썼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박사학위를 딴 이후로 내 논문에 무슨 공포감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 과장하면 뭔가 창피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 그런지에 대해서 아주 솔직하게 얘기해보자면, 일단 백인들이 추구하는 아프리카 연구에 끼어들어 그들의 고급스러운 언어를 습득하지 못한 동양인 학자의 한계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 연구를 도와주고 친구가 되어준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것이 1도 없다는 생각에 이런 논문으로 무엇인가를 더 해본다는 것이 수치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 일환에서 나는 논문이나 학위와 정말 무관한 직업적 선택을 반복했고 지금은 또다시 나는 어떤 인류학자가 되어야 하는지 물음표를 던지는 길목에 서있다.


사실 지금에 와서(마음을 다시 열고 나서) 생각을 해보면, 내가 백인 학자들의 언어를 가지지 못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심지어 다행스러운 부분이다. 나는 내 언어로 아프리카의 도시를 설명할 수 있는 것에 자신감을 느껴도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보답할 길이 없는 것은... 뭐랄까 조금은 성급한 결론이었다. 내가 보답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아직은 열려있는 질문이 아닌가, 아니 아직 열려있는 나의 선택이 아닐까.


겨우겨우 여기까지 마음의 문을 열고 생각을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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