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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Aug 05. 2024

甲辰年 壬申月 첫 번째 기록

[주간단남] 8월 1주 차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4.07.29.(월) 


(..)

이게 또 얼마 만의 모닝페이지인지 모르겠다. 정말이지 인간에겐 무슨 필터 같은 게 있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느냐에 따라 보고 듣고 경험하는 게 확연히 달라진다. 브런치북을 발간하고 나니 활터에서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예전만큼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됐다. 

모닝페이지를 최근 들어 소홀히 하는 스스로를 보며 매너리즘에 빠졌다고 생각하여 주간단남 2주 휴식이라는 특단을 내렸는데 그로 인해 모닝 페이지 자체에도 신경 쓰는 게 확 사라져버렸다. 원래는 모닝페이지는 그대로 쓰지만 주간단남만 쉬려고 했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면 주간단남을 쉬어야겠다고 느낀 건 모닝페이지 자체에도 휴식의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 그럴 거다. 고로, 잘 쉬었다.

사실 지금 이것을 쓰고 있는 것도 강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스스로와의 약속이고, 오랜 시간 해왔던 건데 이만큼 쉬었으면 다시 할 때도 되지 않았어?' 

이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생각하니 이건 이성이요, 에고의 목소리다. 느낌이나 울림의 형태가 아니라 다소 걱정스럽고, 조급해 보이는 말투로, 논리와 근거를 대가며 말을 걸어오는 건 십중팔구 에고라는 녀석이다.

(..)

오늘은 승급 심사를 보는 날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는 아름다움을 보여주자. 과정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은 소수지만 분명 알아볼 것이다. 누구도 알아보지 못해도 좋다. 활을 쏘는 나 자신은 그것을 알아볼 테니. 언제나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살자. 그거면 족하다.



24.08.02.(금)


(..)

이번 주 월요일에 쓰고 이게 두 번째 모닝페이지라니 놀랍군. 아니 뭐 생각해 보면 처음 있는 일도 아니라서 실은 놀란 감정이 든 건 아니다. 그저 쓰기 싫을 때가 끝나고 '써볼까?'하는 시기가 자연스레 돌아온 것일 뿐, 순환성이라는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바가 전혀 없다.

(..)

최근 있었던 콘텐츠 발행 기업과 유명 작가 사이에 일어난 공방전(?)에 대해 소견을 적어본다. 글로 적는 매체에 있어 저작권, 지적 재산권의 범위는 어떻게 규정을 해야 할까? 물론 규약이라는 것은 없어서도, 지나쳐서도 안 되는 존재다.

그런데 본디 창작이란 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아니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의 세상에서도 이미 다른 이들의 작품을 읽고, 필사하고, 또 타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상황을 경험하면서 알게 모르게 자신 안에 데이터와 인사이트가 생겨난다.

그뿐 아니라 인류의 집단 무의식에 본인이 의도했든 그러지 않든 접근하여 영감을 얻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과거 통신 수단이 매우 미비한 시절에 쓰인 저마다의 신화와 경전들의 내용이 유사성을 갖추고 있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다. 

이번 사태에 대해 사람들은 어떻게든 쌍방으로 이끌어 가고 싶은지 해당 기업의 미숙한 대처와 레퍼런스 체크의 부재라는 프로답지 못한 행위를 꼬집지만, 나는 그 이전에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지나친 자의식이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뭐 단어를 개발한 것도 아니고(ex: 럭키빅키), 모두에게 두루 읽히고 강한 임팩트를 남겨서 특정 문장만 보면 그 작품이 떠오를 정도도 아니다(ex: 윤동주의 별 헤는 밤).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와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만할 날카롭지 않은 부분에 대한 진술이나 맥락 등. 이에 대해 저작권을 넘어 마치 소유권이라도 있다는 듯한 불가침 의지 표명을 요구한 작가(그리고 소속사) 측의 태도가 과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해당 기업이 부당한 이익을 편취한 것도, 공식적인 캐치프레이즈나 슬로건, 혹은 공모전 문구 등에 쓴 것도 아니다. 심지어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이슈인, 표절도 아니다. 의도성이 없는 지극히 결과적인 행위에 그 의도를 역으로 추산하며 단정 짓는 것은 성급하고도 폭력적이다. 의도를 해명해도 의심을 거두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

다만 일을 크게 키운 건 해당 기업의 미숙한 대처가 큰 귀책사유가 있다고 본다. 지하철에서 옆 사람의 발을 일부러 밟았든, 실수로 밟았든 그 의도와 관계없이 결과에 대해서 사과를 해야 마땅하다. 지나친 자존심과 가오는 비즈니스를 하는 데 있어서는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미 일어난 일에 이러쿵저러쿵 논평하는 건 어쩌면 무의미하다. 일이 일어나기 전에 관찰된 조짐과 실제 결과가 잘 맞아떨어졌는지, 그럼 우린 그런 조짐을 차후에 또 관찰했을 때 어떤 대비를 할 것인지, 이런 논의가 차라리 건설적이겠다. 

일어난 일에 대한 논평을 할 거라면 누군가의 행위 등에 대한 평가에서 그칠 게 아니라 그것을 하나의 연역적 논리로 이끌어와 화두를 던져야 한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창작물, 특히 글을 매개로 한 창작물의 저작권의 범위는 어디까지로 보는 것이 타당한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먼저 썼으니 '찜콩'식의 유아적 논리는 글이나 음악 등 창조성이 관여하는 분야에서는 당연히 통용될 리도, 그래서도 안 된다. 모르긴 몰라도 그런 표현과 유사한 표현은 얼마든지 과거에도 이미 존재했었을 것이다. 그런 적이 없다면 그것이 유명세를 얻거나 하지 않았기에 드러나지 않았을 뿐. 인류 문명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쌓여가면서 진정한 의미의 '최초'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순수하게 본인이 창작했다 믿는 것 속에도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숱한 영감의 소재들이 있다. 그 원고를 썼을 때 머물렀던 공간, 사용한 펜이나 키보드, 책상, 먹었던 음식, 만났던 사람들, 봤던 콘텐츠 등 그 모두에게 원고료의 일부를 수수료로 낼 텐가? (아마 안 그랬을걸?) 

내가 얻은 건 보지 못하고 내가 이루고, 내놓은 것에만 가치를 두는 세상은 얼마나 무지와 오만으로 가득 찬 세상인가. 내가 받은 만큼 베풀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이 세상에 더 널리 퍼지면 좋겠다. 지금은 그런 시기로 넘어가기 위한 불가피한 과도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24.08.03.(토)


(..)

너무 텐션이 떨어진 나를 채근하기 위함인지 동트기도 전인 4시 반에 눈이 떠졌다. 요 근래에는 쭉 8시에 일어나도 더 자고 싶을 정도로 피곤했는데 이상하게 오늘은 푹 잔 것 같이 눈도, 머리도 모두 깔끔한 기분이다. 정말 간만에 맞이하는 이 상쾌한 칠흑의 어둠을 그냥 보내버리기엔 아쉬웠다.

(..)

마음의 공간을 넓히는 데 청소만 한 것이 또 없다. 본디 마음과 몸은 하나라서 몸의 주변이 넓고 트일수록 마음도 그렇게 따라간다. 이것을 안다면 몸과 마음 중 어느 하나라도 허투루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다. 정신적인 가치만 중시하며 물질을 등한시하는 것 역시 균형 잡힌 시각이 아니다.

(..)

여러 손가락이 가리킨다고 해서 달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본질에 집중한다면 거기에서 파생되는 손가락들 역시 그 본질을 닮는다. 

(..)

申月은 파종했던 것들이 결실을 맺기 시작하는 때다. 나의 상반기 동안의 시간들은 어떠했나. 매월 정산을 하는 시간을 갖고는 있지만 콕 집어 한 단어, 한 문장으로 표현하기는 어려운 것이, 어쩌면 원래 이런 건가 싶다, 흘러가듯 산다는 것이 말이다.

(..)

결사코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촌각을 다투며 조급하게 억지로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근데 그건 어쩌면 결정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지금 화장실 앞에는 손세탁 하려고 쌓아둔 여름 니트가 두 벌 놓여있다. 그것도 며칠째. 아마 족히 일주일은 됐을 것이다. 

유보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하지 않겠다 와 동의어인지도 모른다. '하겠다'와 '하지 않겠다' 크게 보면 선택은 두 가지이고 그에 따라 삶의 양상은 다르게 흘러간다. 미결정도 결정이다. 유보라는 결정. 그러니 나는 결정하지 않은 게 아니라 미루기를 택한 것이고, 그러면 그 대상은 속절없이 밀려난 상태를 유지한다.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는 게 아니라 유보라는 내 결정이 상황이 그렇게 되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걸 운으로 풀이하면, 그런 결정을 내리고 그런 상황을 조성하는 운이 들어온 것인 게다. 그래서 운명은 내 손에 있다고도, 할 수 있고 없다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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