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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Aug 26. 2024

甲辰年 壬申月 네 번째 기록

[주간단남] 8월 4주 차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 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4.08.21.(수) 


(..)

누군가의 순수한 열정, 아이 같은 모습을 볼 때면 나까지 그 기운에 감화가 되는 것 같아 좋다. 사회가 개개인의 영혼의 빛대로 살도록 해주지를 못하니 개개인이 스스로 혹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존재를 만나는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진심을 다해서 열렬히 나를 지지해 주든, 그저 상대의 길을 존중할 줄 아는 성숙한 태도를 가진 자가 멀리서 보내는 응원이든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보내는 에너지는 천금을 준다 해도 결코 쉽게 바꿀 수 없다.

(..)

'삼복생한'이라는 말이 있다. 삼복더위가 지나면 찬 기운이 찾아온다는 말이지만, 사실은 삼복더위가 시작됨과 동시에 찬 기운의 씨앗은 발아하고 있었다는 뜻에 더 가까우리라.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시작되는 법이다. 다만 그 기운의 시작과 실제 지상에서의 드러남에 시간차가 발생하는 것일 뿐.

인간은 오감, 그중에서도 시각에 크게 지배받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건 믿지 않거나 생각 자체를 못한다. 누군가의 성공 뒤에 뼈아픈 노력과 눈물 어린 사연을 보지 않거나 누군가의 악행 이전에 그를 타락하게 만든 여러 요인이 있음을(어쩌면 그 무지의 당사자 자신도 포함돼 있을지 모름을) 보지 않으려 한다.

아직도 더운데 이게 무슨 입추냐며 절기 같은 건 안 맞는다고 가을은 10월, 아니 11월 한 달만 허용하겠다는 발언을 일삼는 사람이 있다. 근거는 오직 본인의 경험, 본인의 기분 더 많이 쳐줘도 그 경험들이 정교화되고 모여서 '절대가치'를 지닌다 믿는 통계수치에 의존할 뿐.



24.08.23.(금)


(..)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모르는 것이다. 예측은 그 나름의 쓸모와 의미를 지니겠지만 절대적이지 않은 미래에 사활을 걸 필요도, 기우를 가질 필요도 없다. 그저 상황이 펼쳐지는 매 순간에 머물면서 찬찬히 동태를 살펴 다음 스텝, 또 다음 스텝으로 한 걸음씩 움직이면 그만이다. 

미래를 본다는 것은 지금의 행동 방향에 실질적인 영향을 끼칠 때만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특정 미래를 마중하기 위해서든, 혹은 피하기 위해서든, 지금 당장의 나의 행동이 어떠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데 참고가 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유효한 미래란, 근시점에 대한 것이다. 운전을 하더라도 전방을 주시하지, 저 멀리 보이지도 않는 먼 산을 바라보지 않는다. 장기적 미래를 수시로 궁금해하는 건 에너지 낭비다. 그게 내 행동과 사고에 영향을 준다고 해도 그때 가면 또 다를 것이다. 

(..)

'쓸모', 특히 주관적 기준에 의한 쓸모가 아니라 사회가 정해둔 '경제적 가치'나 '사회적 지위'라는 단 두 가지 측면에서만 모든 것을 재단하는 풍조는 이미 고루한 옛 신분사회, 가깝게 쳐도 산업화 시대의 잔재로 간주해야 할 때가 왔다. 

생산성 강박은 노예의 마인드다.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해 내야 할 것만 같은 그런 조바심은 조금이라도 노동에 있어 빈틈이나 게으름을 보이면 등짝에 여지없이 매질을 당하던 고대의 노예들이 느끼던 초조함과 다를 바가 없다. 이건 노예에 대한 비하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의 부당함에 공감하기에 같은 구도가 현시대에까지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하고플 따름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고대의 노예는 그들 자신의 처지를 인식하고 있다는 것. 그러나 현대의 노예들은 자신이 노예라는 사실을 알지도 못할뿐더러 알더라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쓸모의 집착에서 벗어나자. 증명의 압박도 내려놓자. 가치는 사회가 아니라 스스로가 정하고 매기는 것이다. 노예의 삶이 아니라 주인의 삶이란 바로 그러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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