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아름다운 작은 섬으로 떠나다(완).
(지난 글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처음 보는 순간 알았다. 여기가 요론섬 명소 중 하이라이트라는 것을. 양가적인 생각이 들었다. 꼭 보고 싶다는 생각과, 요론섬 관광객들이 죄다 거기로 몰릴 테니 끌리지 않는다는 반골이자 홍대병스러운 생각. 내 안의 두 목소리가 팽팽한 긴장의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정작 중요한 사실 하나를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유리가하마는 내가 원한다고 볼 수 있는 곳도, 갈 수 있는 곳도 아니었다. 물이 빠지는 간조 때를 전후로 모습을 드러내며, 기상 상태나 다른 요인 등으로 인해 그 정도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요론 관광 정보 홈페이지에서 출현 예측 표를 제공하고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예측이며 가장 정확한 것은 당일의 기상 상황과 현지인들의 '육감'이다.
아쉽게도 우리가 방문하기로 한 날에는 두 겹 동그라미도, 동그라미도, 심지어 세모도 아닌 여백의 미가 연달아 놓여있는 시기였다. 김이 팍 샜다. 간절함과 쿨병의 두 목소리의 팽팽한 공방전이 무색했다. 아쉽지만 우리는 쿨하게 포기했다. 은근히 '날씨 요정'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우리 둘은 당일에 가보면 뭔가 있을 거라 믿으며 당연하다는 듯 유리가하마 투어 예약도 하지 않고 일본행 비행기를 탔다.
첫날 숙소 체크인을 할 때 우리에게 귀인이 되어주셨던 (4화 참고) 한국인 분들 덕분에 유리가하마를 볼 수 있을 거라는 현지인의 정보를 입수했다. 파파고를 통한 일본어 발음 따라 읽기 스킬과 몇 마디 짧은 영어로 우여곡절 끝에 숙소의 젊은 여성분이 소개해준 업체에 유리가하마 투어를 신청했다. 스노클링까지 포함해서 7,000엔이었다. 요론관광정보 사이트에서 봤던 가격보다 훨씬 저렴해서 살짝 걱정도 됐지만, 그 직원분의 선한 미소에 과감하게 배팅했다.
결과는 대만족!
바다 한가운데에 배를 정박하고, 내려서 두 발로 걷는 기분은 참으로 묘하다.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은 몰라도 바다 위를 걷는 기분은 이러하지 않을까. 우유니 사막의 존재를 처음 알았을 때에도 그곳에 정말 가보고 싶었다. 유리가하마도 우유니 사막을 연상케 하는 자연의 신비로움이 있다. 백사장이 더 완전하게 모습을 드러냈다면 감동은 몇 배가 됐으리라.
역시나 이곳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중에는 오키나와에서 요론행 페리를 탈 때 만났던 한국인 커플도 저 멀리 보였다. 인사는 못했지만 멀리서나마 마음속으로 반가움과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안전히 귀국하기를 빌었다. 오사카와 도쿄에서 왔다던 일본인 관광객 두 사람이 와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평소에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나인데도 이곳에서만큼은 그곳에 존재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반갑기 그지없었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우리만 존재하는 기분이라 그랬을까?
마이클 싱어의 책 제목처럼 될 일은 된다고 했던가. 보고 싶었던 그것에 대한 욕망이 들었으나, 거기에 사로잡혀 집착이 되지 않게끔 내려놓았더니 오히려 그것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대체로 힘을 잔뜩 주고 살 때보다 힘을 빼고 물 흐르듯 살 때가 일이 더 수월하게 풀릴 때가 많은 것 같다.
고3 수험생 시절에는 무슨 수도승처럼 살았다. 아니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그랬던 것 같다. 중학교땐 놀기도 잘하고 공부도 꽤나 하는 학생이었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사람이 확 바뀌었다. 고1 때부터 좋아하던 컴퓨터 게임도 끊고 3년 간을 자발적 범생이로 살았다. 점심을 먹고도 산책 한 번을 안 하고 교실에 돌아가 곧장 책상 앞에 앉았다. 고2, 고3이 될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해졌다.
성적이라도 잘 나와줬으면 모를까,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공부를 하려다 보니 요령은 부족하여 내신 점수에 비해 전국 모의고사 점수는 늘 스스로 세운 목표에 도달하질 못했다. 그렇게 수능에서 고배를 마신 후 큰 낙담에 빠졌었다. 근 3년을 목표로 했던 것이 와르르 무너지던 순간. 그 후 재수생 시절을 거치며 나는 힘을 빼는 법을 배웠다. 혼자만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조급해하며 내 이익만 챙기기 급급한 태도를 버리고,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연대하며 좋은 건 나누고 힘들 땐 서로 격려하면서 나아가는 법을 배웠다.
우리 이제 산호를 보러 가자!
유리가하마라는 만남의 광장에서 사람들은 각자가 타고 온 배로 돌아가 각자가 왔던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두 마디 대화를 나눈 사람들에게는 그새 내적으로 친밀감이 느껴져 손을 흔들며 인사도 했다. 사요나라! 이럴 땐 써도 되는 말 맞지?
이제는 스노클링을 하러 장비를 챙겨 스팟으로 이동했다. 바다는 정말 깨끗하고 맑았다. 관광지임에도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는 해양쓰레기 하나 보기가 어려웠다. 가이드에게 여기는 바다가 1년 내내 이 색깔이냐고 묻자 그렇다고 한다. 한국 바다는 어떠냐고 묻자, 제주도도 여기처럼 아름답다고 자랑했다. 요론에서 나고 자란 분이라던데 제주도를 알더라. 세계화 시대이긴 한 것인가, K컬처의 영향 덕분인 것일까.
유리가하마로 가는 길에서도, 그리고 스노클링 스팟으로 이동하는 길에서도 작고 귀여운 바다거북들을 만날 수 있었다. '거북이'라는 그 짧은 단어를 서로가 각자의 언어로 이해하기 위해 구태여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를 대동할 필요는 없었다. 한국인 관광객도 이미 제법 만났을 현지 투어 가이드들은 그 단어만큼은 모국어 다루듯 줄 알았다.
'거-부-긔-' 하고 그들이 말하면, '아~ 카메(ガメ)?' 하고 일본어로 응수했다.
어릴 적 즐겨봤던 일본 만화 드래곤볼 덕분이다.
스노클링 스팟에서 우리에게 '니모'로 더 친숙한 흰동가리를 비롯한 형형색색의 해양 생명체들과 조우했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익숙했던 탓인지 조금만 맛보기로 보다가 끝날 것만 같다는 생각에 구경도 조급하게 했다. 물장구를 여기저기 치면서 바닷속 작은 생명들의 움직임을 참 열심히도 관찰했다. 그런데 이곳 가이드들은 키즈 파크에 자녀를 맡기고 자유를 즐기는 부모들 마냥 우리를 방임해 두었다.
수심이 많이 깊어서 어두워 보이는 곳이 있었는데 나랑 짝꿍은 가도 되나? 하면서 그들의 눈치를 봤지만 자신들의 시야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괜찮다는 듯 우리 쪽은 딱히 신경도 쓰지 않는 듯했다. 한 20분 정도는 한 것 같은데 아직 끝이 아니었다.
"이제, 산호를 보러 가자!"
엑.. 이거 설마 악착같은 한국인 관광객 맞춤형인가?
이 날 이후로 한동안은 스노클링 생각은 추호도 나지 않았다.
투어가 끝나고 나자, 다시 단조롭고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김없이 자전거에 올라서 또 미사키 빙수를 먹으러 갔으며 첫날에 보지 못한 다른 해변들을 둘러보러 다녔다. 비슷해 보여도 어딘가 조금씩 다른 특색을 갖춘 요론의 해변들.
어디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굉장히 프라이빗해 보이는 해변도 우연찮게 발견해서 우리 둘은 맨발로 부드러운 백사장의 모래를 느껴보기도 했다. 바다를 멍하니 보고 있는데 문득, 정말 느닷없고 난데없이 물수제비가 하고 싶어졌다. 그럴듯한 모양의 조약돌을 하나 집어 들고 정말 오래간만에 바다를 향해 손끝을 털었다.
조약돌과 함께 빠져나가선 안 될 것까지 빠져나가고 말았다. 직접 내 사주에 맞춰 제작한 천연원석 팔찌였다. 날씨가 더워 팔뚝이 온통 땀을 젖어있었던 것이 동그란 원석팔찌에겐 활주로와도 같았던 모양이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당황할 틈도 없었다. 이미 사건은 일어났고, 내 팔목에는 팔찌가 가려주고 있었던 자외선의 흔적만이 남아있었다.
이 역시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인 것일까. 나는 그렇게 내 기운이 담긴 팔찌를 통해 요론과 연결되었을 것이다. 혹시 모르지, 그 연결고리가 훗날 나를 다시 요론에 오게 만들지 않을지도.
어느새 요론에서의 두 번째 하루도 저물어가고 있었다.
첫날 가보려다 헤매기만 했던 우도노스 해변을 다시 가보기로 했다. 첫날 헤맸던 바로 그곳에서 바로 코앞이 우도노스 해변이었다.
이곳에서 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감했다. 부두에는 삼삼오오 모인 일본인들이 캔맥주를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 광경이 너무나도 평온하고 또 행복해 보였다. 그들을 보며 멕시코 어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멕시코에 놀러 온 사업가가 바닷가에서 고기를 낚는 한 어부에게 묻는다.
왜 벌써 일을 그만하느냐고.
어부는 그날 잡을 고기를 다 잡았으니
집에 가서 가족과 식사하고 즐겁게 보내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사업가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이 보기에는 충분히 더 수익을 극대화시킬 여지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부에게 노동 시간을 늘리고,
장비의 고급화에 투자하면
일개 노동이 아니라 큰 사업으로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이번엔 어부가 묻는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고 난 다음엔 무엇을 할 거냐고.
사업가는 한껏 여유에 젖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바닷가에서 한가롭게 낚시를 하고,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거라고 말이다.
"지금 내가 이미 그러고 있소." 어부가 말했다.
우리가 아는 세상은 얼마나 좁은가. 그 좁은 세상에서 나오는 사고와 언행은 얼마나 편협한가.
몇 번의 생을 거듭한다고 해도 '주관'이라는 1인칭 시점만 가질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은 그 편협함을 없앨 수는 없으리라.
내가 언제나 틀릴 수 있음을,
내 옳음이 상대에게도 옳음은 아닐 수 있음을 언제나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 글을 정리하면서도 내가 틀렸다는 것을 또 하나 깨달았다. 우리가 두 번째날에 겨우 여긴가보다 했던 우도노스 해변은 사실 차바나 해변이었다. 테라사키 해변도 그렇고, 우도노스도 그렇고 우리 대체 무얼 보고 온 것일까. 이 역시 일어날 일이었을지 모른다. 덕분에(?) 부둣가 술판의 낭만을 느낄 수 있었지 않았는가.
https://maps.app.goo.gl/QaXncsqXszRquDHf9?g_st=com.google.maps.preview.copy
이 날 아침에 숙소 식당의 조식을 먹고 산책을 하며 영화 <안경>에 나온 하마다를 보러 갔었다. 세월의 흔적은 역력했지만 영화 속에서 봤던 그때 그곳은 분명했다. 와본 곳도 아닌데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것처럼 반가웠다. 학창 시절을 보냈던 내 고향을 성인이 되고 나서 다시 찾아갔을 때가 생각이 났다.
어쩌면 이곳 요론섬은 내가 전생에 와봤던 곳은 아닐까.
처음 와본 장소에서 고작 영화 한 편을 보고 떠난 여행에 이런 감상까지 덧붙이는 게 우습지만 말이다.
나를 이곳까지 이끌어준 영화 <안경>에게,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 해준 나의 동반자에게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요론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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