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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다섯.

공원, <존재의 진동>

by Iris K HYUN

+ <몸으로 그리는 지도>를 연재합니다. 한국에서 집 찾으러 다닌 지는 좀 되는데 순서는 차례대로 아니고 제 의식의 흐름대로입니다.




"언니, 나는 내가 누군지 정말 모르나 봐. 내가 진짜 뭘 원하는지.."


이십 대를 살고 있는 누군가의 말이 나는 어떤 느낌인지 온몸으로 기억이 났다.

되게 열심히 사는 것 같은데 이상하게 무기력했다. 남들도 다 그러고 산다. 그래서 다시금 의미를 부여하며 마음을 다잡아도 왜 열심히 사는 것인지 방향을 잃어버린 기분에 자꾸 빠졌다. 딱히 밖에서 나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안에 고요한 중심이 없었다. 진짜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인지 그 감각마저 잃어버린 듯했다. 너무 답답하면 자전거를 미친 듯 밟아서 내가 사는 1단지에서 14단지까지 갔다. 아무 이유 없이 거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거다. 가끔 공원에 앉아서 비둘기를 봤다. 그때는 공원을 자유롭게 누비는 비둘기도 처량해 보였다.







그런데 너무 모르겠다는 건 너무 안다는 것과 같다. 몰라야 알 수 있다.


"그래 애초에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깜깜한 마음으로 공원에 앉아 있는 '과거의 나'에게 이 말을 건네봤다. 몸이 움직여지지 않을 정도의 무기력이라면 아무것도 안 해서가 아니라 원하지 않는 이야기에 기력을 다 한 것이다. 힘을 주지 않아도 몸이 스스로 벌떡 일으켜지는 버튼, 그게 때가 되면 자신 안에서 작동하기 시작할 거다. 진심으로 궁금해하면 그 해답을 반드시 찾는다. 가려는 방향을 제대로 맞추는 것은 이미 고정된 나의 이야기로 어떻게든 돌진하려는 것보다 느리지만 강렬하다. 튜닝을 위한 방황, 할 거면 그거 제대로 해 봐. 그때의 나에게 한참 언니처럼 말했다.



어린이날 본 영화가 있다. 나미비아의 사막, 이날 GV에 참석한 야마나카 요코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정답을 몰라도 된다는 걸 담고 싶었다.

카나 자신도 자신이 누군지 모르지만

다른 이도 그걸 판단하지 않길 바랐다.


인생에서 언젠가는 마주했을 눈, 그 솔직한 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척추 뼈 33개를 그려서 감독님에게 드렸다.

https://blog.naver.com/waytothestars/223856981418





공원에서 싱잉볼을 연주하고 있으면 희한하게 아이들이 하나 둘 온다. 엄청 고요한 장소라고 생각해서 차리고 앉았는데 갑자기 꺄~~~~아~~~ 아이들이 내는 소리들로 가득 차는 거다. 자리를 옮겨야 하나 하다가 그냥 계속 앉아서 연주하고 내 목소리도 얹어보고 있었다. 순간, 밖은 엄청 시끄러운데 신기하게도 아주 고요해졌다. 소음으로 보던 내 앞의 풍경이 반짝반짝 너무나 예쁘게 빛나고 있다.

아이들이 몰려온다. 각본은 없지만 뭘 하고 놀지는 안다. 공원이 즐거운 놀이터가 되는 순간이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는 누군가가 보내는 마음을 듣는다. 내가 세상에 보내는 마음을 듣는다.



https://youtu.be/SrQPLJxfZFc?si=IzrXreulAwHirXE9






내 작품들은 관객의 실제 몸이, 육체가, 현재에, 그리고 능동적으로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앤서니 맥콜, Anthony McC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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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