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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림 Jul 02. 2020

자살예고 편지를 받았다

행복과 불행 사이의 거리

자살예고 편지를 받았다.

노트 어플을 검색하다 우연히 아날로그적인 편지 어플을 발견했다. 무작위로 선정된 익명의 누군가와 1대 1로 장문의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어플이라고 했다. 불특정 다수에게 노출되는 글이 아닌 단 한 명에게만 도착하는 비밀 편지. 호기심이 동했다.


어플을 다운로드하고 간단히 회원가입을 하자마자 누군가로부터 편지가 도착했다. 자신은 대전에 살고 부대찌개를 좋아한다고 밝힌 귀여운 편지였다. 짧은 글이었지만 풋풋함이 묻어났다. 왠지 쑥스러움이 많고 마음씨가 착한 귀여운 여자분일 것 같았다. 답장하기를 누르면 바로 답장을 할 수 있었지만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고 그 편지엔 코로나 때문에 배우고 싶었던 우쿨렐레를 배울 수 없어 속상하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소소하고 별것도 아닌 얘기를 모르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 이것이 이 어플의 매력이구나 하고 생각할 즈음 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당신은 행복하신가요?'라고 시작하는 편지에는 죽을 날짜를 잡아놓고 산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아느냐, 내 인생은 배신, 사기, 괴롭힘으로 점철되어있다 등의 내용과 함께 마지막엔 이렇게 적혀있었다.

'전 7월 1일에 갑니다. 읽으신 분은 꼭 행복하세요 저 대신 꼭꼭 많이 아주 많이'


이 편지를 읽은 날은 6월 26일 오후였다. 알 수 없는 찝찝함이 올라왔다. 남편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이렇게 말한다.  

"그런 어플에서 아무나한테 가는 편지를 진지하게 썼겠어? 괜히 기분 상하지 말고 지워버려."

"그렇겠지? 진짜 죽을 사람이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얘길 늘어놓겠어?"

당연히 장난일 거라 치부해버리고 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며칠 뒤로 다가온 내 생일에 시부모님이 방문하기로 하셨기에 얼른 집 청소를 시작해야 했다.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늘어놓은 협박과도 같은 자살예고는 그렇게 며칠간 나에게서 잊혔다.


며칠 뒤 찾아온 내 생일엔 유난히도 축하해주는 사람이 많았다. 각자가 바쁜 걸 알기에 설사 아무도 생일 축하를 해주지 않더라도 서운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기대가 없었던 탓일까, 생각지도 못한 오랜 친구들과 지인들이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주고 전화도 해주고 선물도 보내주자 얼떨떨할 정도였다. 거기다 시부모님은 집까지 방문하셔서 맛있는 반찬도 전해주시고, 맛있는 밥도 사주셨다. 최근 몇 년 중 가장 많은 축하를 받은 생일이었다. 


즐거웠던 생일 바로 다음 날, 예고했던 7월 1일이 다가왔다. 잊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 날 오후가 되자 누군지도 모르는 그 사람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설마 그 말이 진짜는 아니겠지, 설마 벌써 실행에 옮긴 건 아니겠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소파에 멍하니 앉아있다가 그 사람에게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7월 1일입니다.

며칠 전 편지를 받고 당황스러웠습니다.

'기분 찝찝하게 이게 무슨 소리야'라고 생각하고 넘겨버렸습니다.

순간 무서워서 그랬는지도 모르지요. 그 편지가 장난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내심 장난이길 바라고 있습니다.


7월 1일 오늘, 당신이 어딘가에서 꼭 숨 쉬고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한때 매일 그런 생각을 해봤던 적이 있어 그 기분이 어떤 건지는 대충 상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눈에 보이는 게 다인 것 같고 다른 인생은 없을 것 같아 앞이 캄캄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살다 보니 또 괜찮은 날이 오더라고요. 내가 그런 기분일 때가 있었나 싶을 만큼요. 그러니 쉽게 포기하지 말아요.



그 사람은 이 편지를 받았을까. 그 편지는 정녕 장난이었을까. 혹은 그냥 화가 나서 적어본 감정의 쓰레기통 같은 거였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그 후 어플에 관한 설명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어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블로그에 남긴 댓글을 보게 됐다. 이 어플을 사용하고 나서 이틀에 한번 꼴로 자살과 자해에 관한 편지가 도착한다고. 처음엔 위로해주려 했지만 점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막하고 제대로 상담해줄 자신도 없고 부담스럽다고 했다. 어플 개발자도 그런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는지 그런 편지를 받고 부담스러울 경우 꼭 답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또한 공지를 통해 사용자들에게 그런 극단적인 내용의 편지를 보내는 것은 자제해줄 것을 당부하고 있었다.


내가 특별하게 특이한 편지를 받은 게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익명에 기대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아프다고 힘들다고 비명을 질러댔고, 또 익명의 다른 이는 누군지도 모르는 자의 비명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던 것이다. 1대 1로 주고받는 형식이다 보니 내가 무시하면 이 사람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이 생기고, 부정적인 감정의 여파는 그 편지를 읽는 사람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러고 보면 인스타그램처럼 자신을 드러내는 SNS에서는 힘들고 절망스러운 글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인스타그램을 한 시간 정도 훑어보고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나만 이 모양 이 꼴로 살고 있는 건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

그러나 철저한 익명에 기댄 글에서는 새삼 분위기가 다르다. 누가 더 불행한지 대결이라도 하듯, '내가 이렇게 힘드니 봐주세요'라고 하듯 감정과 상황을 극단적으로 솔직하게 쏟아내기도 한다.


내가 누군지 아는 사람들에게 나는 항상 행복한 사람이어야 한다. 불행은 최소한으로 감추고 행복은 최대한으로 드러낸다. 인생이란 것이 항상 행복하기만 할 수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혹여 불행한 일이 닥치면 약점인 듯 숨기게 된다. 그렇게 숨겨진 감정은 혼자 보는 내 일기장에서, 혹은 익명의 글에서 폭포수처럼 배출된다.


나의 경우에도 브런치나 블로그에 글을 쓰고 나중에 읽어보면 내가 행복했던 순간의 이야기 위주로 적혀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굳이 의도한 건 아니지만 속상하고 죽고 싶을 때 굳이 정성 들여 글을 쓰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나의 불행이나 못남을 광고하고 싶지도 않으니까.


내가 내 불행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때는 이제는 내가 그것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때이다. 난 지금도 내 불행한 부분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말할 자신이 없다. 아직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요즘 세상은 행복도 패션처럼 입는 세상이다. 어느 때보다 우울증 환자가 많고, 자살자도 많지만 겉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다 행복해 보인다. 어제 갔던 예쁜 카페 인증샷과 무심하게 손에 든 명품가방, 연인과의 행복한 럽스타그램이 나를 표현해주는 세상, 그 그림자 뒤에는 익명의 불행이 넘친다.   


그 사람은 계획대로 떠났을까, 아니면 장난이 먹혀들었다며 내 편지를 보고 킥킥대고 있을까.

그 편지는 나에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어느 쪽이냐 묻는다면 나는 지금 분명 행복한 쪽에 가깝다. 불행한 감정이 17% 정도 함유된 행복이지만 그래도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혼자 있을 때 이상한 생각이 꼬리를 물기 시작하면 가끔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불행해지기도 한다.


그 편지를 쓴 사람은 아마도 불행한 감정이 85% 이상을 차지했을 때 그 편지를 썼을 것이다. 편지를 쓰고 4일이 지나는 동안 자기가 그 편지를 썼다는 사실조차 잊었을 수도, 혹은 오늘 내 편지를 받고 '내가 저때 감정이 과했네, 화가 나서 그만. 허허허'라고 웃어넘길 수도 있다.


행복과 불행의 거리는 멀어 보이지만 사실은 모퉁이를 사이에 두고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 서있을 뿐이니까.



여기까지 쓰고 글을 마무리하려고 고민할 무렵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 사람에게서 다시 답장이 왔다. 놀람과 동시에 일단 그 사람이 살아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편지를 열어봤다.

다시 다른 마음을 먹고 꿋꿋이 살아가기로 했다는 내용의 편지였다. 7월 1일은 그 사람의 생일날이었나 보다. 생일날에 맞춰 조용히 세상을 떠나려 했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와 선물을 받고 아직 자신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아껴주지 않는다면 스스로라도 자기를 아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왜 하필 내 생일 다음날에 죽겠다고 하는 거야'라고 생각했었는데, 그 사람의 생일과 내 생일이 딱 하루 차이였던 거다. 내가 이번 생일에 특별히 축하를 많이 받은 것처럼 그 사람도 이번 생일에 특별히 많은 축하를 받았나 보다. 꽤 신기한 우연이다. 그 사람이 실제로 떠나지 않아서 다행이고, 나의 걱정과 마음 쓰임이 헛되지 않아서 기뻤다.  


내가 그 사람을 살린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따뜻함 한 조각을 전해준 것 같아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그렇게 그 사람과 나는 어느 날 우연히 불행의 밑바닥을 찍는 순간을 공유한 익명의 동지가 되었다.

그 사람은 아마 당장 내일부터 아무 일 없었던 듯 다시 평범한 행복을 가장하고 살아갈 것이다. 가끔은 웃고 몰래 혼자 울기도 하면서.


행복했으면 좋겠다.

익명이라도 그런 극단적인 말은 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훗날 “내가 옛날엔 그런 생각까지 했었어”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을 만큼 지금의 불행한 감정을 극복했으면 좋겠다.


나도, 그 사람도,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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