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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아리 Dec 18. 2020

오해의 세계와 핑계대는 삶

 


작년 3월 파리에 갔었다. 벌써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난 기억이다. 출발을 일주일도 남기지 않고 결정한 여행이었다. 아침 회의 시간에 몰래 휴대폰으로 비행기를 알아본 뒤 회의가 끝나자마자 과장님에게 10일 휴가를 이야기하고 비행기를 끊었다. 가고싶다,라는 마음이 간다,라는 사실로 전환되던 시점에만 느끼는 짜릿함은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다.


이렇게까지만 이야기하면 이 여행이 굉장히 쉬워보인다. 그러나 비행기를 끊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처음 파리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는 15살 사회 과목 수행 평가를 준비하던 날이다. 그 때 본인이 가고싶은 나라를 하나 지정해 가상 일지를 쓰는게 과제였다. 나는 인터넷에 파리 여행기를 검색하며 그 곳에 무엇이 있는지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올려놓은 사진을 보면서 혼자 몽생미셸에 가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모나리자를 봤다. 14년 전의 그 상상은 너무 환상적이지만 명확해서 1년 6개월이 지난 기억보다 더 선명할 지경이다. 그렇게 13년 가량 파리에 대한 환상을 품고 그 곳에 갈 것을 계획했다.

13년간 마음에 품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실행하지 못 했던 이유는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용기가 없어서 등 말하자면 너무 많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일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가야 할 이유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서였다. 나는 파리를 가고 나서야 내가 왜 파리에 가고 싶었는지 알았다. 내게 15살에 환상을 심어주었던 누군가의 파리 여행기와 그 날의 상상이 얼마나 많은 욕망을 심어주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아, 그래서 나는 파리에 와 있구나. 무언가를 하고 싶은 이유는 행하고 난 후에야 알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로 무언가 하고싶다,라는 마음은 일상과는 벗어나기 마련이라 많은 핑계가 필요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핑계를 '왜?'라는 물음으로 듣고 싶어했다. 그럼 나는 그들에게 답을 하면서 스스로 합리화했다. 이 정도의 이유면 충분히 할만하다고. 그러나 온갖 말들로 맴돌던 이유들은 막상 하고 싶다,라는 욕구가 한다,라는 행위로 바뀔 때 아무런 효력이 없었다. 내가 얼마나 하고 싶은지에 대한 크기만 중요할 뿐이었다.

그래서 돌이켜 보니 사람들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의 이유를 설명한 말들이 다 진짜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네가 생각하는 이유는 아니라는 확신때문에 다른 이유를 알려줬거나 내 욕망이 가벼워 보이지 않는 포장 정도나 됐을 뿐.


지난 주말, 제주도를 가고싶어하는 내게 수진언니가 말했다.


"왜 계속 이유를 찾으려는거야? 그냥 갈 수도 있는거야."


30년 가까운 삶 속에 하고 싶은 일들이 무수히 많았는데 그 놈의 왜,때문에 마음을 접었던 순간이 몇 번이었나. 그냥 하고 싶을 뿐인데 있는 그대로 말하기도 어렵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어려웠다. 간극을 매꾸자고 계속해서 찾았던 이유들이 결국 모두 핑계라는 결론을 찾았다.

누군가는 '그냥'이라는 말이 무책임하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성의 없다고 하고 누군가는 생각이 없다고도 한다. 나는 이제부터 '그냥'을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말하기 조금 어렵고 명확한 이유가 없는 것들에 대한 명사. 말하기 복잡하고 말 할 수도 없는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감정들이 뒤섞인 두 글자. 몇 십 마디를 뱉어 만드는 핑계보다 훨씬 솔직하다. 이제 그냥, 이후의 오해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이 세계는 설명한다고 완전히 이해될 세계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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