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은 많지만 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나는 지금 태국 치앙마이에 왔다. 한국도 여름이지만 바다도 없는 여름나라에 왔다. 휴가를 쓴 것도 아니다. 금요일에도 똑같이 화상회의를 하고 코드를 짜고 배포를 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한국 시간에 맞춰서 업무를 볼 예정이다. 신세 질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치안이 좋을 것 같은 동네에 비싼 월세를 주며 지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한국과 태국에 각각 주거비를 지출하는 어리석은 혹은 이상한 행동을 하고 있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대출이 대거 늘어난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건 정말 멍청하거나 무모하거나 무언가에 반하는 행동처럼 느껴진다. 스스로 그어놓은 선을 넘는 기분이랄까.
그렇다, 나는 대출이 많다. 코로나 기간 동안 주식과 주택 가격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올랐던 것을 모두 기억할 것이다. 재테크에는 무지하고 그저 한 푼 두 푼 아끼는 것만 알았던 나는 눈 뜨고 코 베이는 느낌이 이런 건가 싶었다. 엄청난 고액 연봉자는 아니지만 문송합니다를 뒤로 하고 나름 나를 갈아 넣어서 개발자가 되면서 부족하지는 않은 돈을 벌게 되었고, 돈 쓰는 것을 고통스러워하는 특이점 때문에 돈은 차곡차곡 모였다. '그래, 남들보다 방황하느라 커리어 시작은 늦었지만 괜찮을 거야.'라고 위안을 하는 것도 잠깐이었다. 코로나 버블 기간 동안 집을 사거나 주식, 코인으로 재미를 본 주위를 보면 내 작디작은 평점심은 순식간에 산산박살이 나곤 했다. 특히, 부모님이 도와주셔서 주거를 해결한 친구들이 안정감과 동시에 엄청난 투자 수익까지 얻게 되는 것을 보면 아무 배경도 없는 혈혈단신의 내가 더 초라하게 느껴졌다. 넘을 수 없는 벽이 눈앞에 우뚝 서있는 것 같아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네가 아무리 안달복달 열심히 해봤자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라고 조곤조곤 알려주는 세상의 목소리가 연신 메아리쳤다.
그때 기회가 나타났다. 남자친구가 회사에서 자사주를 매입할 기회를 추가로 받은 것이다. 이미 자사주 매입을 틈틈이 하고 있던 우리는 대출을 받아서 살 수 있는 최대 금액을 사기로 했다. 그렇게 인생 첫 대출을 받았다. 사실 여기까지는 무리가 아니었다. 곧이어 살고 있던 집의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왔고 이사를 알아보고 있던 차에 경기도에 작은 아파트를 매입하게 되었다. 서울에서 밀려났지만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 금액으로 살 수 있는 아파트 중에 강남 출근이 가장 편한 곳을 골랐다. 몇 개월 동안 연신 1억씩 오르는 가격을 보며 조금은 조급하게 내린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순전히 우리 손으로 쌓아 올린 작고 소중한 집이었다. 이 집을 시작으로 얼른 갈아타기 신공을 발휘하면서 서울로 다시 돌아가자, 그렇게 생각했다.
계획대로 되면 인생이 아니다. 적어도 내 인생은 아니다. 버블이 꺼졌다, 우리가 마켓에 들어온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당연히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전은 역시 만만치 않은 놈이다. 사람들은 왜 집값이, 주식이 떨어지면 기다리지 못하고 팔아서 손실을 확정할까? 돈이 너무 빠듯해서 버티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더 떨어질까 봐 불안해서 일 수도 있다. 혹은 가격은 계속 떨어지는데 이자와 원금은 변함없이 착착 나가는 것이 꼴 보기 싫기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집은 움직이는 단위가 커서 몇 천씩 혹은 억이 떨어지는데 태평하게 언젠간 오르겠지, 열심히 잘 골랐잖아, 하며 30년 만기 대출금을 착실하게 내기가 정말 어렵다. 상상한 것과 실제 감당할 몫은 다르다. 소중한 집의 가격은 계속 떨어지는데 나는 내가 원래 갈 수 있었을 여행, 원래 살 수 있었을 것들, 원래 투자할 수 있었을 다른 것들을 끊임없이 참고 살고 있으니까. 아무리 찬란한 미래를 바라보고 있어도, 그 꾹꾹 눌러 담는 마음은 때로 한없이 무거워서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어떻든지 하고 싶은 것은 눈치도 없이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와 고개를 쳐들었다. 이제 나는 그중 무엇을 할지 정말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다. 3년 동안 일하고 받은 한 달 유급휴가 때도 돈이 아까워서 떠나지 못했다. 그 한 달이 지나고 또 일 년이 지나도 한달살이는 계속 나를 쫓아와 괴롭혔다. 왜 하고 싶은지도 스스로 설명이 되지 않았지만 어떤 것은 그저 해야만 하고, 해보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는다. 내게 한달살이가 그랬다. 가지 않으면 인생의 그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대출을 갚는 한편 안 사고 안 입어서 차곡차곡 모은 적금을 들고 치앙마이로 향했다. 전 세계의 디지털 노마드가 모이는 도시. 딱히 할 것은 없지만 커피와 재즈가 맛있다는 곳. 인생의 다음 챕터로 넘어갈 수 있는 다리. 대출은 많지만 하고 싶은 것도 많으니까. 착실히 갚으며 살아가는 내게 그것이 남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즐거운 일도 있을 거라고 알려주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