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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한중교수 Aug 22. 2019

[김한중 시인] 바람이 되어

바람이 되어


태풍 속으로 바람이 온다.

앞마당 감나무 이파리의 살랑거림

빨래줄 백의민족 속옷들의 촐싹거림

골목길 거미줄 같은 전선줄의 웅성거림

꽃 다방 미스 김의 번적이는 네온간판 출렁거림

바람은 함부로 건들고, 휘감고, 애무하며 오고 있다.


나는 바람 속으로 달리고 싶다.

거칠고, 할퀴고, 함부로 쓰다듬고 그 바람 속으로 가고 싶다.

내 엔진은 빨리 떠나기를 재촉하며 벌써부터 뜨거운 콧바람을 뿜어댄다.

차장을 때리는 무서운 바람도, 내 머리를 산발로 만드는 무례한 바람도

가장 고요하고 평온한 바람의 눈으로 가는 길엔 견딜만하다.

광포한 휘날림과 무례한 몸부림이 온전하게 차단된 바람의 눈으로 들어간다.


바람이 분다.

나는 무작정 달리고 싶다.

바람을 가르고, 바람 속으로 나는 달리고 싶다.


태풍이 오기 전

나는 광활한 벌판에서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이후에 몰아칠 소용돌이와 휘몰아치는 고함소리도 나에겐 무관하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고, 온 마음으로 느끼고 싶은 강렬한 열망

때로는 내가 사람이 아닌 저렇듯 진기하게 나타나는 자연이 아니었나 싶다.

오늘 이국異國의 이곳에도 태풍전야와 같은 바람이 불고 내 몸은 벌써 들썩인다.


가자 바람속으로, 그리고 태풍 속으로

한 겹의 바람에 내몸을 싣고, 또 한겹의 바람에 내 마음을 뿌려

바람의 눈 속으로, 내 사고의 깊이 너머로

사람을 싣고, 사랑을 싣고 겹겹이 쌓인 바람 속으로 나는 걸어간다.

한 조각 먼지처럼 흩어지는 순간이라도 나는 그렇게 서서히 걸어간다.


어느덧 바람이 내가 된다.

내가 바람이 된다.


▲ 비바람치던 날 여수의 밤바다     © 한국농업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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