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민성 대장 증후군이란, 스트레스를 받거나 긴장을 하게 되는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장의 운동이 비정상적으로 항진되어 경련성 복통과 설사. 변비가 번갈아가며 일어나는 증상을 의미한다.
살면서 우리는 예기치 못한 변화를 맞게 된다. 그게 자의든 타의든 새로운 환경이나 업무는 결코 피할 수가 없다. 나 역시 살면서 여러 변화를 맞이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고, 새로운 일에 대한 적응이 완벽히 되는 그날까지 내 예민한 장은 가만히 있질 못했다. 새로운 곳으로의 이직, 처음 해보는 업무, 중요한 자리가 있을 때는 늘 뱃속에는 천둥이 쳤고, 그다음 날 아침에는 꼭 화장실을 가야만 했다. 그래서 이직하는 새 근무지의 화장실 방문은 나의 루틴이 되었고, 일종의 나의 영역표시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영역 표시하는 횟수가 줄어드는 순간이 온다면 그건 내가 그곳의 환경을 적응했다는 걸 의미했다.
최근에 이사를 하면서 또 이직을 했다. 그래서 또 아침마다 화장실을 찾게 되었고, 출근할 때는 화장실을 들릴 여유까지 생각까지 하고 길을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영역 표시를 한다. 출근한 지 그래도 일주일은 된 거 같은데 여전히 출근길에 배가 아파온다. 그때 생각했다.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언제까지 새로운 곳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영역표시를 하고 다녀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마음속으로 이건 별 게 아니야,라고 외치지만 내 몸은 이미 스트레스를 느끼고 그에 따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나는 다시 또 나를 원망하게 된다. 나는 왜 이리 예민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멘탈이 약한 걸까. 왜 쓸데없이 상상력은 풍부해서 아직 일어나지 않을 최악의 상황들을 떠올리고, 또 왜 이리 감성은 풍부해서 뭐든 과하게 느끼고 힘들어하는 걸까. 그리고 왜 사소한 실수임에도 나 스스로를 크게 자책하게 되고,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모두가 내게 손가락질하는 기분을 느끼는 걸까. 그래서 나는 새로운 환경에 놓여 친하지 않은 그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여 나의 실수를 만천하에 공개되는 기분을 느끼는 것이 미치도록 싫다. 그리고 이 기분의 끝은 결국 내 '배설'로 이어졌다. 새로운 곳의 적응이 완료될 때까지 나의 영역 표시는 계속되었다.
그래도 내가 지금까지 이 짓거리를 반복하면서 깨달은 것이 좀 있다면, 나의 영역 표시 횟수가 줄어들 때쯤의 나는 꽤나 인정받은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랄까). 가만 보면 나는 유리멘탈을 가짐과 동시에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혹은 부정당하고 싶지 않은 자존심을 가지고 있었다. 유리멘탈을 가졌다는 것은 결국은 타인의 시선이나 의견에 민감한 사람들이고 그에 따라 쉽게 상처를 받는다는 건데, 결국 타인의 말에서 나 자신의 자존감이 결정 나지는 꽤나 슬픈 유형의 사람이지만, 그래도 그만큼 잘 해내고 싶다는 내재된 욕망이 강한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일을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 싫어 실수하지 않기 위해 긴장을 하고, 주위의 흘러가는 말에도 예민하게 받아들여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한다. 혹 주위의 사람이 실제로는 나에 대해 조금의 관심도, 일말의 기대감도 없을 텐데도 나는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자그마한 것에도 스트레스를 받는 나 같은 개복치는 아주 사소한 일에도 신경 쓸 수밖에 없었고, 아주 가벼운 욕조차도 먹기 싫어 부단히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들의 끝은 결국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으로 이어졌다.
스트레스가 결국 나의 성장을 도왔음을 나는 부정할 수가 없다. 그래, 그렇게 나는 한층 더 성장하고 있는 걸 거야. 개운한 마음으로 화장실에서 나올 때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긴장감으로 인한 배설로 영역 표시하는 나를 더 이상 원망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실수하는 내 자신을 마주하기 싫어하고, 누군가에게 일적으로 욕먹는 걸 싫어하지만, 그만큼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커서 그런 거니깐 나를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고 영역 표시가 끝날쯤에는 분명 나는 한층 더 성장했을 테니깐, 이런 나를 믿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