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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떼 Sep 09. 2023

할미가 되어서도 그게 기억이 나겠니.




나 스스로 유리멘탈임을 느낀 건 아무래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나서부터였다. 책임질 일이 크지 않았던 학생 시절과는 달리 나의 생존,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가 달려있을 거라 생각이 들었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걱정이 많아졌고, 마음이 불안정했고, 멘탈이 약해졌다.



 처음으로 나 자신이 멘탈이 약한 존재임을 느꼈던 건 첫 직장을 그만두고 바리스타의 길을 가겠다는 포부로 스타벅스에서 일했을 때였다. 그때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도 회사를 그만뒀다는 말을 하지 않았던 터라 아슬아슬한 거짓말을 하며 겨우겨우 비밀을 유지하고 있었다. 최저 임금, 주 5일 하루 5시간 30분 정도의 업무, 고정되지 않은 스케줄 근무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또래 친구들과 달리 불안한 환경을 안겨줬지만, 그래도 먼 훗날의 나의 목표를 생각했을 때 이것이 맞는 길이라고 위안을 얻으며 일했다.



 하지만 강도가 높고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스타벅스에서의 업무, 그리고 또래들과 비교해 봤을 때 안정적이지 않은 상황 때문인지 나는 점점 마음이 불안정해졌다. 스타벅스는 '군대벅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체계가 잡혀있는 곳으로 유명한데 (물론 거기에 '텃세'와 '군기'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그래서인지 사소한 거 하나에도 피드백을 들어야 하거나 내가 유동적으로 일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다행히 나는 인터넷에서 떠도는 몰상식한 파트너(스타벅스에서는 직원을 파트너라고 지칭)들처럼 텃세를 부리는 사람들과 일하진 않았어서 스트레스는 덜 했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바리스타의 길을 들어선 만큼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에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안 그래도 사소한 실수에도 자책이 심한 사람인데 거기에 사소한 것 하나에도 피드백을 받는 입장이 되어보니 점점 멘탈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아마 이건 나의 유리멘탈의 성격과 말도 안 되는 자존심,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한몫했던 거 같다.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나는 퇴근할 때마다 내가 저지른 실수가 기억이 나 자책을 심하게 하기도 하고, 그런 부주의한 실수를 저지른 내가 부끄러웠다. 누군가에게는 이 일은 단순히 아르바이트로 생각해서 고작 그게 뭐라고 그러냐,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을 나의 ‘직업’이라고 여겼던 나에게는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니라고 느꼈다. 그래서 내가 했던 실수에 더 집착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후회로 변해 나를 괴롭혔다. 그리고 그런 부끄러운 나 자신과 마주하기 싫어, 출근하기 싫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그런 내가 스타벅스에서 꿋꿋하게 일할 수 있도록 버티게 해 줬던 것은 다름 아닌 단 하나의 주문 덕분이었다. 내가 저지른 실수, 혹은 타인으로부터 상처받은 말들이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가 않을 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그게 기억이 나겠니?




 유리멘탈의 사람들은 외부 영향에 쉽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리고 외부로부터 받은 스트레스로 또 나 스스로를 괴롭힌다. 이게 얼마나 불행하고, 멍청한 짓인지 잘 안다. 하지만 유리멘탈의 성격이 이런 걸 어찌하랴. 남의 말에 상처받지 않아야지, 내가 저지른 실수를 어느 정도는 가볍게 넘어가야지,라고 다짐했지만 그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일을 내가 할머니가 되어도 기억이 날까? 어차피 나중에는 잊힐 일인데 이걸 왜 꽉 잡아두고는 스트레스를 받는 걸까? 잠깐 동안은 그것으로 내 실수를 보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면 되지만, 그걸 오래도록 마음속으로 품는 건 내게 폭력밖에 더 되지 않을까? 그리고 어차피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고, 십 년이 지나면 기억도 안 날 일일 텐데, 그리고 혹 기억이 난다고 해도 '그땐 그랬었지' 하고 웃으면 넘길 수 있는 일일 텐데 언제까지 자책해서 스스로를 힘들어할 텐가.



 처음 나 스스로가 유리멘탈의 소유자라고 느끼게 해 준 스타벅스를 퇴사한 지 벌써 4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때의 실수나 피드백, 그때 받았던 스트레스가 지금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결국, 할머니가 되기도 전에 다 잊을만한 일들이었던 것이다. 근데 나는 그걸 붙잡아 나 자신을 괴롭혔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이 주문을 통해 나 자신을 학대하지 않기로 했다. 언젠가는 잊힐 일로 인해 나 자신에게 폭력을 가하지 말자. 그러기에는 우리의 인생이 너무나 짧고 아깝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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