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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eiricbobo Oct 22. 2024

내겐 너무 도발적인 그녀

현실세계 팜므파탈

팜므파탈.

팜므파탈이란 단어는 남성을 파멸의 길로 몰고 가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여성을 일컫던 말로 19세기 낭만주의 작가들에 의해 문학 작품에 나타나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게 팜므파탈이란 그저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존재하는 '캐릭터적 설정' 정도로 여겨졌다. 히치콕물에서 남성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치명적인 매력을 지닌 가상의 존재 정도? 가령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바탕으로 이중스파이 역할을 한다던가, 필름누아르 속 메인 캐릭터로 인간의 본성을 파헤치는 역할을 한다던가. 예를 들자면 마리옹꼬띠아르나 에바그린, 혹은 역사 속 클레오파트라와 같은.


최근 만난 한 여자를 통해 현실 속 팜므파탈의 모습은 어떠한가를 내 나름대로 느껴볼 수 있었다. 본 글을 통해 그녀와의 이야기를 짧게나마 풀어보자.


편의상 그녀를 H라 칭하겠다. 나보다 정확히 10살 연하인 H를 처음 만난 것은 어느 평범한 토요일이었다. 술자리였다. 아는 사람들과 처음 보는 사람들이 뒤섞인 그곳에서 그녀의 미모는 단연 돋보였다. 누가 봐도 한눈에 시선을 뺏길 수 밖에 없는 매력적인 얼굴을 지닌 그녀가 전혀 다른 면모의 성격을 보여주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자마자 담배를 권하는 모습부터 다소 지저분(?)할 수도 있는 본인의 흑역사를 털어놓는 모습까지. 남자들의 관심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 얽매이지 않은 강한 자아. 그녀는 스스로를 숨길 줄 몰랐다. 아니, 숨고자 하지 않았다.


술자리는 무르익었고, 3차 자리로 착석하던 무렵, 그녀가 먼저 자리에 앉았고 내가 한자리 띄워 앉자, H는 본인 옆에 앉으라면서 나를 가까이 잡아끌었다. 그렇게 앉아 두어 잔쯤 마시던 그때.


“아, 엄청 안 넘어오네?”


갑작스러운 말에 당황해 "응?" 하고 되묻는 나를 보고 도발이라도 하듯, 그녀는 내 허벅지 위에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이래도 안 넘어와?”


내가 침착하게 그녀의 손을 치우자, H는 치명적인 미소와 함께 고개를 꺾어 내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로.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

"버티긴 뭘 버텨. 너 이러면 남자들이 오해해."

"난 너가 좀 오해 좀 했으면 좋겠는데."

"너랑 나랑 10살 차이... (웁)"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내게 격렬한 키스를 퍼부었다. 마치 몇달만에 만난 장거리 커플이라도 되는 것처럼.


내내 그녀를 말리고 달래던 나였지만, 한순간에 모든 것이 흐릿해졌다. 10살이라는 나이 차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발랄함, 내가 기존에 지니고 있던 여성상. 이 모든 것들은 단번에 상관없는 것들이 되었다. 시간도, 공간도, 우리를 둘러싼 이들의 시선마저도. 단지 그녀의 존재가 내 모든 감각을 장악했다.


이후에도 그녀와의 시간은 언제나 첫날만큼 강렬했다. H는 매 순간 나를 당황시키고 자극하고 또 끌어당겼다.


"만나서 뽀뽀할거야."

"누가 뽀뽀 받아준대?"

"누가 허락맡고 한대?"

" ... "


"오빠 내꺼로 만들어볼까봐."


그녀와의 장난은 나를 끝없이 흔들었다. H는 나에게 짜릿한 자극이었고, 나는 그녀의 매력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동시에 나는 마음 속 한켠에서 그녀를 위험한 존재로 인식했다. 언제든 어떤 남자든 매료시킬 수 있고, 또 그것을 스스로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여자. 그녀에게 마치 세상은 하나의 거대한 놀이동산인 것 같았고, 남자들은 그저 여러 놀이기구 중 하나에 불과한 것 같았다. 이런 생각과 함께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자 했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그녀의 매력은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H는 내게 '팜므파탈'이었다.


단어의 고정성과 표현의 한계로 인해 그녀를 팜므파탈이라는 단어로 묘사했지만 어쩌면 사실 그 둘이 표상하는 바는 전혀 반대일 것이다. 팜므파탈이라는 단어는 어떤 면에서는 전근대 사회에서 여성의 능력을 단순히 '아름다움'에 국한시키고 여성의 '주체성'을 '위험성' 또는'불건전한 의도성'으로 치환하는 장치이기도 했다. 즉, 남성들에 대한 여성들의 도전을 향한 하나의 억압인 측면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와 반대로 H는 내게 도전과 저항을 상징한다. 그녀는 나에게 단순한 '외적 아름다움'을 넘어 인간 내면에 자리한 고착성에 대한 타파를 의미한다. 사회적 고정관념에 대한 저항, 패러다임에 대한 도전, 삶의 무료에 대한 거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요즘을 향한 저항. 그녀는 나에게 신선한 자극이자 도발적 자유의 상징이다. 이쁜 얼굴 그 이상으로 멋있는 그녀가 앞으로도 계속 행복했으면 좋겠다.


#FemmeFata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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