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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귀자씨 Jun 13. 2020

모든 육아 가정의 특권

아이는 보고 느끼는 그대로 말합니다.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능력 범위 내에서 말이죠. 그걸 듣는 어른은 웃고 감탄하고 반성합니다. 예상 가능한 일로 가득 찬 어른 일상을 비집고 들어오는 아이의 순수가 신경세포 구석에 잠들어 있는 어떤 감정을 건드리기 때문이겠지요. 존재 자체로 누군가를 울고 웃게 만들 수 있다는 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존재도, 그 존재를 낳은 와이프도, 새삼 경이롭네요. 저만 잘하면 되겠습니다.


"나무가 너무 흔들리네." 태풍을 예고하듯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던 작년 가을의 일입니다. 사방으로 휘청이는 나뭇가지를 보며 운전하던 제가 말했습니다. 그러자 뒷자리에서 창밖을 내다보던 아이가 외칩니다. "나무는 지금 춤을 추는 거야!" 세상살이 억울한 게 많은 어른은 나무의 '당함'을 이야기하고, 보이는 게 전부인 아이는 나무의 '행함'을 말합니다. 이 순백의 마음을 어찌해야 할까요.


어떤 날은 함께 밤하늘을 보는데 아이가 홀로 밝은 별 하나를 가리키며 "외롭겠다. 엄마랑 아빠 잃어버렸나 봐"라고 말합니다. 부모가 만든 세상에서 뛰노는 5세 아이다운 추측이 사랑스럽기도 기특하기도 했습니다. 좋은 부모가 돼야겠다는 책임감도 들더군요. 그런 여러 가지 행복의 감정을 만끽하는데 아이가 말을 이어갑니다. "엄마 아빠는 체포된 건가?" 당시 아이는 경찰 놀이에 푹 빠져 있었답니다. 웃기면서도 부모가 제공한 세상에 자신의 경험과 해석을 입혀가는 모습이 대견했습니다.


와이프와 함께 간 꽃집에서는 벽에 걸린 고양이 사진을 보더니 "고양이는 하늘나라에 갔어?"라고 묻더랍니다. 말짱하게 살아있는 고양이였다는데(꽃집 사장님 죄송합니다)... 알고 보니 아이는 친구 집에서 본 강아지 사진을 떠올리며 질문한 것이더군요. 먼저 떠난 강아지 사진을 액자로 만들어둔 친구 집에서의 경험이 아이에게 '액자에 담긴 동물 = 하늘나라'로 인식된 모양입니다. 웃음을 주면서도 길잡이로서 부모 역할을 되새기게 만드네요.


양치질하면서 꺽꺽 소리 내는 할아버지에게는 심각한 표정으로 "할아버지 왜 토해?"라고 묻습니다. '야채타임'이 먹고 싶은데 과자 이름이 안 떠오르니 "그거, 채소가 파티하는 까까 있잖아"라고 말하고요. 변기에 앉아 응가가 잘 안 나오면 "응가가 나 안 보고 싶은가 봐"라며 시무룩해집니다. 예기치 못한 아이의 관점을 만날 때마다 일상의 자잘한 마음속 생채기가 치유되는 기분이 듭니다.


이런 건 사실 저만 누리는 호사가 아니죠. 모든 육아 가정의 일상입니다. 그저 감사한 나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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