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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귀자씨 Jun 01. 2020

골프와 어른의 세계

이 직전에도 한 달만에 브런치 글을 썼는데, 또 한 달 동안 브런치를 방치했다. 저번의 불성실 사유가 코로나19였다면 이번엔 골프다. 몇 년을 미루다 시작한 골프에 푹 빠져 한동안(실은 지금도) 정신을 못 차렸다. 이미 빼곡한 하루 스케줄에 골프 연습을 추가하려니 어쩔 수 없이 뭔가를 덜어내야 했는데, 그게 미안하게도 글쓰기가 됐다. 누가 작문 횟수를 체크하는 게 아님에도 스스로 약속을 해놓은 지라 골프채를 신나게 휘두르면서도 마음 한편은 계속 불편했다.


어린 시절 내게 골프는 어른 세계로 들어가는 기준점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어른 세계는 아빠의 세계이기도 했다. 골프채널 틀어놓고 연신 “기가 막힌다”를 외치던 아빠, 장성(將星)의 길목에서 한 주도 쉬지 않고 주말 골프를 나가던 아빠, 안부인사를 “요즘 운동 자주 하세요?”로 하던 아빠. 골프를 칠 수 있다는 건 어른이 됐다는 것, 어른이 됐다는 건 아빠가 될 자격이 있다는 의미로 이어졌다. 아빠의 자격이 골프라니, 지금 생각하면 집에서 쫓겨날 논리 구조다.


어쨌든 36년 만에 골프라는 어른 세계의 문턱을 넘고 보니 문득 내 인생도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든다. 밀레니얼 세대의 선두주자인 양 기성세대가 살아온 방식의 전형을 거부하고 선을 그으면서도 그 주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먹고사는데 무리가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아는 내 인생, 평범한 직장인으로 남기 싫다며 몸에 타투를 새기지만 출근할 때는 그 타투가 옷 밖으로 보일까 봐 노심초사하는 내 인생.


스윽 들어온 울타리 끝에 기대어 남과 다른 척 도도한 자세를 유지하지만 다시 담장 너머로 돌아갈 생각은 없는 것이다. 열 살 이상 많은 취재원과 골프 토크로 대동 단결하며 하루하루 어른 세계의 환영인사를 확인하고 안도하는 게 요즘 내 일상의 낙이다. 내 아이도 이런 나를 보면서 그때의 나처럼 아빠와 어른과 골프를 같은 선상에 둘까. 틈만 나면 유튜브 골프채널 구독하고 "저 드디어 운동 시작했어요"로 화두를 던져 취재원과 주말 골프를 잡는 지금의 내 모습이 30여 년 전 내 아이의 할아버지와 뭐가 다를까.


비슷한 인생의 반복이어서 허탈하다는 말은 아니다. 단지 내 삶이 남의 인생과는 엄청 다르게 비칠 것이라는 착각(실제로 착각을 좀 한 것 같다)에서는 서둘러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골프 입문을 계기로 말이다. 이 어른의 세계에서는 내 인생 거기서 거기여도, 남과 크게 다르지 않아도, 그래도 특별한 인생이고 소중한 삶이라는 마음가짐이 더 필요해 보인다.


마음을 재정비했으니, 이제 골프 연습장으로...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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