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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우 Aug 05. 2023

습관이 된 듯합니다

수박시

<Poem_Story>    

 

사람들이 일터로 향했고, 방학으로 흔적이 끊긴 골목골목 거리는 그림자처럼 한가합니다.

더운 날 그늘 같은 오후네요.  

고등학생 어느 날 땡땡이치고 돌아다닌 거리 같네요.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들고 있습니다.

뒤로는 장산, 앞으로는 수영만, 해운대 바다가 멀리 보이네요.

사무실 건물 옥상 그늘진 곳에 있습니다.


시원한 커피를 한 모금하며 멀리, 가까이 또는 가까이, 멀리 바라봅니다.

간간히 속삭이는 건강한 바람이 입에 머금은 커피처럼 시원합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주민자치센터 게양대 태극기도 펄럭이고,

원룸 옥상에 널어놓은 여러 개 물 먹은 빨래도 무겁게 흔들리네요.

멀리 보이는 수영만... 해운대 바다 물결도 바람에 따라 일렁입니다 착시현상인가요.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자연에 순응하며 그 자리에서 시절인연을 맺어가고 있습니다.

늦은 중년이 되어가니 그런 자연현상들도 아름답네요.

무일푼 아니 공짜로 습관처럼 즐기는 풍경들이 사소하지만 고맙네요.

그러니 미움도, 욕심도, 화가 남도 의미 없네요.


문득 어릴 때 큰 방 출입문 위쪽 벽에 걸려 있던 흑백 가족사진과 그 옆에 아버지가 충무동 시장에서 사 온 액자 속,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흔하게 사용하는 구절이 생각납니다.


아버지도 그때 사업이 어려워 삶이 힘들었었나 봐요... 그런 액자를 가족사진 옆에 걸어둔 것을 보면요.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훗날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프니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습관이 된 듯합니다>

     

햇볕이 눈 부신 것,

바람이 향기로운 것,

푸른 바다가 일렁일렁 이는 것,

게양대에서 태극기가 펄럭이는 것,

동료의 웃음이 늘 기쁨 주는 것,

이 모두를

사무실에서, 집에서,

무일푼으로 즐기는 것이 습관이 된 듯합니다.


언제부터

미워할 마음, 헐뜯는 마음, 상처받은 마음들이

냉이풀처럼 가슴에 눕고

그 가슴도 냉이풀처럼 이 땅 어디든 누워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맡겨 흔들리고,

파도가 일면 일렁이는 대로 수평선에 맡겨두는 것이

감당할 수 있어지자

습관이 되어 갑니다.


비록 내일

저 들녘, 바다, 제 가슴에

폭풍이 오더라도

늘 그렇듯 사무실은 평온할 것이고,

자연에 길들여져 있을 것이고,

게양대 태극기도 그냥 펄럭일 것이므로  

감당해 온 평안한 감정이

삶에서 무일푼으로 즐기는

습관이 된 듯합니다.


중년이 지나는 길목이기에,

모두를 즐겨 품을 수 있음은 기쁨이고

나이에 맞춰가는 습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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