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의 소화전, 묵묵한 섬김의 자리

by Guwani
20191111-1000310.jpg Greenville, SC. USA, 2019.

도시의 풍경 한켠, 낡고 빛바랜 소화전이 서 있습니다. 오랜 시간 햇볕과 비바람을 맞으며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졌고, 흙먼지가 앉은 모습은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듯합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고,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조차 머물지 않는, 그저 익숙한 길가의 일부일 뿐입니다.


이 소화전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침묵하고 있습니다.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아무런 활동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존재의 목적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재난,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맹렬한 불길이 닥쳤을 때, 이 묵묵한 존재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 안에 가득 찬 물은 위기의 순간에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희망이 됩니다.


이 소화전의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섬김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은 화려하고 드러나는 것을 칭찬하고 기억합니다. 눈에 띄는 업적과 빛나는 성공에 환호합니다. 그러나 참된 섬김은 종종 소화전처럼,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집니다. 중요한 것은 외적인 모습이나 당장의 성과가 아니라, 주어진 역할에 대한 신실함과 준비된 마음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낮은 자를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오셨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가복음 10:45)


우리는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소화전과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교회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봉사하고, 어떤 이들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우리의 헌신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나의 노력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화전이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준비하며 기다리듯이, 우리도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신실하게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채워지고 준비되어 있는 물처럼, 우리 안에는 성령님의 은혜와 말씀이 가득 채워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영적으로 목마른 이들에게 생명수를 흘려보낼 수 있고, 죄악의 불길에 사로잡힌 영혼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당장은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는 늘 깨어있어 영적인 위기의 순간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나의 삶의 자리에서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떤 곳이든, 그곳이 하나님께서 나를 세우신 섬김의 자리임을 기억합니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평가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신실하게 나의 역할을 감당하며, 때가 이르면 생명의 물을 흘려보내는 귀한 통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겸손한 섬김을 통해 주님의 사랑이 세상에 가득 흘러넘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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