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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M Apr 24. 2022

상상만 하는 건 지겨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고 상상이 현실이 된 경험 쓰기

“자, 오늘은 내 안에 있는 미친년과 미친놈을 꺼내 볼 거예요. 오늘만 쓸 이름을 하나 정해주세요. 욕이 들어가면 더 좋습니다. 저는 썅년 하겠습니다”


개년, 씹새끼, 조한비 등 이름들이 나왔다. 화를 내는 모임의 오프닝이었다. 


‘8명의 성난 사람들 – 분노의 火파티’를 열었다. 무언가 화를 내는 모임을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한 것이었다. 작년부터 마음 안에 쌓인 것이 계속 풀어지지 않고 무언가 뿜어지지 못한 마그마 같은 것이 있는 느낌이 있었다. 타인에 대한 화, 나에 대한 화가 뒤엉켜 해결되지 못한 채 머물러 있었다. 내면에 쌓인 분노를 풀어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혼자 하는 것보다 같이 해보고 싶었다. 주변에 이야기해보니 되게 좋을 거 같다는 의견을 주었다. 진짜 열어볼까? 그런데 사람들이 연다고 올까? 걱정과 우려가 앞섰다. 


먼저 한 단계 낮은 모임을 열었다. ‘모히또와 함께 하는 낭독의 밤’이라는 모임을 열었다. 말 그대로 모히또를 마시면서 희곡과 대본을 읽는 모임이었다. 처음 열어보는 모임이라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다. 하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모임은 성공적이었다. 눈을 5분 동안 마주치고 있기, 타인의 초상화를 종이를 보지 않고 그리기 등의 활동과 따뜻하고 귀여운 로맨스부터 사이코 연기까지 폭넓은 리딩 시간을 가졌는데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너무 좋았다는 피드백이 쏟아졌다. 한계를 넘었다는 이야기와 속이 시원했다는 것과 함께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다며 피드백을 한가득 주었다. 용기가 났고 다음 프로젝트 실행 계획을 세웠다. 


같이 극단에 있던 친구와 틈틈이 만나 회의를 하고 실험을 해가며 프로그램을 짰다. 연습실을 빌려 신문지를 찢으면서 화를 내보기도 하고, 복싱 글러브를 끼고 화를 내며 때려 보기도 했다. 욕으로만 대화를 해보기도 하고, 음악에 맞춰 뛰면서 힘든 육체와 함께 욕지기가 올라오면 질러보는 것도 해보았다. 카페에서 계속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해 보고, 점점 깊숙이 들어가는 방법과 턱을 낮추는 방법, 신뢰를 쌓는 방법에 대해 고민했다. 생각했던 것을 다시 실험으로 옮겨보면, 되게 재밌을 거 같은 게 생각보다 별로인 경우도 있었다. 욕으로 말하기가 그랬다. 욕 하나씩을 생각해 그것으로만 대화하는 것이었는데 그냥 너무 웃음이 났다. 반면에 의외의 부분에서 재밌고 해소감을 느낄 수 있는 활동도 있었다. 준비를 하면 할수록 내가 부족한 것이 느껴지고, 너무 우리가 큰 도전을 하는 거 같다는 생각에 멘붕이 올 때도 있었지만 이것저것 실험을 해보는 그 자체가 재미있었다. 


화 모임은 나름 괜찮았다. 웃겼던 건 화 모임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모두 새벽 시간대에 신청을 했다는 것인데, 알고 보니 모두 ‘홧김에’ 신청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미 화가 어느 정도 풀린 사람들도 좀 있었다. 5명이서 진행을 했는데, 모두 활동 중에 어느 부분에서 해소가 된 거 같다는 피드백을 했다. 하지만 나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일단 피드백이 전의 낭독 모임만큼 열화와 같은 피드백이 아니었고, 사람들이 막춤, 좀비 움직임 등의 활동을 할 때 턱에 걸리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명이 거의 끝나갈 때쯤에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가야 될 거 같다고 나간 것도 신경이 쓰였다. 시간이 오버되어 그런 것도 있겠지만, 괜히 그랬다. 또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정작 나는 화가 그렇게 풀린 것 같지가 않은 느낌이었다. 가장 소리를 많이 지르고 욕도 했지만, 나의 행위는 진행을 위한 행위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쉬운 마음을 곱씹는 와중에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그래도 내가 상상했던 프로그램을 구현해봤구나’. 2018년부터 방송 프로그램 기획안으로 썼던 것이 있었다. ‘분노의 기쁨-분노를 허락해드립니다’. 즉흥극을 기반으로 사연자가 화를 내보는 프로그램이었다. 자기소개도 즉흥극을 기반으로 짰다. 한 사람이 자신을 나타내는 키워드 3개를 이야기하면 그 3가지를 다른 크루들이 표현해주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생각해보니 그 내용이 거의 이번 화 모임에 들어가 있었다. 감정 키워드 3가지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이 표현해주는 것, 화나는 상황을 생각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화를 표현해 보는 것. 내가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이 단순히 시험용으로만 쓴 것이 아니라 실제로 구현을 해보았다는 것이 스스로 대견했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일단 해 보는 것. 그게 상상을 실현으로 옮기는 방법이었다.


대학 시절까지 나는 ‘지나가길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무언가 재밌는 공고가 뜨면, ‘내가 될까? 귀찮다.’ 생각에 신청 기간이 지나가기를 모른 채 하며 기다렸다. 그리고 지나간 날짜를 발견하면, ‘아 아쉽네, 날짜가 지나버렸네’ 하며 신청을 못해서 못한 것으로 자위했다. 무언가 멋진 걸 하고 싶었지만, ‘내가 한다고 누가 함께 하겠어? 관심이나 갖겠어?’라는 생각과 함께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내 마음에서 먼저 접어버리고는 했다. 


내가 꿈을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실현하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 건, 산티아고 순례길의 경험과 연극 경험이 큰 영향을 주었다. 상상만 했던 것을 실제로 걸어 보기도 하고, 유튜브로 올려 보기도 하고, 무대에 올려 보기도 하면서 ‘상상한 것이 실현 가능하다’라는 경험을 부지불식간에 쌓아온 것 같다. 


요즘에는 다시 상상 속에 나를 가두고 울적해하는 기분이었는데, 더 이상은 상상만 하고 평생을 이루지 못한 상상을 그리워하며 살고 싶지가 않다. 뭐라도 실현해 가면서 조금씩 나의 가능성을 넓혀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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