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눈을 가리면, 문밖으로 한 발도 나서지 못할 정도다. 문제는 안경을 써도 시력 교정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 수술하거나, 치료했어야 했다는데, 사실 예닐곱 살의 천방지축이 눈이 나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기도 어려울뿐더러, 부모님 역시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아들의 속사정을 제대로 알았을 리 만무하다.
누구든 오장육부 중 한두 곳의 기능은 남들보다 좋지 않다고 하니, 타고난 운명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때를 놓쳤다는 이유로 속상해하고, 억울해하는 것보다는 통제하기 힘든 운명이 있음을 받아들이고, 그런 운명마저 사랑하는 것이 한층 미래지향적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수밖에.
45년 이상을 한쪽 눈에만 의지한 채 살다 보니, 불편한 점이 많다. 특히 반사신경이 문제인데, 왼쪽에서 무언가 날아오면 피할 겨를이 없다. 축구공, 농구공, 야구공을 맞았던 적도 여러 번이다. 2배의 일을 해야 하는 오른쪽 눈은 늘 충혈되어 있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 늘 피곤해 보인다고 말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다고모든 이들에게 나의 사정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일 중독자로 오해받는 것도 썩 나쁜 경험은 아니니, 콤플렉스가 꼭 안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브라운 아이즈(갈색 눈)는 나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
40대가 되어 늦깎이 대학원 생활을 했다. 작은 글씨의 영어 논문과 pdf 파일을 자주 읽다 보니, 그나마 잘 보이던 오른쪽 눈마저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안경 도수는 점점 올라갔고, 급기야최근 1년 사이에는 근시, 노안, 백내장이 3종 세트로 찾아와 난 거의 눈뜬장님이 되어버렸다. 또래들보다 최소 5년은 빠르게 눈의 노화가 시작된 셈이다. 주변의 반응은 한결같다. “벌써 노안(노화)이 시작된 거야?”
5년 빠른 경제적 자유도, 5년 빠른 승진도 아닌, 5년 빠른 노화라니. 우울감에 빠지던 찰나, 또다시 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발동됐고, 나는 망설임 없이 어릴 적 짝꿍 선호를 찾아갔다.
고등학교 친구 선호는 안과 의사다. 그는 서울대 의대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천재다. 우여곡절 끝에 의대 교수를 그만두고, 몇 해 전 고향에 안과병원을 개원했는데, 그사이 자리 잡은 병원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새통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그가 실력이 뛰어난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 흔한 과잉 진료도, 수술 권유도 없다. 타고난 천재 특유의 냉소적인 면모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환자를 대하는 친절한 미소와 미사여구보다 의사는 진료와 치료, 수술 결과로만 말하면 된다.
언젠가, 선호는 나의 눈사정을 알게 되었고, 만약 본인이 안과의사가 된다면, 내 눈을 치료해 주겠노라 말한 적이 있다. 그때의 말을 선호가 지금껏 기억할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나에게도 새로운 세상이 보일 수도 있겠구나! 가능성의 실현 여부와는 별개로, 희망만으로도 오랜 시간을 버틸 용기가 생긴다. 25년을 기다린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나의 운명을 선호의 손끝에 맡겼다.
오른쪽 눈동자의 상처와 흔적을 제거하고, 다초점 콘택트렌즈를 넣었다. 아직은 초점이 잘 맞지 않는다. 그러나, 차분히 나의 때를 기다릴 준비는 되어 있다. 서두를 필요 없다. 선호의 설명으로는, 이제 적당한 거리를 두어야 사물도글씨도 보인다고 한다. 나의 적정거리는 60센티에서 1미터 정도. 사람마다 다소 차이(오차)가 있단다. 똑같은 수술을 해도, 저마다의 적정거리에 차이가 난다는 점이 새삼스럽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모두 다르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앞으로는, 너무 가까워도너무 멀어도 초점이 흐려져 뿌옇게 보일 거란다. 말 그대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다.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하는 운명이 시작되었다. 마음이 차분해진다. 억지스럽고, 번잡스러운 인연은 정리해야 할 때가 됐다는 생각에 기쁘다. 수술을 핑계로, 앞으로는 만남도 모임도 자제하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야겠다. 찾아오는 사람은 기꺼이 맞이하되, 떠나가는 사람은 굳이 붙잡지 않기로 한다. 단순한 것이 최선이다. 다시금, 나는 나의 운명을 사랑하기로 결심한다(Amor Fati).
2024년, 이승철은 3년 만에 신곡 <비가 와>를 발표했다. 그가 직접 노랫말을 붙이고, 편곡한 곡이다. 비가 내리는 날,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심정을 담고 있는 가사인데, 오히려 곡의 템포는 경쾌하고, 가창도 밝다. 멜로디는 귀에 쏙 들어올 만큼 단순하고, 후렴구의 반복 부분은 따라 부르기도 좋다. 쉬운 안무도 고안해 낸 듯하다. 이 곡이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화제가 될지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노래가 어렵지 않다는 점에서 개인적으로는 만족이다.
데뷔 39년 차 베테랑 가수의 여유가 물씬 풍긴다. 아이돌 가수가 뮤직비디오의 남자 주인공으로 출연한 걸 보면 제작비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기존의 올드팬뿐만 아니라, MZ세대에게도 노래가 널리 불리기를 바란 듯하다. 그는 지코가 진행하는 음악 프로그램에 나가 청춘들에게 신곡을 홍보하고, 문세윤의 유튜브(전부 노래 잘함)에도 깜짝 출연해서 북서울 숲을 찾은 여러 세대의 관객들에게 1시간 동안 무료 라이브 공연도 진행했다. 가수 혼자 음원을 들고나간 게 아니라밴드 전원이 참석해 모든 곡을 라이브로 연주했으니, 10만 원도 훌쩍 넘을 콘서트 티켓을 무료로 배포한 셈이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 여유로운 표정, 밝고 경쾌한 멜로디의 신곡, 숲 속 무료 라이브 공연은 사실 그의 경제력, 그리고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의 현재는 숱한 위기의 극복과 각성을 통해 만들어 낸 결과물이자, 그가 개척한 운명이기도 하다.
이승철은 몇 해 전오랜 기간 그를 괴롭혀 온 성대 폴립 제거 수술을 했다. 지금은 널리 행해지는 수술이지만, 한때는 목소리로 밥벌이하는 가수들 사이에서 자칫 목소리를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금기시되는 수술이기도 했다. 아무리 의학 기술이 발전하고는 있다지만, 타고난 성대가 전부인 가수에게 성대 수술은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리라. 그래도, 더 이상 때를 놓칠 수는 없는 법,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성대를 수술했고, 수개월간의 묵언수행과 재활의 시간을 견딘 끝에, 다행히 젊고 건강한 목소리를 얻게 되었다.
예순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그는 스무 살 <부활> 시절의 노래를 원키로 소화 가능하다며 너스레를 떤다. 실제, 그의 라이브는 예전보다 안정적이고힘이 있다. 그러나, 이승철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가성은 예전만 못하다. 강함(Hard)을 얻는 대신, 부드러움(Soft)을 잃었다고 하면 큰 실례일까. 어쨌든, 그가 주특기를 잃은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설령 하나를 얻고, 다른 하나를 잃는다 해도, 너무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는 없다. 이 또한 생각하기 나름이다. 한때 이승철은 가성이 전부라고 욕도 많이 먹었다. 나이 들고 고음이 안 올라가니, 가성으로 쉽게 노래한다고 말이다. 이제, 반전의 시간이다. 더 이상 에두르지 않고, 정면으로 감정을 표출할 수 있다. 되찾은 목소리로, 애이불비(哀而不悲: 슬프지만, 겉으로는 슬픔을 나타내지 않음)를 노래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노력 여하에 따라 언젠가 이승철 특유의 가성을 다시 듣게 될지도 모른다. 그의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하니, 차분히 지켜볼 일이다.
별수 없이 안 보이는 눈으로 평생 살 줄 알았건만, 그사이 세상이 발전해 나도 개안(開眼)을 하고, 광명(光明)을 찾았다. 인생은 반전의 연속이다. 기왕 선명해진 시야를 얻게 된 오늘, 앞으로는 조금 더 선명하고 간결한 삶을 살기로 결심해 본다. 누굴 만나든, 어느 무대에 서든, 자신감을 잃지 않고, 생각대로 실천하는 베테랑 가수의 여유로움도 쫓아야겠다. 선명함과 여유로움은 양립(兩立)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