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運)은 생각보다 강한 오브젝트(Object)다. 그리하여, 인생의 가장 깊숙한 비밀을 말하자면, 그것은 바로 성공은 운이라는 것이다.”
지금의 나와 비슷한 시간을 살다 떠나간 故 신해철(1968~2014)의 말이다. 같은 시간대를 걷고 있기는 하나, 그가 남긴 삶의 흔적은 너무나 진한 것이어서 감히 나이가 같다는 이유 하나로 그와 비교하는 건 실례다. 하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청년들에게 남긴 이 메시지에 나는 동의한다. 이렇게 생각해야 스스로 덜 부끄럽고, 다행스럽고, 안도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승철은 동네 형 김태원을 따라다니다가 부활의 보컬이 되었다. 이승철과 김태원을 흠모하던 또 다른 후배 신해철은 밴드 무한궤도의 보컬이 되어 대학가요제의 전설이 되었다.
신해철도, 이승철도 겨우 스무 살에 가장 빛나는 별이 되었다. 유튜브에서 1988년 대학가요제에서 영원한 청춘의 노래 <그대에게>를 노래하던 신해철의 모습을 보았다. 외모도, 노랫말도, 연주도,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하필이면, 그날의 심사위원장마저 조용필, 참가번호도 마지막이었으니, 영락없는 스타의 탄생이다. 그가 별이 되는 건 운명이었다.
신해철은 탁월한 가수 겸 작곡가 겸 작사가 겸 프로듀서 겸 철학자 겸 논객 겸 사회운동가였다. 타고난 재능이 특출 나고, 그 재능을 세상에 드러내야만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는 비범한 예술가였다. 무한궤도라는 작명도 예사롭지 않다. 해철이라는 이름의 첫 글자 해(海)는 바다, 끝이 없는 무한(無限)을 뜻하고, 두 번째 글자 철(鐵)은 단단한 길, 궤도(軌道)를 의미한다.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이름 해철은 무한궤도가 되었다가, 나중에는 015B라는 이름으로도 변주된다(01은 무한을 뜻하는 두 개의 숫자고, 5B는 Orbit, 즉 궤도라는 영어 단어를 숫자(5)와 알파벳 대문자(B)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른 성공은 독이라 했던가. 신해철은 100년이 지난 후에도 울려 퍼질 <그대에게>만 만든 건 아니다. 그는 대학가요제 대상, 솔로 앨범 히트, 그룹 NEXT의 성공, 후배 양성 등으로 다양한 음악적 성취를 이루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언제나 이슈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남들이 차마 내지 못하는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자청해서 내는 경우가 많았다.
노랫말을 통해 동성동본자들의 금혼에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고(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해), 간통죄 폐지를 주장했으며, 대마초의 비범죄화가 필요하다고도 역설했다. 100분 토론의 단골 논객으로 출연해 학생 체벌을 금지해야 한다며 분노를 표출하고, 국회를 유해매체로 지정하자는 주장도 했다. 공교육은 머지않아 폐지될 것이라 예언함과 동시에 프랜차이즈 학원 광고에 출연하는 패기도 보여줬다. 심지어 북한의 미사일 실험 성공에 축하의 메시지를 남기기까지 했다.
민감한 이슈에 대한 강한 목소리와 주장은 저항에 부딪히고, 반대(Anti)를 낳기 마련이다. 그가 이런 점들을 몰랐을 리 만무하다. 시간이 흘러 자기 생각이 짧았다거나, 생각이 바뀌었음을 고백한 적도 있다. 너무 많은 말들을 내뱉으면, 독이 되어 돌아온다. 그도 한낱 부족한 인간이고, 겨우 마흔 중반을 산 동시대의 시민이었을 뿐이다. 행(幸)과 불행(不幸)이 교차편집되는 것 역시 인생이요, 운명이다.
그는 순간순간 자신의 삶을 치열하게 살았으나, 겸손한 척, 넉넉한 척하지 않았다. 겸손은 미덕이지만, 겸손하지 않다고 욕먹을 일은 아니라고 일갈했다. 자기 색깔을 과감히 드러내며, 어디든 자신의 흔적을 남기며 살았다. 욕먹을 걸 알면서도, 실수를 반복해 두려움과 후회의 감정을 수시로 느끼면서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유명한 스피커로써 제 몫을 충실히 수행했다. 마치, 성공과 명예에 목숨 건 사람처럼.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마지막 강연에서 세상을 향해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태어난 게 목적이다. 그걸로 목적을 다한 거다. 그게 소명이고, 우리의 삶은 보너스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그는 이런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이 시대 청춘들을 향한 위로임과 동시에, 치열한 인생을 살았던 자신을 향해 스스로 덕담을 건넨 것이다.
누구보다 별이 되기를 원했던 스무 살의 청년은 자신만의 거품과 흔적을 남기며 평생을 살았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적인 성공, 부와 명성을 위한 건 아니었다. 타고난 재능이 있어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고백한 것인지 모른다. 예술가, 창작가, 운동가로 활동할 때보다, 두 자녀의 아버지, 한 여자의 남편일 때 그의 표정이 한결 밝고, 행복해 보였다.
현재(Present)가 곧 선물(Present)이다. 내가 하는 일에 충실하고, 오늘 나를 찾아온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며, 내 옆자리의 동료를 진심으로 대하면 된다. 그의 메시지대로 아프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언젠가 자신의 주제가가 될 것이라던 <민물장어의 꿈>은 운명처럼 그의 장례식장에 울려 퍼졌고, 그에게 가요 프로그램 1위라는 마지막 행운까지 선물했다. 이제 편안하게 받아들이자. 성공은 운(運)이다.
1985년, 이승철은 그룹 부활의 보컬리스트로 <희야>를 세상에 선보였다. 조용필이 ‘기도하는~’을 외치면 모든 여성 팬이 꺅! 하고 소리를 질렀다던 <비련> 이후, 실로 오랜만에 ‘희야~’의 시작과 동시에 관객의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전설의 노래 시즌 2가 탄생한 것이다.
제아무리 노래를 잘 부르고, 기타, 드럼, 베이스를 잘 친다고 해도,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청년들이 발표한 첫 번째 앨범이 이렇게까지 성공한 건, 분명 행운이다. 이승철은, 이십 대 초반 이미 완성형 보컬리스트로 명성이 자자하던 김종서의 탈퇴로, 앨범 제작 직전에야 <부활>에 합류한 단점 많고 운 좋은 풋내기였다.
김종서의 고음, 임재범의 허스키 보이스를 익히 알고 있던 <부활> 멤버들에게, 이승철은 부족한 것 투성이인 햇병아리였다. 동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룹의 보컬리스트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리더 김태원의 독특한 시각, 그리고 개인적 취향 덕분이다. 거친 듯 섬세한 이승철 특유의 미성, 그리고 끝 음 처리의 비브라토가 다른 단점을 상쇄할 만큼 마음에 들었다.
돌이켜보면, 마초들의 남성성이 가득한 1980년대 대한민국 록(Rock) 신에서, 이승철의 목소리, 그리고 곱상한 외모는 차별화된 핵심 성공 요인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른바 틈새시장이다. 물론, 김태원이 이를 예측하고, 그를 영입했다고 보는 건 무리다. 성향과 직관에 충실했을 뿐이다.
<희야>는 김태원이 만든 곡도, 이승철이 만든 곡도, 그렇다고 <부활>의 다른 멤버가 만든 노래도 아니었다. 동료 작곡가 양홍섭이 곡과 가사를 쓴 노래다. 작곡가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음악으로 알려져 있다. 어쩌다 보니, 행운이 넝쿨째 굴러들어 온 형국이다.
<희야>가 발표되고, 이게 무슨 록이냐며 마니아들로부터 욕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든 <비와 당신의 이야기> 같은 록 음악의 진수를 담은 노래를 제쳐두고, <희야>를 타이틀로 앨범을 홍보한 건 결과적으로 묘수(妙手)였다. 음악은 동료, 평론가가 아닌, 듣고 이가 가치를 평가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희야>는 운의 연속이다.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승철의 도전, 김태원의 직관, 작곡가의 사연, 제작자의 결단이 한데 어우러져 <희야>의 성공을 낳았다. 이 중 하나라도 삐끗했다면, 전설은 시작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더욱이, 성공은 운(運)이다.
그러나, 4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돌아보건대, <희야>라는 행운이 이른 시기에 찾아왔을지언정, 이승철의 성공은 필연이다. 때로는 제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40년간 계속 시도했으니, 언젠가 <마지막 콘서트>, <Never ending story> 같은 또 다른 곡들을 만나는 것도 운명이었으리라.
시행착오(Trial and Error)의 지속성이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핵심 요인이다.
탁성 불가, 고음 불가 이승철은 그러나 용기를 내 김태원을 찾아가 오디션을 보았고, 기회를 살렸다. 행여 오디션에서 탈락했더라도, 그는 계속 도전해 결국 <부활>했을 것이다. 실력은 둘째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과 한계는 분명하다. 부족한 실력은 꾸준한 노력과 연습으로 메우면 된다. 김종서처럼, 임재범처럼 노래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부족한 면이 있더라도, 본인 깜냥대로 시도하다 보면 가치를 평가받는 날은 온다.
저마다의 때가 있다. 언제 행운을 마주할지는 알 수 없다. 오늘이 자기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임을 알고, 계속 삶의 흔적과 기록을 남기고 산다면 충분하다. 신해철의 말처럼, 앞으로의 날들이 모두 보너스라면, 도전하지 못할 일이 또 무엇이겠는가. 세상에 명성을 떨치지 않더라도, 이승철이나 신해철처럼 노래 부르며 살지 않더라도, 자기 페이스대로 자취를 남기면서 살면 성공이다.
성공은 운이다. 그러나, 운이 곧 성공은 아니다. 성공의 흔적, 실패의 기록을 계속 쌓아가다, 먼 훗날 인생을 되돌아볼 때 성취는 하늘의 덕으로, 실패는 본인의 탓으로 돌리는 게 멋질 듯하다. 시행착오가 성공을 불러오는 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