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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요세프 May 28. 2024

누구나 어른이 돼서 (1994)

시대유감

1994년, 이승철은 <누구나 어른이 돼서>를 발표했다. 이 노래는 청년 시절의 이승철이 미국으로 건너가 유명 해외 음악인들과 협업하여 제작한 4집 앨범 ‘색깔 속의 비밀’(Secret of Color) 수록곡 중 하나다.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한 몇 안 되는 노래 중 하나다. 그의 취향이 많이 반영된 곡이라고 볼 수 있다.  

   

‘누구나 어른이 돼서 철없던 어린 시절을 돌이켜 생각할 때면, 어쩐지 쑥스럽겠지’라는 노랫말이 인상적이다. 철없던 시절에 대한 일종의 자기 고백이다. 청년 이승철은 크고 작은 실수를 적잖이 했다. 최고의 인기가수, 10대들의 우상 소리까지 듣다 보니, 그를 향한 비난은 더욱 거셌다.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자숙하면서 언제 다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를 기다리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는 회피하지 않고 힘든 시간을 버텨냈고, 지금에 이르렀다. 참회와 성찰, 반성은 말이 아닌 행동과 시간의 축적으로 증명할 수밖에 없다.  




남을 욕하는 건 쉽다. 그러나, 실수와 잘못은 결코 다른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실수하면서 산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뒤돌아보면>, 남이 알면 손가락질받을 잘못도 많이 했다. 여전히 남을 배려하는 마음씨 넉넉한 어른이 된 것 같지도 않다. ‘자신의 얘기밖에는 남 얘긴 들을 줄 몰라’라는 가사에 유독 눈길이 간다. 비단, 나만 그런 건 아닌 건가 싶어 그나마 다행이다.    


관용(寬容: 너그럽게 용서하고 받아들임)이 사라져 가는 세태의 변화를 오롯이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기는 어렵다. 삶이 팍팍해지고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데는 외부적 요인의 영향이 크다. 개인의 소득이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한 지 오래고, 소수가 차지하는 부의 점유율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서민의 삶과 직결된 국가의 주요 정책들은 정권에 따라 4~5년에 한 번씩 180도 뒤집힌다. 상식과 몰상식이 그때그때 달라지고, 여야(與野) 간 갈등은 나날이 깊어지고 있으니, 정부라는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마저 든다. 국민 평균연령도 40대 중반을 향하고 있어 희망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져만 간다. 기댈 곳 없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다.      



한 유명 가수의 음주운전 뺑소니 사건 후폭풍이 거세다. 사람은 누구나 잘못하기에, 남의 눈에 티끌은 보아도 제 눈의 대들보는 보지 못하기에, 누구도 특정인을 과도하게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계속된 거짓말과 조직적 사건 은폐 시도는 결국 드러나게 마련이다.


노자(老子)가 말하길 ‘하늘의 그물은 넓디넓게 펼쳐져 성긴 듯 보이지만, 그 무엇도 놓치지 않는다’ 했다. 가래로 막을 일을 호미로도 막지 못할 지경에 이른 점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번 일이 큰 화제가 된 것은 단순히 거짓말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유명인의 일거수일투족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투명한 시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시대지만, 여전히 남보다 많은 돈으로 남보다 좋은 뒷배경으로, 남과는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유효한 까닭이 크다. 이번 사태를 접하는 사람들의 반응에 분노와 허탈감, 무기력감이 뒤섞여 있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음주운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던 시대에서, 예비적 살인 행위로까지 간주하는 시대로 변했다. 실제 법 집행이 엄격한 지와는 별개로, 최소한 국민 법 감정만큼은 그러하다. 이른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가 일반화되어 이제 음주운전을 한 직장인은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중징계를 피할 수 없다.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자칫하면 파면 각이다. 비단 음주운전뿐 아니다. 갑질, 성희롱, 모욕, 명예훼손의 범위와 처벌 수위도 점점 강화되고 있다. ‘왕년에는, 옛날에는’ 같은 무용담은 신고 대상일 뿐이다.   

  

감시·처벌사회가 도래했음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사기·범죄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웬만한 죄는 돈과 인맥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믿음이 사회 밑바탕에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중죄를 저지른 후에도 공권력(국가, 법률)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 이들이 넘친다. 오죽하면, ‘1도 2부 3백’(우선은 도망치고, 잡히면 부인하고, 최후에는 백(빽)을 쓰면 된다)이라는 괴상한 신조어까지 생겼으랴. 로스쿨을 졸업한 신규 변호사도 매년 수천 명이 배출돼 불에 기름을 붓는다. 사건 수임 경쟁이 치열해지니 큰 잘못도 별일 아닌 게 되고,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방법들이 널리 공유될 지경에 이르렀다.   

  



남과 교류하며 살 수밖에 없는 세상이기에, 나와 너의 의견 차이, 이해관계의 득실로 인한 분쟁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변호인의 도움을 받고, 제삼자(법원)로부터 기여도 차이, 책임의 정도를 확인받는 일은 필요하다. 재산상 피해, 금전적 이득을 정확하게 산출해서 보상받을 수 있다면, 이익금 일부를 떼어 소송대리인에게 추가로 지급한대도, 뭐랄 사람은 없다.

     

내가 남보다 잘하거나 자신 있는 일을 하는 것, 반대로 내가 서툰 일에는 다른 전문가의 조력을 받고 합리적인 대가를 지급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회생활의 요체다.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 같은데, 선대의 학자(신고전 경제학파)들은 이를 집대성하여 ‘거래비용 이론’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노벨상까지 받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신체적 위해(폭력)를 가하거나, 상대를 속여 금전적 손해를 입히거나, 공공의 안녕을 해치는 경우, 즉 형사(刑事) 사건은 피해자를 대리해 국가(검찰 경찰)가 소송의 당사자가 된다는 측면에서 민사소송과는 달리 접근해야 한다. 가해자 처벌을 위해 국가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점에서, 만인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논리는 정당성을 부여받는다.  

    

간단하다. 죄를 지으면 유죄, 죄가 없으면 무죄, 그게 전부다. 판검사 출신의 전관(前官)이 변호했다는 이유로 유죄가 무죄되고, 행여 죄 없는 누군가 억울한 옥살이를 한다면, 이런 사례가 하나둘 쌓여간다면, 머지않아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는 무너질 것이다. 선진국은커녕, 졸지에 헬-조선으로 퇴보할지도 모른다.

    



2015년에 나온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형사 사건과 관련된 성공보수는 위법이다. 당연하다. 힘센 변호사의 노력으로 유무죄가 바뀐다면, 그리하여 상식과 관습, 사회통념에 어긋난 판결이 늘어난다면, 세상은 무법천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안다. 유력한 전관을 향한 줄 서기, 그에 따른 성공보수는 여전히 음으로 양으로 횡행한다는 것을 말이다. 하기야 인신구속이 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에 선 사람이라면, 천문학적인 수임료 그리고 보너스(성공보수) 요청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미국인이 쓴 ‘정의란 무엇인가’가 대한민국의 베스트-셀러가 된 것, ‘기회의 평등,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 같은 캐치프레이즈가 장안의 화제가 된 것은, 실제 세상살이가 이와 다르기 때문이리라. 사기나 범죄로 10억 원을 번 후 그중 9억 원을 써서 벌을 면하면, 돈을 아낄 사람은 없다. 행여 힘이 덜 센 변호인을 고용해 5억을 주고도 5년 형을 받는다 한들, 사실 손해가 아니다. 5년의 대가를 치르고 나도 5억이 남는다. 시간의 기회비용을 연봉으로 환산하면 1억이다. 가해자로서는 이 정도면 해볼 만한 거래가 되는 셈이다. 동종 범죄가 처음이고, 반성의 기미가 있으며, 상대방 측과 원만한 (금전적) 합의까지 했다면, 형의 집행을 유예받을 수도 있다.   


시대유감(時代遺憾)이다. 바늘 도둑은 잡아가고, 소도둑은 건드리지 못하는 시대만큼은 거부한다. 죄형법정주의라고 배웠다. 죄와 벌은 모두 법률에 열거되어 있으니, 누구든 잘못한 만큼 벌 받으면 된다. 물론, 억울한 피해자가 안 생기는 것이 기본값이다. 공권력을 명분 삼은 먼지털이·망신주기식 수사는 검찰개혁의 국민적 요구를 부추길 뿐이다. 사법부가 최후의 보루라는 말이 괜한 이야기는 아니다. 부디, 시스템이 붕괴하기 전에 ‘공정과 상식’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단단한 뿌리로 자리매김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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