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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wover Mar 01. 2020

같은 책 다른 느낌, 「리스본행 야간열차」1주차

밑줄 긋고, 한마디


p. 25 그가 라틴어 문장을 좋아하는 이유는 이 문장들이 과거의 모든 침묵을 자기 안에 품고 있기 때문이었고, 뭔가 대답하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그는 '침묵, 대답하라고 강요하지 않기 때문' 이런 이유를 들며 라틴어를 좋아한다고 했다. 심지어 라틴어와 비슷한 에스파냐어가 실생활에서 사용되고 들리는 것을 괴로워했다. 하지만 훌쩍 떠나 버린 곳에서 떠듬떠듬 내뱉은 포르투갈어가 실제로 의미가 통하고 제 역할을 하는 순간을 평생 못 잊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 차이는 뭘까? 대답 없는 침묵의 언어만을 사랑하던 그가, 실제로 사람들이 사용하고 소통하기 위해 사용되는 언어에게 갖던 적대감(?)을 단숨에 없애버린 그 무언가가 뭐였을까?


p.26 어쩌면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 여기 있는 게 아닐까

사람들은 '그냥'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쓴다. 진짜 내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냥'이라고 말하고 지나가 버리는 모든 순간의 진짜 의미, 진짜 이유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보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깊게 고민해도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순간이 있다. '그냥' 외에 어떤 말로도 내 속마음이 표현이 안 되는 순간. 그 건 사실은 '몰라서'였는지도 모른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서 어쩔 수 없이 선택된 선택지였기 때문에 그 선택의 이유를 알 수 없었던 게 아닐까.


p.26 살면서 자주 그랬듯이, 지금도 그는 외부세계를 향해 빗장을 지른 채 생각에 잠겨 홀로 있었다.


p.27 _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영혼의 고고학자가 되어 이 보물로 눈을 돌리면, 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게 된다. 관찰의 대상은 그 자리에 서 있지 않고, 말은 경험한 것에서 미끄러져 결국 종이 위에는 모순만 가득하게 남는다. 나는 이것을 극복해야 할 단점이라고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혼란스러움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익숙하며서도 수수께끼 같은 경험들을 이해하기 위한 왕도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이상하고 묘하게 들린다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서야 깨어 있다는 느낌, 정말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경험 가운데 우연히 선택된 어느 하나만 이야기하고,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은 '경험'했다고 해서 우리가 그 경험이 가지는 의미, 경험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는 뜻인 것 같다. 지금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다. 나는 책을 읽었고 심지어 읽으며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라고 밑줄을 쳤었다. 하지만 그 밑줄 그은 말들을 다시 모아 타이핑하다 보니 한 발 더 조금 더 깊숙이 생각해보게 된다. 스쳐지나간 것은 '경험했다'라고 말할 수 없다. 스쳐지나간 것은 그냥 그 옆을 지나친 것일 뿐이다.


p.28 _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냥 그대로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채로 나와 함께 묻히는 거 아닐까? 그 아주 작은 부분이 어떤 부분이 될지, 나의 좋은 부분일지, 어두운 부분일지, 나의 어느 부분을 경험하고 갈지를 내가 고를 수 있는 걸까? 아니면 고르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걸까? 그냥 랜덤으로 선택되는 걸까?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어려움을 겪지만 모두 다르게 반응한다. 툭툭 털어버리는 사람, 우울증에 걸려 허우적대는 사람. 같은 일을 겪어도 누군가는 웃어넘기고 누군가는 화병에 걸린다. 이 차이가 나의 어느 부분을 경험하는가가 가져온 걸까? 인간이 뇌를 4% 쓰고 간다는 말을 듣고 사실 누구나 실제 뇌가 가지는 능력은 비슷하겠구나.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4%를 쓰느냐에 IQ가 결정되는 것 같다고. 결국 가지고 태어난 건 누구나 같지만 그 안에서 어느 부분을 선택해 사용하느냐가 차이를 만드는 것 같다고. 마인드맵처럼 생각을 뻗어나가다 보니 더 어지러워졌다.


p.30 비행기에 올라타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완전히 다른 세상에 도착한다는 사실 - 그 중간에 놓인 개별적인 모습들을 받아들일 시간도 없이-은 그레고리우스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 중간에 놓인 개별적인 모습들을 받아들일 시간도 없이'라는 말을 곱씹어봤다. 보통은 그 중간에 놓인 개별적인 모습을 가려버리지 않나.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곧 3개월 후.라는 텍스트 하나로 3개월이 지나간다. 그렇게 하고 after 영상이 나오지. 일 년 계획을 세울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토익 950점 받기.라고 다이어리에 적어두고 결과만 떠올린다. 그 과정은 외면하고 싶은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 중간의 시간들, 과정을 슬로모션으로 찬찬히 들여다보며 변화를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이 누구에게나 필요한 게 아닐까.


p.30 집에 혼자 있을 때면 거실에 있는 컬러텔레비전은 끄고, 화면이 어릿어릿하고 영상이 가끔 밀려 올라가는 낡은 텔레비전을 켰다.

거의 컬러텔레비전 밖에 없는 세상에 태어나 흑백텔레비전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번에 기생충 흑백판이 개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 흑백이 주는 효과가 뭘지 생각해봤다. 디테일이 안 보여서 답답할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다음엔 그 디테일이 뭉개지고 양쪽 극단으로 편 갈라 나눠지는 화면이(흑색과 백색으로)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갖는 메시지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맥주 한잔 하면서 한번 봐야겠다.


p.33 새로운 삶이 어떤 모습일지 저도 모릅니다만, 미룰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시간은 흘러가 버릴 것이고, 그러면 새로운 삶에서 남는 건 별로 없을 테니까요. 그레고리우스는 크게 소리 내어 이렇게 말해보았다. 이 말은 옳았다. 그는 자기 인생에서 이렇듯 옳고 의미 있는 말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레고리우스는 그 여자에게서 '죽음'을 봤던 것 같다. 그렇게 인생의 마지막 관점에 서서 바라보면서 자신의 인생이 벌써 많이 지나가버렸다는 생각에 붙잡혔다고 할까? 학생들을 보며 앞으로의 창창한 인생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자신의 이 선택에 대해 미룰 수 없다, 앞으로는 기회가 없다. 등의 생각이 자꾸 비치는 것도.


p.36 _뚜렷하지 않은 심연. 인간 행위의 표면 아래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비밀이 있을까? 아니면 인간은 자신이 만천하에 드러내는 행동과 완벽하게 일치할까?... 인간의 모든 행위는 알 수 없는 심연에 숨겨진 내적인 삶이 겉으로 드러내는 표현, 그것도 심연에는 전혀 가깝지 않으며 아주 불완전하고 거의 우스꽝스러우리만큼 약한 표현일 뿐이라는 것이 확실해진다.... 나 자신에 관한 일인 경우에도, 그러니까 우리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의 일에서도 다른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흔들린다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일들을 불러일으키고 나를 휩쓸어갈 수 있는 감추어진 심연과 나락이 내 안에 있음을 갑자기 확연하게 느끼게 된다.

나를 들여다보면 말도 심연도 행동도 그 어느 것 하나 완벽하게 일치하나? 내 심연에 무엇이 있는지는 심지어 나 스스로도 모른다. 심연과 생각 또한 일치하지 않는다. 아.... 그런데 심연이 만약 무의식으로 발동된다면? 그래서 행동으로 나온다면 심연은 생각과는 일치하지 않아도 오히려 행동과는 일치할 수 있는 걸까?


p. 39 내가 원하는 정화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난 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언어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 하지만 무엇을?


p.40 그는 이미 그 거리를 지나왔고, 자신이 감행한 이 조용한 여행을 다른 사람들이 무위로 돌려버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p.42 자신의 판단이 지속적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시간을 들이는 그런 것이었다.


p.42 안정적인 사람이 되려면 스스로 행복해야 했다.

혼자로 온전히 행복하고, 외롭지 않을 때 함께 해야 항복하다는 말을 늘 마음에 새긴다. 누군가에게 기대기 위해 함께 하는 것은 결국 서로를 힘들게 하는 일이다.


p. 43 언제 돌아올지, 돌아온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될지 저도 아직 모릅니다.


p.46 무엇인가와 작별을 할 수 있으려면 내적인 거리두기가 선행되어야 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정체불명의 '당연함'은, 그것이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확실하게 알려주는 '명료함'으로 바뀌어야 했다.

당연함과 명료함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이 둘의 차이가 뭘까?


p.48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이러한 기분을 들킬 염려가 없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p.49 이 자각이 커질수록 가능성과 실제와의 관계가 자꾸만 거꾸로 느껴졌다.... 원래 가능성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을까. 우연히 현실로 나타났을 뿐. 그런 반면 그가 지금 이 순간 경험하는 것들, 즉 기차가 움직이는 소리, 약한 기적 소리, 옆의 식탁에서 컵들이 열차의 진동에 따라 떨리는 소리, 부엌에서 나는 오래된 기름 냄새, 요리사가 이따금 뿜어내는 담배 냄새, 이것들은 모호한 가능성이라거나 현실화된 가능성이 아니라 실제였다. 그것도 밀도가 높고 강력한 필연으로 가득 찬 실제, 단순하면서도 순수한 실제, 온전히 현실적인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실제가 아닐까?


p.55 인생을 결정하는 경험의 드라마는 사실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할 때가 많다.... 경험을 하는 당시에는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인생에 완전히 새로운 빛과 멜로디를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이 아름다운 무음에 특별한 우아함이 있다.

처음 읽으면서 밑줄을 그었던 순간이 떠오르는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내 인생의 어느 순간을 떠올렸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은 오히려 미래를 떠올렸다. 결혼을 고민하는 요즘 그냥 알겠다.. 결혼을 결정하는 그 순간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하고 고요히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어릴 적 생각한 것처럼 폭죽이 터지고 형형 색깔 빛이 어른 거리는 그런 순간이 아닐 거라는 것을 안다.


p.59 방금 한 경험이 자신을 경악하게 만들지 않고 그저 무척 놀라게 했을 뿐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이 순간에 그레고리우스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그는 그냥 '이 놀라움은 몇 주일 동안 지속되었다'라고 표현했는데, 그게 그저 '놀라움'이었을까? 무섭지는 않았을까? 내가 원래 이런 인간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 경험은 다르지만 나도 스스로에게 무섭도록 놀랐던 순간이 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니. 그런 마음을 먹는 사람이었다는 게 그저 놀라고 넘길 수 없었던, 지금보다는 꽤 많이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p.60 _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또 한 번 더 밑줄을 그었다.



p.63 "사람들은 가끔 정말 두려워하는 어떤 것 때문에 다른 무엇인가에 두려움을 갖기도 하지요"

두려움을 두려움으로 돌려막기. 듣고 보니 그래 본적이 있는 것도 같고...



p.64 실망과 슬픔이 깔려 있지만, 자기 연민이 배어있지 않은 목소리에 그레고리우스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남의 이야기하듯 무심한 어조, 넓게 보면 잘못된 결정을 내린 타인에 대해 말하는 듯했다고 했다. 우울증의 시작이 '자기 자신'만 다르게 대하기 때문일 때가 많다. 남에게는 너그러우면서 자기에게만 팍팍한 사람, 자신과 타인에게 서로 다른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사람. 이건 남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같은 잣대를 가지고 평가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남과 같이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한 채 바라보면 스스로를 괴롭히고 상처 주는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p.65 이야기를 한 게 갑자기 후회스러웠다. 소중한 그 무엇인가가 사라져 버린 듯했다.

뒤에서 그는 90이 넘은 코 우팅 뉴에게 책을 물어보면서 이상한 포르투갈 여자 이야기까지 한다. 그렇게 했을 때에는 야간열차에서 말할 때와 아주 다르게 들렸다고 했다. 그가 갑자기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선택을 하게 만든 트리거를 빼고 말하면 어쩔 수 없이 그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이상한 이유가 달라붙는다. 그것이 이 신비로운 그의 행동, 그의 선택의 의미를 퇴색시킨다고 느낀 것 아닐까.


p.82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갑자기 자기 인생을 마지막 관점에 서서 생각하게 됐고, 어떤 포르투갈 의사가 마치 그에게 쓴 것처럼 느껴지는 책을 우연히 손에 넣게 되어 찾아온 도시

그렇게 이상하고 신비롭고 오묘한 우연이 겹쳐 이건 필연이야. 무언가가 나를 여기로 이끈 거야.라고 느껴지는 묘한 끌림. 내가 결정하고 내가 내발로 걷는 게 아닌 것 같은 붕 뜬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다. 내가 그걸 언제 느꼈더라....


p.97 그레고리우스가 그에게 이야기를 할 때의 음색은, 야간열차에서 주제 안토니우 다 실우 베이라에게 말할 때와는 달랐다. 특히 키르헨 펠트 다리에서 만난 이상한 포르투갈 여자와 그녀가 이마에 적은 전화번호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모두 했기 때문에 아주 다르게 들렸다.


p.101 새어버리는 시간과 죽음에 대한 생각? 원하는 게 무엇인지 갑자기 모른다는 것? 자기 소망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 자기 의지가 지녔던 지극히 당연한 익숙함을 읽은 것? 그래서 이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낯설어지고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


p.101 그레고리우스는 뭘 해야 좋을지 모를 때마다 독서를 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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