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눈치가 빠른 사람입니다
단편집이란 이런 걸까 순서 없이 골라 읽은 두 편이 모두 날카롭고 또렷하니... 편안하지 않은 이야기 들이었다.
특히 두 번째 골라잡은 ‘음복’. 시댁 제사에 한번 참여하는 것만으로 (남편은 평생을 모르고 살았던) 이 집안사람들의 미묘한 마음들이 모두 읽힌 주인공은 나를 닮았다.
자기소개서 단골 질문으로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최대한 강조하고 단점은 단점이지만 단점 같지 않은 단점 아닌 걸 잘 골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내용을 잘 버무려 지금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그 단점이 나를 더 성장시켜주었음을 적는 것이 좋다는. 묻는 사람은 편하지만 답하는 사람은 아주 고민스러운 질문이다. 단점은 매번 다르게 썼던 것 같다. 각 회사에 맞게, 회사에서 너무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은 점은 피하고,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성향 중에 하나를 골라잡았었다. 하지만 장점은 늘 똑같았다. ‘눈치가 빠른 사람입니다.’
저는 눈치가 빠른 사람입니다
눈치가 빠르다는 말은 말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듣는 직원이 되어줄 것 같은 환상을 심어 준다. 직장에서 필요로 하는 수많은 능력들 중에 내가 남들에 비해서 유독 뛰어나다고 고르고 고른 게 ‘눈치’였다. 그런데 <2020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_음복>을 읽고 나니 내가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는 사실이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눈치가 빠르다는 건 어쩌면 특권을 못 누리며 살아왔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무지라는 이름의 권력을 손에 쥐지 못한 채 살아왔기 때문에 눈치가 무럭무럭 자랐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비약 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사실인지도 모를 이 생각은 내 삶의 태도의 한 조각을 바꿔놓았다.
‘눈치’는 여전히 내 장점이다. 하지만 나는 그 눈치를 제일 먼저 나에게 사용하기로 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이랑 있으면 힘든지,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싶은지, 내가 누구와 만나고 싶은지’ 내 의중을 파악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고도 눈치가 남거든 그때 다른데 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