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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wover Feb 26. 2021

무지라는 이름의 권력

저는 눈치가 빠른 사람입니다


단편집이란 이런 걸까 순서 없이 골라 읽은 두 편이 모두 날카롭고 또렷하니... 편안하지 않은 이야기 들이었다.

특히 두 번째 골라잡은 ‘음복’. 시댁 제사에 한번 참여하는 것만으로 (남편은 평생을 모르고 살았던) 이 집안사람들의 미묘한 마음들이 모두 읽힌 주인공은 나를 닮았다.


자기소개서 단골 질문으로 ‘장단점’이 있다. 장점은 최대한 강조하고 단점은 단점이지만 단점 같지 않은 단점 아닌 걸 잘 골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내용을 잘 버무려 지금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음을, 그 단점이 나를 더 성장시켜주었음을 적는 것이 좋다는. 묻는 사람은 편하지만 답하는 사람은 아주 고민스러운 질문이다. 단점은 매번 다르게 썼던 것 같다. 각 회사에 맞게, 회사에서 너무 중요하게 생각할 것 같은 점은 피하고, 크게 중요하지 않을 것 같은 성향 중에 하나를 골라잡았었다. 하지만 장점은 늘 똑같았다. ‘눈치가 빠른 사람입니다.’


저는 눈치가 빠른 사람입니다

 눈치가 빠르다는 말은 말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듣는 직원이 되어줄  같은 환상을 심어 준다. 직장에서 필요로 하는 수많은 능력들 중에 내가 남들에 비해서 유독 뛰어나다고 고르고 고른 게 ‘눈치였다. 그런데 <2020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_음복>을 읽고 나니 내가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는 사실이  나를 씁쓸하게 만들었다.
눈치가 빠르다는 건 어쩌면 특권을 못 누리며 살아왔다는 의미인지도 모른다. 무지라는 이름의 권력을 손에 쥐지 못한 채 살아왔기 때문에 눈치가 무럭무럭 자랐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비약 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사실인지도 모를  생각은  삶의 태도의 한 조각을 바꿔놓았다.
눈치 여전히  장점이다. 하지만 나는  눈치를 제일 먼저 나에게 사용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이랑 있으면 힘든지,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싶은지, 내가 누구와 만나고 싶은지 의중을 파악하는 데 사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하고도 눈치가 남거든 그때 다른데 쓰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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