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러려니 May 04. 2024

5. 창가 자리

시집살이 이야기

미세먼지와 황사에 뿌연 공기를 당연한 듯 바라보며 사는 요즘. 어쩌다 맑고 파란 하늘이 펼쳐진 날이면 엉덩이가 절로 들썩여진다. 가만있기가 손해 보는 기분이 들 정도의 살랑이는 감정을 어쩌지 못할 만큼 좋아한다. 그래서 파란 하늘을 유달리 더 좋아하는지도. 


몇 해 전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미세먼지 하나 없는 청명한 날씨에 장마가 무색할 만큼 공기가 산뜻했던 날. 대학생들은 기말고사로 바쁜 시기였다. 시험과 과제로 바쁜 딸은 조별 과제 때문에 토요일에도 학교 가야 했다. 모처럼의 햇살이 너무 아까워 한 바퀴 돌아볼 심산으로 앞장섰다.

“엄마가 데려다줄게. 조금 일찍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가자.”


서두른 덕에 한 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우리는 학교 근처 예전부터 찜해놓은 카페로 향했다. 언덕 위에 있다는 건 알고 갔지만, 차가 뒤집힐 것 같은 가파른 경사에 말 문이 턱 막혔다. “세상에, 두 번 오긴 힘들겠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주차를 했다.  

   

카페는 언덕 꼭대기에나 있을 법한 그런 큰 전원주택 같았다. 꽤나 부유했던 집을 리모델링 한 듯했다. 커다란 철문을 들어서니 잘 가꿔진 초록 나무 사이의 기다란 마당 길이 펼쳐졌다. 여기저기서 인증사진을 찍어대는 사람들 사이로 보이는 묵직한 대저택의 출입문이 분위기를 더했다.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카운터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안쪽 문으로 들어섰다. 마주 보이는 벽면을 가득 채운 통유리가 시선을 압도했다. 그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깎아지르듯 경사진 푸른 언덕. “우와!” 탄성이 절로 나왔다.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시원한 언덕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자리에 앉았다. 꼭대기를 감싸고도는 푸른 나무들과 청량한 하늘에 솜사탕처럼 박혀있는 구름들. 그림 감상하듯 보고 또 봤다. 도시에 있음에도 자연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살랑거리며 날아다니는 나비들도 분위기를 더했다. “역시 나오길 잘했어.”   

  

커피를 마시랴 사진에 담으랴 들떠 있던 그때, 의자 옆으로 나비가 스쳐 날았다. 사람들 사이로 나비 한 마리가 이리저리 팔랑이고 있었다. 유리 넘어가 아닌 안에서도 나비가 날아다니다니, 사람들은 미소 지으며 사진을 찍었다. 자연과 하나 되는 평화로움이 주위를 감쌌다. 나 또한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며 나비를 눈에 담았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그런데 쟤는 어떻게 여기 있는 거지?’  

   

카페 안을 둘러봤다. 바깥으로 통하는 조그마한 구멍 하나 없었다. 야외 테이블로 나가는 출입문이 오가는 사람들에 의해 수시로 여닫히고 있었을 뿐. 잠깐 열려 있을 때 우연히 들어왔음이 틀림없었다. 깨닫고서야 나비의 몸짓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이가 평화롭게 느꼈던 날갯짓은 어쩔 줄 모르는 당황에서 오는 몸부림이었다. 수없이 유리에 부딪히며 오르내리고 있었다. 나비는 유리 벽에 갇힌 줄도 모른 채 뻔히 보이는 저쪽을 가려 필사적이었다.   

  

겁먹은 나비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은 모두 웃음 띤 얼굴로 나비를 보고 있었다. 그 누구도 나비를 바로 보는 이는 없었다. 한가히 담소 중인 사람들 사이에서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가슴이 아려왔다. 컴컴한 부엌 창가 자리에 앉아있던 내가 보였다.

    

신혼 초, 잠들지 못해 뒤척였던 무수했던 밤. 답답하고 먹먹한 가슴은 숨을 깊게 내쉬어도 시원해지지 않았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러가도 어두운 집에 정이 붙지 않았다. 남편과 나의 방도 그냥 남편 방일 뿐. 우리 방이란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물에 뜬 기름처럼 섞여들지 못했다. 멍하니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우는 것이 하루 마무리 루틴이 되어갔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려 나직이 한숨을 쉬면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이내 도르르 흘렀다. 손으로 훔쳐대도 다시 흘러내리는 눈물이었다. 옆에 누운 남편이 깨지 않게 조용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다. ‘후...’ 깊은 한숨을 뱉었다. 오지 않는 잠에 애써봐야 소용없음을 알았다. 애써 눈물을 닦고 싶지도 않았다. 매일이 지옥이었다.   

  

조용히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정적만이 무겁게 내려앉은 어두운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숨이 막혔다. 혼자 있고 싶었다. 집 어느 공간도 맘 편히 앉을 자리가 없었다. 나만의 공간인 부엌으로 향했다. 부엌으로 내려가는 3칸의 계단. 1칸을 밟을 때마다 가슴이 조여 왔다. 숨통을 조이는 이 공간이 내가 쉴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가만히 서서 컴컴한 부엌을 둘러보았다. 부엌 통창으로 은은한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부엌 창가 자리. 어두운 집안에서 오직 그 자리만이 빛이 고인 듯 환했다. 달빛 스며드는 창가로 식탁 의자를 끌어당겼다. 고인 빛 속에 앉았다. 환히 비추는 달님을 오랫동안 올려다보았다. 몸으로 스며드는 온기는 어쩐지 더 서러움을 느끼게 했고, 왜인지 아빠가 나를 달래주던 시간을 떠오르게 했다. 

‘신랑이랑 다 해. 신랑이랑 재미있게 살아’ 

아빠 얼굴이 흐릿해졌다. 뜨거운 덩어리가 목구멍을 비틀어 댔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꺽꺽거리는 입을 틀어막았다. 하루 세끼의 식사가 그날의 기준인 삶. 시부모님의 마리오네트. 나의 스물네 시간은 내 것이 아니었다. 결혼해도 여전히 난 어른이 아니었다.

     

자유로운 창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달빛에 반짝이는 나뭇잎과 바람에 살랑이는 나뭇가지들은 나와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끝 모를 절망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나도 저렇게 반짝이고 살랑일 순 없을까. 눈물 나도록 간절했다. 창밖으로 나가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뻔한 창안에서의 삶.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착한 며느리의 삶.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릴 수 없음에 끝없이 슬퍼했다. 뼛속까지 외롭고 겁이 났다. 터질 듯 답답한 마음을 꾹꾹 누르며 눈물을 흘렸다.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환히 비추는 달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창가에 앉아, 닿을 수 없는 바깥세상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나비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비의 떨림이 피부로 느껴졌다. 

“놔두면 알아서 나갈 거야. 엄마.”

말리는 딸아이를 뒤로하고 나비에게 다가갔다. 지친 나비는 유리창 아랫부분에 붙어 숨을 고르고 있었다. 다가가자 놀랐는지 퍼덕거리며 옆으로 움직였다. 멀리 가지 못했다. 나비를 한 번도 잡아 본 적이 없어 어떻게 잡아야 할지 망설였다. 날개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잡으려고요?” 

옆 테이블에 앉아서 보고 있던 여자분이 물어왔다.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얘가 나가지를 못하고 헤매고 있네요. 다 막혀 있는데. 내보내 주려고요.”

“그래요? 날개를 잡지 말고 두 손으로 감싸 보세요.”

         

나비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두 손으로 동그랗게 감싸 쥘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천천히 일어서자 살짝 퍼덕이는 날갯짓. 너무나 연약했다. 간지러움 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손바닥에 닿는 날개 끝으로 애처로움이 전해졌다. 


어느새 따라온 여자분이 닫힌 문을 열어 주었다. 다시 들어오지 못하도록 입구에서 떨어져 살며시 손을 벌렸다. 나비는 힘을 쥐어짜며 날갯짓을 했다. 살짝 떨어지다 이내 날아올랐다.   

  

“어머. 쟤 봐. 살려줬다고 인사하나 봐. 안 가고 이쪽으로 보고 있어.”

“그러게. 재를 살려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네.” 

    

뒤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도와주신 여자분과 눈이 마주쳤다. 미소를 머금자 활짝 웃어 주셨다. 긴장한 마음이 풀어지며 가슴이 따끈해졌다. 자리로 돌아온 나의 눈은 자유로이 꽃향기를 맡으며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쫓았다.  

    

나비는 밖으로 나가려 몸부림을 쳤다. 도저히 나갈 수 없는 몸부림이 나의 눈에 들어왔다. 두 손으로 감싼 나비 때문에 문을 열지 못하는 나를 보고 있는 이도 있었다. 결국 나비는 가고 싶은 그곳으로 열어진 문을 통해 날아갈 수 있었다. 스스로는 나갈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로 나간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나비는 최선을 다했으므로. 

    

나는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답답했다. 내가 하는 행동 모두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일을 웃으며 했다. 한 번도 몸부림치지 않았다. ‘내가 원하는 삶은 이런 것이 아니야.’ 마음속의 외침을 철저히 무시했다. 오히려 타일렀다. 참아야만 착한 며느리가 될 수 있다고. 

    

스스로 나가려 발버둥 치는 나비에게서 눈을 뗄 수 없는 그때. 참을 수가 없었다. 팔랑거리며 행복해하는 나비를 보고 싶었다. 시원한 언덕보다, 청명한 하늘보다 빛나는 날갯짓을 보고 또 보았다. 

     

“늦겠다. 이제 가볼까?”

따뜻해지는 눈시울을 애써 깜박이며 일어섰다. 창가에 앉아 눈물 흘리던 나도 같이 일어났다. 무겁게 고여있던 기억이 가벼이 떠올라,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희미하게 흩어져 갔다. 한결 가벼운 마음. 내가 위해준 건 나비뿐만은 아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4.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