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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Oct 14. 2018

8. 프로치다가 준 위로

이탈리아 남부 여행: 프로치다 섬

위로를 잘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미숙하다.


누군가가 힘든 마음을 꺼내놓았을 때, 내게 그 마음을 나눠 준 상대방의 용기에 고맙고, 동시에 덜컥 겁이 난다. 혹 내가 위로랍시고 건네는 말과 행동이 어렵게 바깥 빛을 본 그 마음에 또 다른 생채기를 줄까 봐 두려운 거다. 그렇다고 용기 내어 꺼내 준 그 마음에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건 미안하다. 위로가 될 만한 온갖 말들을 혀끝에서 돌려가며 심사하다가 결국 삼킨다. 혹은 간신히 내뱉고 '이 말은 하지 말 걸'하며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들어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라고 하던데, 내 입장에서는 어찌할 줄 몰라 그냥 옆에서 듣기만 했을 뿐이다. 누군가가 들어주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었다고 하면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미안하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잘 모르기도 하지만, 나 스스로를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다. 나 자신을 위로해야 할 때에는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편이다. 조금은 성급하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 한다. 위로의 시간을 생략하고서라도, 빨리 그 고통을 잊고 싶어서 얼른 괜찮아지려 애쓴다. 조급한 긍정이랄까.

여행을 시작하자마자 두 달 반 여행을 위한 모든 캐리어 짐이 사라졌다. 아끼는 것을 잃은 슬픔, 좋기만 하길 바랐던 여행이 시작부터 사고 덩어리인 것에 대한 실망감, 쉽게 해결할 수 없고 점점 꼬여가는 것에 대한 답답함, 도대체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가에 대한 분통 등 여러 속상한 감정들과 매일 싸워야 했다. 그건 힘든 일이었고, 우린 분명 위로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짐이 사라진 직후에는 짐을 돌려받으려 애쓰느라 위로할 시간이 없었다. 모든 수를 다 써봤지만, 결국 짐을 찾을 수 없다는 걸 확실히 확인한 뒤 독일을 떠났다. 독일과의 이별은 '짐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과의 이별이었다. 다음 여행지였던 이탈리아와의 만남은 '모든 짐을 다시 사야 하는 새로운 숙제'와의 만남이기도 했다. 그래서 시간이 없었다. 위로보다는 어서 훌훌 털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우린 계속 할 일이 많았다.




그렇게 독일 뮌헨을 떠나 이탈리아 나폴리에 도착했다. 독일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색칠공부를 비유하자면, 독일은 뚜렷한 윤곽선 안을 색연필로 꽉꽉 채운 느낌이었다. 어느 꼼꼼한 아이가 선 밖으로 색이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고 정성스럽게 칠한 것처럼 말이다. 반면 이탈리아 나폴리의 인상은, 어느 자유분방한 아이가 물감으로 선을 자유로이 넘으며 막 칠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종종 번지고, 탁하고, 번잡했지만, 그 모습 또한 매력적이었다.



나폴리도 유명한 여행지이고, 갈 곳이 많았을 거다. 길거리를 걸으며 예쁜 장면들을 종종 마주했다. 하지만 역시나 여행다운 시간을 갖진 못했다(이게 진짜 여행다운 시간일 수도 있지만). 잃어버린 짐을 훌훌 털고 모든 걸 다시 사야 했기 때문이다. 독일을 떠나기 전 뮌헨에서 새 캐리어와 편하게 신을 수 있는 신발, 속옷 등을 부랴부랴 샀다. 나폴리에서는 필요한 옷을 사기 위해 아침부터 나폴리 H&M을 누볐다. 오후에 배를 타야 했기에 거의 뛰어다니며 옷을 샀다. 참 바빴다. 간신히 배를 타고 한 섬으로 떠났다. 프로치다라는 어느 작은 섬으로.  




프로치다를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라는 소설 덕분이다.


사진 출처: 리디북스


20대 초반에 도서관을 얼쩡거리다가 이 책을 골라 읽었었다(마음이 번잡하면 도서관에 책 냄새를 맡으러 가고는 했다. 책을 많이 읽지도 않았으면서). 이제 와서 기억나는 내용이 많지는 않지만 책 속에서 느꼈던 낭만의 기분이 남아있었다. 한 작은 섬의 수줍은 우편배달부 청년이 늙은 시인에게 편지를 배달하다 서로 친해졌고, 섬마을의 아름다운 처녀와 첫사랑에 빠진 청년은 시인에게 조언을 구하며 사랑을 배워갔다. 그 청년은 섬의 좁은 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편지를 배달했는데, 그 장면이 상상 속에 그려져 진하게 배어있었다.

여행 준비 중에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이 소설이 20년 전쯤 <일 포스티노>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고, 작년에 한국에서 재개봉했다는 글을 우연히 봤다.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는 소설이라 영화도 보고 싶어 알아봤다. 그런데 마침 그 영화를 찍은 촬영지가 이탈리아 나폴리 주변의 프로치다 섬이었다. 나폴리를 기점으로 이탈리아 남부 여행을 계획 중이었으므로 프로치다는 무조건 가야겠다고 결정했다. 프로치다 섬이 어떤 곳인지 사진도 보기 전에, <일 포스티노> 영화를 보기도 전에, 프로치다가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영화화 한 작품의 촬영지라는 말만 보고, '어머 여긴 꼭 가야 해' 주문에 걸린 거다. 다행히 예성이도 좋다 하여 이탈리아 여행 계획 막판에 '프로치다'를 추가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았다.

어떤 도시를 여행하기 전에 그 도시가 배경인 책 한 권과 영화 한 편을 보고 나서 여행을 떠나는 게 내가 하고 싶은 여행 준비이다. 하지만 막상 현실은 모든 여행 준비를 미루고 미루다가 막판에 짐도 간신히 싼다. 영화나 책을 보는 여행 준비는 현실에서 실현하기 힘들었던 낭만의 경지였는데, 이번에는 긴 여행을 천천히 준비하면서 드디어 그 낭만을 실현해 본 거다. 이렇게 여행 준비를 내 맘에 쏙 들게 하고 간 여행지는 이번 여행 중에서도 프로치다가 유일했다. 그래서 더욱 설렜다.   





프로치다 항의 선착장에 내려 숙소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에어비앤비 호스트가 버스를 타고 오라고 했지만 구글 지도에 검색해보니 30분만 걸으면 될 거리라 나왔다. 걷고 싶은 거리여서 걷기로 했다. 30분 넘게 걸어 구글 지도에 표시된 숙소 위치에 도착했는데, 주변을 샅샅이 뒤져도 우리 숙소는 없었다. 여행 내내 구글 지도를 100프로 의존했으나, 이 날은 구글 지도가 100프로 틀렸다. 알고 보니 우리 숙소는 섬 가장자리에 있었는데, 구글은 그 숙소가 섬 정 가운데 있다고 표시하여 우리를 엉뚱한 데까지 걸어가게 했다. 여행 중 할 수 있는 고생은 다 하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덕분에 섬 구경은 원 없이 했다. 헤매면서 만난 길가의 장면들이 참 예뻤다.  



걸어서 세 시간이면 프로치다 섬 한 바퀴를 돌 수 있다는데, 우리는 두 시간 정도를 헤매고 나서야 살인적인 언덕 위에 위치한 숙소에 간신히 닿았다. 숙소는 관광객들에게 제일 유명한 뷰 포인트(숙소가 되게 높은 곳이었다는 뜻)를 지나서 (심지어) 조금 더 올라가야 했다. 예상보다 길어진 방황에 지쳤지만, 프로치다의 예쁜 옆모습을 볼 수 있는 뷰포인트에는 잠시 머물러 숨을 헐떡이며 사진을 찍었다.





숙소 주변에 도착하니 창문 밖을 보고 있던 옆집 아줌마가 헥헥 거리는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다. 에이버앤비 호스트의 부탁으로 관리인 역할을 해 주는 분이었다. 우리가 두 시간을 헤맸으니 이분도 우리를 두 시간이나 기다린 거였다. 본인 집에서 기다린 거라 다행이었지만, 혹시라도 왜 이렇게 늦었냐고 뭐라 할까 봐 기죽어 있었다. 다행히도 쓰러질 듯이 걸어오며 헐떡이는 우리에게 '그 고생 내가 알지.'하는 표정으로 웃어주었다. 숙소는 생각보다 너무 깨끗하고 특별했다. 1박에 1인당 2만 원 정도 낸 숙소인데, 기대 이상이었다. 힘들게 찾아온 보람이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는 영어가 아예 안되었기에 온갖 바디 랭귀지로, 옥상 테라스를 쓸 수 있다고 하며 테라스 키를 건네주었다. 무척 피곤했지만, 해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후들거리는 다리를 움직여서 테라스에 올라갔다. 그리고 정말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마주했다.



해가 지면서 하늘과 마을을 붉게 물들여갔다. 그 너머에 넓은 바다가 사방으로 펼쳐져 있었다. 섬이 작기 때문에 옥상에서는 섬의 끝에서 끝이 다 보였다. 그 자리에서 빙 돌면 눈앞의 바다도 빙 따라왔다. 우리 입에서는 한동안 감탄사만 흘러나오다가, 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진에는 그 아름다움이 다 담기지 않는다.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났을 정도였다. 눈물까지 찔끔 거리는 스스로가 좀 오바인가 싶어 예성이를 슬쩍 봤는데, 예성이도 글썽이고 있었다. 덕분에 마음 놓고 훌쩍였다.

그때 우리가 느낀 감정은 '위로'였다. 눈에 다 담을 수 없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아름다운 광경이 그동안 고생한 우리를 토닥여주었다. 하나님의 위로 같았다. 여행 시작부터 예상치 못한 고생에 지쳐있던 몸과 맘이 스르르 녹았다. 분실된 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잔뜩 각을 잡고 날을 세웠던 세포들이 천천히 말랑해졌다. 그렇게 '아름다움'으로 위로받았다.

누군가를 위로해야 할 상황이 왔을 때, 온 맘 다해 들어주는 것에 더해서 '아름다움'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광경, 아름다운 꽃, 아름다운 음악, 아름다운 시 같은 거를 소중한 누군가가 아파할 때 슬며시 건네고 싶다. 이게 상대방에게도 효과가 있을진 모르겠지만, 원래 본인이 효과 본 무언가는 널리 알리고 싶으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것들을 더 많이 보고, 듣고, 만지고, 알아야겠다.




'위로의 섬' 프로치다에서 우리가 받은 위로의 조각들을 마저 더 기록한다.  



프로치다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은 우리 테라스


'아름다움이 주는 위로'를 경험했던 테라스는 노을 질 때만 예쁜 게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슈퍼에서 산 과일과 파이, 따뜻한 커피를 들고 옥상 테라스에 올라 시간을 보냈다. 원래 아침만 먹고 나서는 섬 곳곳을 돌아다닐 계획이었는데, 이곳이 프로치다 다른 어떤 곳 보다 아름다울 거란 느낌에, 그렇게 더할 나위 없음에 좀 더 오래 머물렀다. 오전을 여기서 다 보냈다.


응?



우리가 사랑한 뷰포인트



숙소 가까이에 있는 뷰포인트는 프로치다에 머무는 2박 3일 동안 매일 갔다. 이곳에 서서 눈에 담는 모든 것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이곳에 갈 때마다 왠지 프로치다 여행의 본전을 뽑는 기분이 들었다. 떠나는 날 짐을 다 싸고 나왔을 때도 프로치다와 작별할 마지막 코스로 이 뷰포인트를 찍었다.



이번 여행 중 처음 산 그림책



프로치다에 온 첫날, 프로치다 항에서 내리자마자 얼마 못 가서 이 서점을 발견했다. 바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숙소 체크인 시간 맞추려고(결국 두 시간이나 늦었지만) 다음을 기약하며 스쳐 지나갔었다. 여행지에서 그 나라 언어로 된 그림책을 사는 건 내겐 여행을 하고 있다는 의식이고, 나를 위한 낭만 같은 거라서, 다음 날 다시 들렀다.



서점은 밖에서 봤을 땐 자그마했는데 들어가 보니 복층이었다. 복층 공간에는 그림책만 가득했고, 벽에는 어린왕자의 그림과 글귀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서점 주인과 내가 잘 맞을 것 같았다. 아름다운 섬의 책방 주인이라니. 참 부러운 일을 하고 있는 분이었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으나, 역시 난 소심해서 책을 계산하며 수줍게 엄지척만 내밀고 나왔던 기억이 난다.



사실 독일에서 그림책 못 산 게 한이 되어 그림책을 한 무더기를 골랐는데, 예성이의 까다로운 검열을 걸쳐 두 권 밖에 살 수가 없었다. 짐을 많이 늘리면 안 되기도 했고, 지출을 아껴야 하기도 했지만 어찌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예성이의 검열 기준은 그림책을 봤을 때 예성이가 이해할 수 있냐 없냐 였다. 내 책인데 왜 예성이가 이해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무덤덤한 예성이도 좋다는 책은 진짜 좋은 책일 테니까 싶어 빠르게 수긍했다. 그렇게 프로치다에서 그림책 두 권을 데려왔다.



산책


멈춰있던 놀이기구의 한 부분. 손으로 그린 그림이 좋다.
잃어버린 짐 속에 있는 수영복을 그리워하며, 바다에서 바다와 사람을 구경했다.
집으로 올가는 길




<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속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달렸을 길을 보기도 하고, 걷기도 하고, 머물기도 했던 프로치다에서의 시간을 이렇게 다시 들여다보았다. 여행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뒤 여러 전쟁을 감당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였다. 그런데 프로치다에서의 추억을 통해 또다시 위로를 받는다. 위로의 고수 프로치다가 고맙고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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