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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numsa Feb 25. 2023

이제는 얘네들 없이 무슨 수업을 할까 싶다


이 수업을 하면서 마침 학년부 수업 공개하는 날이 있어서 반박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수업을 공개했다. 일과가 끝나고 한 시간이나 더 남아서 수업을 했다. 한 시간 더 수업하기 싫다고 우는 소리하고 찡찡거리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서 수업을 했던 기억, 막상 수업에 들어가자 다들 긴장해서 평소보다 더 열심히 한 기억이 떠오른다. 특히 ㅁㄱ이란 아이는 나랑 3년을 수업하면서 수업 공개 및 촬영을 6~7회 했다. 그때마다 지목해서 말하도록 했는데, 이제는 얘네들 없이 무슨 수업을 할까 싶다. - [출처] [중3] 토론 중심 교육과정|작성자 진솔 https://blog.naver.com/rlawlsthf105/223017608465


  자주 가서 배우는 김진솔 선생님의 블로그에서 3년 동안 함께 국어 수업한 학생들을 보내는 소감이 있길래 댓글을 달까 하다가 길어질 것 같아서 따로 정리해 본다.


이제는 얘네들 없이 무슨 수업을 할까 싶다.


  나도 예전에 이런 비슷한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2010년이었나, 2월에 종업식할 즈음에, 이렇게 수업이 잘 되는 아이들과 헤어지면 이제 새로 만나는 아이들과 또 어떻게 수업을 만들어 가야 하나, 내 인생에서 다시 이렇게 흡족한 기분으로 수업을 마무리할 수 있을까. 막막하고 아쉽고 걱정도 되었다. 그때가 교직경력 10년차쯤 되었을 때인데, 그 전까지는 2월이 되면 늘 '내가 또 뭘 가르친 거야. 졸업해서 아이들이 나를 뭐라고 기억할까. 아이고 창피해라.' 이런 찜찜한 기분이었기 때문에 2010년의 그것은 아주 새로운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다음 해 2월에 종업식 즈음이 되니까 "이야, 이렇게 호흡이 잘 맞는 수업을 또 했네. 작년에 이어서 운이 좋았군. 얘네들 없이 이제 어떻게 수업하지?" 이런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그 다음 해 2월에는 더 이상 아쉬움도 걱정도 없이 "올해 수업도 유난히 잘 되었군."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쭉 덤덤한 2월을 보내게 되었다.

  몇 년 뒤에 대학교 과제로 다큐를 찍어야 한다며 졸업생 김송은이 찾아와서는 이런 저런 질문 끝에 아이들과 헤어질 때 기분이 어떤지 물어본 적이 있어서 그동안의 심정을 정리해서 말할 기회를 얻었다.

  "아이들과 헤어질 때 이런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흡족한 수업을 또 할 수 있을까? 하면서 헤어졌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또 더 좋은 아이들과 더 좋은 수업을 하게 되고, 또 그 아이들과 아쉽게 헤어지고 나면 또 더 좋은 아이들이 들어오더라. 그래서 지금 만난 이 아이들이 늘 가장 좋은 아이들이고 올해 이 수업이 늘 가장 좋은 수업이라는 걸 깨달았지."

  내가 김송은에게 답변을 할 때는 "세상에 나쁜 중학생은 없다. 모든 아이들은 다 좋다." 이렇게 학생에 대한 관점으로 생각을 했었다. 어떤 교사들은 '올해 1학년은 너무 수업하기 힘들어. 00반은 유난히 수업이 안 돼.'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데, 나는 경험적으로 특별히 수업이 안 되는 아이들은 없다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몇 년 더 교직생활을 했지만 해마다 늘 만족스러웠고, 아이들은 최고로 열심히 수업을 하였고, 떠나보낼 때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라는 후련함만 남았다. 3학년을 가르친 경우에는 졸업한 아이들을 더 이상 만날 수 없으니 그게 아쉽기는 했지만, 수업에 대해서는 '이런 걸 좀 더 가르쳤어야 하는데,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도 없고 '이 아이들과 했던 멋진 수업을 다음 해에 만날 아이들과 또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없었다.

  해마다 그 해의 수업이 가장 만족한 수업이었다는 점과는 조금 다른 관점이지만, 4차 교육과정 개발 책임자이신 이대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 현재의 시점에서 4차 국어 교육과정을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4차 국어과 교육과정을 개발할 당시에는 좋은 국어 교육과정을 개발할 인재가 없었고, 또 좋은 국어과 교육과정 초안이 개발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할 개인이나 집단이 없었습니다. 4차 국어과 교육과정은 1980년대 초 전후 한국의 국어교육에 관여했던 집단의 수준을 반영한다고 생각됩니다. 이보다 더 좋은 국어과 교육과정은 개발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연구보고 RRC 2009-3-2 145쪽 )


◯ 5차 국어과교육과정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5차 국어과 교육과정과 그 이후 최근의 국어과 교육과정에 대해서도 4차와 같이 비판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대에 개발되는 국어과 교육과정도 2010년대에 한국의 국어교육에 관여하는 집단의 수준을 반영할 것입니다. 이 수준보다 더 좋은 국어과 교육과정은 개발될 수 없을 것입니다.연구보고 RRC 2009-3-2 146쪽 )


  이 면담 내용의 핵심은 '최고'를 보는 관점이 '최고'가 아니라 '최선'에 있다는 점이다. 주위 모든 사항을 고려했을 때, 4차 교육과정이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을 비판의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했다.'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평가 방식이다. 그런 관점에서 아래의 그림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제목 학원 짤이다. 


  이번에 위의 블로그 글을 읽다 보니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왜 어떤 아이들을 만나더라도 해마다 "이 아이들과의 수업이 최고야." 하는 느낌을 받으며 수업을 할 수 있게 되는가? 단지 내가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만족한 것일까? 아니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모두 순수하고 협조적이어서 교사가 열심히만 하면 다들 의도를 알고 잘 따라주기 때문일까? 그것도 맞다. 

하지만 또 하나, 해가 갈수록 나의 수업지식과 수업능력이 향상되어 내가 수업을 점점 잘하게 되었기 때문에 어떤 아이들을 만나더라도 만족할 만한 수업을 할 수 있게 된 점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 쓸 수 있는 수업 기술이 다양해졌고, 원래 쓰던 수업 기술은 더욱 능숙해졌고, 아이들을 대하는 기술도 점점 발달해서 수업에 몰입하도록 말로 잘 이끌 수가 있게 되었기 때문에 새로 만난 아이들이 '어떤 아이들이냐'하는 문제와 무관하게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의 수업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수업이 안 된다고 아이들을 탓하거나, 예전의 그 아이들이 좋았지, 하면서 현재 수업 받는 아이들과 비교하는 교사가 있다면, 본인이 해마다 수업역량을 향상시키기 위해 자신을 갈고닦지 않았기 때문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얘네들 없이 무슨 수업을 할까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 김진솔 선생님께 드릴 답변은 하나뿐이다.


이제 곧 3월이 되면, 떠나보낸 아이들보다 훨씬 더 호흡이 잘 맞는 수업을 하면서 새로 만난 학생들에게 감탄하게 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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