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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ipnumsa Dec 26. 2023

[함께 여는 국어 교육] 최척전 수업

부산국어교사모임 회지읽기소모임

2023년 6월 22일 오후 3:31 에 회지읽기 소모임에 올린 글이다.


최척전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텍스트 내에 머무르지 않고 맥락을 최대한 복원해서 학생들이 최척전을 깊이 있게 이해하도록 설계한 수업이다.



아이들이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고 자신의 삶과 연결하고 이 사회로 눈을 돌리게 만들기에 이보다 더 잘 설계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일반화를 위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차시(75) 최척과 옥영과 몽석의 이동을 추적한다. 패들렛 지도 양식, 지역 사진,, 인물의 감상


2차시(76) 이주와 이산의 고민(재일교포의 삶 자이니치 광고)


3차시(76) 최척전의 가상 캐스팅, 제작 발표회, 질문과 대답 만들기


4차시(77) 타국민 사이의 환대의 의미(씬짜오신짜오의 이방인 의식을 찾고 환대의 개연성 찾기)



이것을 일반화해 보자.


1차시 작품 속 인물의 이동을 추적한다.


2차시 "작품 키워드1"의 고민, 당대 현실 상황 제공


3차시 작품을 드라마화하기 위한 가상 캐스팅, 제작 발표회, 질문과 대답 만들기


4차시 "작품 키워드2"의 의미를 <다른 작품>과 엮어 읽기



매우 평범한 소설 수업 모형이다. 이것을 아무 소설에나 적용해 보자.


<만세전>


1차시 이인화의 이동을 추적한다. 패들렛 지도 양식을 이용하여 일본, 부산, 서울 등 지역 사진, 목욕탕, 부두, 묘지의 사진, 인물의 감상


2차시 "만세전의 키워드1"의 고민(무엇을 제공할 것인가?)


3차시 만세전의 가상 캐스팅, 제작 발표회, 질문과 대답 만들기


4차시 "만세전의 키워드2"(어떤 작품과 엮어 읽을 것인가?)



2차시와 4차시를 채울 말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모형이 단순하다는 것은 그만큼 작품에 대한 교사의 해석 능력에 따라 수업의 질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결국 교사는 신기하고 새로운 수업 기법을 찾기보다, 교과서에 제시된 작품이나 한학기동안 읽기 위해 선택한 작품에 담긴 의미를 깊이 고민해서 키워드를 잘 뽑아내는 '해석 능력'을 갖추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알 수 있다.



김지운 선생님의 글은 수업 소개이면서 작품 비평의 관점이 섞여 있어서 약간의 혼란을 준다. 환대하는 개인과 무관심한 국가라는 문학 평론의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인지 <무관심한 국가>에 대한 수업 부분은 조금 덜 친절하게 구성되어 있다.



1차시(80) 임진록과 비교, 포로귀환 기록, 진실과 탈진실, 최척의 뒷이야기


-> 이 부분이 1차시로 가능한 것인지, 강의식으로 한 것인지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다.



1+2차시(85) 김영철전을 선택게임으로


3차시(85) 김영철은 왜 돌아오려고 애를 쓰는가


-> 이 수업은 80쪽의 임진록 수업과 별개의 수업인데 최척전 수업인지 김영철전 수업인지 불분명하다.



87쪽에서 최척전, 김영철전, 고골리 외투, 강도 몽유록을 예로 들어 국가의 존재 의의를  탐색하며  글이 마무리되는데, 이것은 <외투>에 대한 수업 중에 그냥 최척전 생각이 났다는 말로 읽혀서 최척전 수업이 아니다.


글의 마무리는 더욱 모호하다.



이미 수많은 경고가 울리고 있는데도 우리는 제대로 듣지 않는 것 같다. 고전소설을 굳이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미 수백 년 전 이 땅에서, 혹은 멀리 떨어진 타국에서 환대의 정신에 대해 말하고 자신들의 고통을 힘들게 증언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진지하게 귀 기울여 듣는다면 오늘의 아픔을 줄이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 작은 희망에 기대를 걸어 본다.



(현실) 경고가 울려도 듣지 않는다.


(깨달음) 고전소설을 읽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내용) 수백 년 전 경고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오늘의 아픔을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된다.


(바람) 그러한 희망을 가진다.



정리하면,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이므로, 고전소설에서 인물들이 증언하는 목소리를 잘 들으면, 오늘날 같은 아픔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가 될 것이다. 이때,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할 주체는 누구인가? 학생인가? 기성세대인가? 학생 시절에 고전소설을 잘 읽어서 경고를 무시하는 기성세대가 되지 말라는 뜻인가?



<초점>이 소설 수업이다. 소설을 배우는 이유는, 또는 소설 수업의 목표는, 그 소설을 잘 배우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그 소설 수업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읽는 힘" 자체가 길러지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최척전을 제대로 배운 이야기"도 좋지만, "최척전을 제대로 배우다 보니 양반전도, 박씨전도, 이생규장전도 잘 읽을 수 있게 되었어요."라는 학생의 소감문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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