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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Apr 19. 2018

Y 이야기

장애라는 말에 대하여




 장애, 그것은 본디 벽과 같은 것. 몸 속이 아니라 몸 밖에 존재하는 것.
 책을 읽지 못하고 말을 못하는 강아지가 그저 강아지일 뿐이듯,
 책을 읽지 못하고 말을 못하는 사람은 그저 사람일 뿐.
 하나의 큰 벽이 그 이에게 이르는 햇빛과 바람을 가로막고 있을 뿐.
 그 벽을 만든 것이 우리라면, 진정한 치유란 무엇인가?
 벽을 넘도록 돕는 일인가, 아니면 벽을 허무는 일인가?




우리는 벽을 뛰어넘는 사람을 존경한다. 하지만 왜 벽을 넘도록 하는가? 처음부터 벽을 만들지 않으면 될 일이다. 우리가 그 벽을 허물면 될 일이다.


나 : "누군가를 장애인이라 부르는 게 불편해"

 술집에서 Y에게 말했다.

 "나는 사회에서 비장애인으로 분류될 뿐인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스스로를 비장애인으로 칭하며 다른 사람을 장애인이라 부르는 게 불편해."


Y : "장애인은 부정적인 단어가 아니야"

 그런 내게 Y가 말했다.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사회에서는 장애라는 단어에 담긴 모든 부정적 의미가 사라질 거야. 장애인이라는 말이 불편한 건 사회에 있는 차별 때문이지, 장애인이라는 단어 자체에 부정적인 의미가 담겼다는 생각은 잘못이야.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그저 사회에서 남/녀를 구분하듯 편의에 의한 것에 불과하다면, 장애인을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걸 불편해하는 태도야말로 장애인을 차별하는 행위야."


나 : "내가 말하는 건 다른 지점이야" 

 나는 내가 말하는 건 다른 지점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차별이 존재하는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는, 그리고 차별이 완전히 사라진 사회에서는 장애라는 단어에 담긴 모든 부정적인 의미가 사라질 거라는 너의 말에 동의해. 하지만 나는 장애가 개인에게 존재하는 게 아니라 (차별과 같은)환경에 존재한다고 믿을 뿐이야. 그래서 나도 두 가지를 장해와 장애라는 다른 용어로 구분지어 사용해. 장해라는 말은 '모종의 신체적, 정신적 결함'을 의미하고, 장애라는 단어는 '하고자 하는 작업을 수행하지 못하거나 하고자 하는 작업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해.

 장애는 사람을 수식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놓인 상태를 수식하는 말이어야 해. 즉, 내가 말하는 장애는 '인간의 속성'을 정의하는 단어가 아니라 '인간이 직면한 상태'를 정의하는 단어야. 우리가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대상은 비장애인과 어딘가 다른 존재가 아니라 (차별과 같은)환경에 의해 장애에 직면한 사람일 뿐이지."


Y : "환경 없이 존재하는 장애도 있어"

 그러자 Y가 말했다.

 "하지만 환경에 의한 장애와 그렇지 않은 장애는 분명히 달라. 아마도 형이 불편해 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마음 속에 차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아."

 Y가 말하는 장애와 내가 말하는 장애의 의미가 다를 뿐, 우린 똑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써야 할 때 장애인을 대신할 말은 나도 모른다. 그런 단어는 없기 때문이다. 장애라는 언어와 장애인이라는 언어에서 장애가 의미하는 바는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이라는 용어를 대체할 수 있는 용어가 준비돼 있지 않다.


나 : "내가 말하는 장애의 의미는 네가 말하는 그것과 달라"

 내가 대답했다.

 "환경에 의한 장애 또한 똑같은 장애라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내가 말하는 장애의 의미는 네가 말하는 그것과 달라. 나는 모종의 신체적, 정신적 결함이 곧바로 장애와 연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사람이 놓인 환경에 따라서 똑같은 결함을 가진 개인이 장애에 처하기도, 그러지 않기도 해. 우리는 장애에 대해서 서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을 뿐,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왜 누군가는 그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커다란 공을 가지고 비탈길을 오르며 살아야 하는가? 당신은 어떤 노력을 했는가? 당신도 노력했다고 느껴진다면, 당신도 비탈 아래 있었을 뿐.


- 불편함의 근원

 Y와의 대화로 내 오랜 불편함의 근원을 찾았다.

 우리 사회에서 '모종의 신체적, 정신적 결함'을 가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나 행동만으로, 그 사람을 당연히 불쌍하고 배려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지는 않는가? 스스로 아무리 부정해도, 그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패싱된다. 전문가들은 사회의 인식이나 제도를 바꿈으로서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장애를 해결하기 위해 개인의 겉모습과 행동 양상을 교정하려 든다. 그들이  그런 행동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오직 하나, '전문성'이다. 하지만 그 전문성은, 대중의 무지를 교묘하게 이용하는 일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에서 '환경에 의한 장애'를 가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가?

 '모종의 신체적, 정신적 결함'만을 평가하는, 온갖 질 낮은 평가도구로 그 사람의 '장애 수준'을 평가하려 들지 않는가? 단순히 장애가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환경에 의한 장애'는 장애로 평가받지 못하기 일쑤다. 전문가들이 장애인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나면 그 사람의 장애는 '진단받지 못한 꾀병'에 지나지 않게 되며, 그 사람은 겉모습만으로 사회에서 비장애인으로 패싱된다.


- 아무나 장애인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게 금기가 되어서도 안 된다

 아무도 아무나 장애인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장해는 개인에게 귀속될 수 있지만 장애는 개인에게 귀속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애는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나 문화 혹은 환경처럼 구조 또는 맥락 속에 내재하는, 목적의 성취불가능 상태로 보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Y가 말했듯, 편의상 장애인-비장애인의 이분법을 사용하는 일이 금기가 되어서도 안 된다.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나 혼자서 책상을 의자라고 부르기로 결정한 것을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리 없으니 말이다.




빈 사전이 필요하다.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적어 넣을 수 있는. 사회에서 나를 부르기 위한 언어가 필요하다면, 내 자신이 그 언어를 결정하게 하라.


- 이분법이 담아내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

 남성/여성의 이분법이 담아내지 못하는 지점이 있듯, 장애인/비장애인의 이분법이 담아내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

 '스스로 장애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분류되는 사람'과 '스스로를 장애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분류되지 않는 사람'은 분명히 존재한다. 사회에 의해 규정된 정체성이 개인이 스스로 규정한 정체성과 다른 경우 말이다. 예를 들어, 의족으로 100m를 평균보다 빠르게 뛰는 사람과 우울증으로 직장생활을 못하는 사람 중 누구를 장애인으로 볼 것인가? 사회의 판단과 개인의 판단이 다른 경우가 존재할 것이다. 나 자신의 정체성은 스스로 결정할 문제다. 금전적 혜택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은 장애인이나 진단받지 않은 장애인은 그래서 존재한다.


-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사람을 위한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그래야 자신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사회에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성별(Gender)을 세분화하자는 주장이 남성/여성(Sex)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이 아니듯, 장애인/비장애인이라는 표현이 담아내지 못하는 지점을 훌륭하게 담아낼 수 있는 언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장애인/비장애인이란 표현을 사용하지 말자는 주장은 아니다. 

 영어권에서는 '장애인(Disabled people)/비장애인(Non-disabled, Able-bodied people)'이라는 이분법보다 '사람(People)/장해가 있는 사람(People with an impairment)'라는 표현이 더 잘 사용된다고 한다. 우리도 '사람/~한 사람(이를테면, 한쪽 팔이 없는 사람)'으로 부르는 건 어떨까?

 아니면 'Disabled, But I think I'm Not(DBN) / Disabled, Yes I think I Am(DYA) / Able-bodied, But I think I'm Not(ABN) / Able-bodied, Yes I think I Am(AYA)'의 4분법은 어떨까? 내 스스로는 내가 ABN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여러분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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