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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Jun 14. 2018

죄와 벌

표도르 도스또옙스키를 읽진 않았습니다만,

모든 개인이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만 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고, 인간의 행동은 예측불가능하다. 사회제도와 제도적 처벌이 존재하더라도 범죄는 끊이지 않는다. 한편,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 더 엄격한 사회제도, 더 강경한 제도적 처벌을 요구한다.


그러나 제도적 처벌은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증폭시킴으로써 개인이 자신의 판단을 배척하게 만든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주체적 의사결정과정의 결과물은 처벌에의 두려움에 짓밟힌다. 그 결과 개인은 자신의 판단을 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인 사회제도에 종속하게 된다.


제도적 처벌은 개인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존재로 만들지 않는다. 처벌은 그 정반대의 역할을 한다. 처벌이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주체적 사고를 통해 범죄가 나쁜 이유를 추론하지만, 처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단지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 범죄는 나쁘다고 자기 스스로를 세뇌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벌의 목적은 처벌을 통해 개인을 교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처벌은 범죄로부터 사회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일 뿐이다. 처벌은 완벽하지 않으며 만능이 아니다. 진정으로 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하고자 하는 사회라면, 범죄자를 처벌함과 동시에 범죄가 발생하는 구조적 원인을 끊임없이 추론해야 한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인간의 행동은 예측이 불가능하다. 모든 개인이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판단을 하리라는 생각은 지나친 희망이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사회제도를 확립할 때는 인간의 불완전성과 예측불가능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인간의 불완전성과 예측불가능성을 증폭시키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면, 사회의 치안 유지를 위해 반드시 소거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통해 마련된 사회제도가 특정 개인을 옭아맬 때 제도적 처벌은 더 이상 범죄로부터 사회의 치안을 지키는 최소한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때의 사회제도는 폭력을 사회적으로 허가하는 역할을 하며, 제도적 처벌은 구조적 폭력의 역할을 한다.


구조적 폭력 속에서, 인간의 불완전성과 예측불가능성은 극단적으로 증폭된다. 따라서 구조적 폭력이야 말로 범죄를 야기하는 대표적인 원인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사회제도를 확립하고 그렇게 확립된 사회제도에 근거해 범죄 행위를 처벌할 때는 반드시, 범죄가 발생하기까지의 과정에 구조적 폭력이 개입하지 않았는지를 살펴 봐야 한다.


사회를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는 범죄를 제도적으로 처벌하는 것이고, 최대한의 조치는 구조적 폭력을 소거하는 것이다. 구조적 폭력 속에서 억압 받는 개인 중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의 치안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구조적 폭력은 개인의 범죄가능성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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