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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석류 Dec 26. 2019

Eureka 비문학읽기15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자본주의 안 해도 안 망해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면밀히 분석한 뒤 그 내용을 바탕으로 경제학 분야의 획기적 저서인 <자본론>을 집필한 칼 마르크스. 그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여러 문제점 때문에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경제체제라고 주장하며, 따라서 노동자 계급의 단계적인 혁명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가 결국은 공산주의 사회로 나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의 전망은 한낱 꿈같은 이상론에 불과할까? 마르크스는 현실감이 부족한 이상주의자일 뿐일까?
아주 쉬운 마르크스 입문서로, 마르크스의 주장을 맛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Context 

작품해설_ 맑스해도 안 망해요

 ① 마르크스가 누구야?

 ② 공산주의 믿으면 나라가 망한다는데?

 ③ 과학자 마르크스의 생각.

 ④ 마르크스주의냐자본주의냐?


 마르크스가 누구야?


혹시 ‘마르크스주의(맑시즘)’이라는 단어를 본 적 있나요? 이 용어는 세계를 뒤흔든 19세기의 저명한 경제학자 칼 마르크스(칼 맑스)의 이름에서 유래합니다. 마르크스주의는 말 그대로 마르크스의 가치관과 이념을 따르는 사상을 말합니다. 도대체 마르크스가 누구고 어떤 주장을 했기에, 21세기가 시작된 지도 17년이나 지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그의 사상에 공감할까요?

마르크스를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그는 혁명가입니다. 하지만, 혁명이라고 해서 무조건 폭력이나 사회 혼란을 일으키자고 주장한 건 아니에요. 오히려 마르크스는 많은 사람의 합의에 근거해 가능한 한 평화적으로 사회 구조를 바꾸고자 했습니다. 많은 사람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사회의 성질을 철저하게 파악하고자 노력했지요. 혁명에 있어서 감성에 호소하는 구호를 앞세우기보다는 모두가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이성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한 겁니다. 기계를 고치는 정비공이 기계 설비를 연구해야하고 병을 고치는 의사가 인체 구조를 연구해야하는 것처럼, 사회를 고치는 혁명가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를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한 거죠. 그런 의미에서 마르크스를 사회를 연구하는 과학자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르크스는 혁명을 통해서 사회의 어떤 부분을 고치고자 했던 걸까요?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마르크스가 살아있을 때 집필한 책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마르크스가 15년간 방에 틀어박혀 연구에만 몰두하면서 만든 책이 바로 <자본론>이예요. 그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의 구조와 자본주의경제의 운동법칙을 철저하게 분석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노동자 계급이 자본가 계급에 의해 억압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노동자 계급의 투쟁으로 인해서 자본주의가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이라고 예측했죠. 마르크스는 자신이 속한 사회의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고치고자 했던 겁니다.

자본주의란 노동자를 고용한 자본가와 자본가에게 고용된 노동자의 관계를 인간관계의 기본으로 하는 경제체제입니다. 노동자는 노동을 통해 자본을 획득하고,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생산된 제품을 팔아 자본을 획득하지요. 인간관계의 중심에 자본이 있는 겁니다. ‘노동’과 ‘생산품’이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되니,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납니다. 자본가는 자신의 몫을 불리기 위해 노동자에게 낮은 임금을 주고, 과로사할 정도의 격무에 시달리도록 만들며, 자신의 사정에 따라 얼마든지 해고할 수 있도록 비정규직으로 고용하지요. 그뿐인가요? 생산품이 돈벌이 수단이 되니 제품의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겉보기엔 번지르르하지만 저질의 제품이나 불량품을 판매하고, 모두에게 평등하게 제공되어야하는 복지·의료·교육 등까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해 돈이 없는 사람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서조차 차별당합니다.

자본주의는 경제를 크게 발전시키지만 많은 사람을 힘겨운 삶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렇기에 마르크스는 우리의 사회가 자본주의의 좋은 점을 계승하면서, 자본주의가 문제를 일으키는 면은 조금씩 고쳐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의 합의에 의해 조금씩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해 나갈 때, 마지막에 도래하는 사회가 공산주의 사회라는 거죠.


② 공산주의 믿으면 나라가 망한다는데?


두 가지 용어를 다른 의미로 쓰는 사람도 있지만,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라는 용어와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완전히 동일한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뒤를 이어 도래한다고 말한 공산주의·사회주의 사회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자본론>에서 말하는 공산주의 사회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공동의 생산 수단으로 노동하며 자신들의 개인적 노동력을 하나의 사회적 노동력으로 자각적으로 지출하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연합체.”

여기서 ‘생산 수단’이라는 것은 경제 활동을 할 때 우리의 노동력 이외에 반드시 필요한 공장, 건물, 원자재 등을 말합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생산 수단이 자본가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일을 하고, 노동자가 일을 함으로써 발생시킨 가치가 자본가의 몫이 됩니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임금을 받게 되는데, 이 임금은 노동자가 노동을 통해 벌어들인 가치에 미치지 못합니다. 쉽게 말해, 노동자가 400만원을 벌어왔을 때 임금으로 200만원을 주었다면 차액 200만원이 자본가의 수입이 된다는 거죠. 자본주의 사회의 수많은 자본가들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재산을 불렸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의 돈벌이’가 중심이 되었다면, 공산주의 사회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모두의 생활’입니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앞서 말한 ‘생산 수단’을 누군가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소유하기로 약속합니다. 마르크스는 이런 변혁을 ‘생산 수단의 사회화’라고 불렀죠. 사회의 소유가 된 ‘공동의 생산 수단’을 이용해 ‘자발적으로’ 노동하는 사람들의 ‘연합체’가 바로 공산주의 사회라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사회라면,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 줄어들겠죠? 경쟁이 사라지면 과다하고 불필요한 노동을 하려는 사람이 없어지고, 자신의 노동력을 사회에 자발적으로 기여하는 사람이 많아질 겁니다. 과다하고 불필요한 노동이 사라지고 모든 사람이 노동에 참여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동 시간은 줄어들어도 되겠죠! 마르크스는 이런 식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사회가 ‘필연성의 나라(살아가기 위해 모두가 일해야 하는 나라)’에서 ‘참된 자유의 나라(모두가 자신을 위해 시간을 쓸 수 있는 나라)’로 변해갈 것을 예측했는데,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이미 노동 시간이 감축되는 방향으로 사회가 발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20세기 초엽에는 프랑스의 노동시간이 주 70시간이었는데, 21세기 초엽인 지금은 주 35시간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평일마다 8시에 출근해 점심과 저녁을 먹고 밤 12시에 퇴근하는 직장인과 8시에 출근해 점심만 먹고 4시에 퇴근하는 직장인의 삶의 질이 얼마나 다를지 상상해 보세요!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사회가 한번에 ‘짠’하고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 여러 단계의 중간단계가 존재한다고 말했지요. 마르크스는 모두를 위한 사회를 꿈꾸는 의지와 역량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충분히 축적되어, 누구의 지도나 강요에 의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스스로, 경제와 사회의 발전을 위해 모두가 힘쓰는 시기가 자본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전환되는 기준점이 된다고 말합니다. 1991년 붕괴한 소련이나, 북한의 공산주의는 어떤가요? 소수의 특권층이 경찰력과 군사력으로 국민을 지배하고, 힘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는 독재국가일 뿐이죠. 민주적인 합의 없이 무력과 공포지배로 만들어낸 사회에서는 마르크스가 말한 ‘자발적인 기여’를 찾을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소련이나 오늘날의 북한은 공산주의자의 연합체가 아니라 반인권적인 범죄자에 의해 지배당하는 독재국가에 지나지 않습니다.


③ 과학자 마르크스의 생각.


앞서 마르크스를 과학자라고 표현했습니다. 과학자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마르크스는 이룰 수 없는 꿈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는 이상주의자가 절대로 아니었어요. 이번에는 ‘과학자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변증법적 사고방식에 대해서 알아볼 건데요, 어려운 단어가 나왔다고 해서 두려워할 거 없습니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의 저자인 이시카와 야스히로씨가 아주 쉽게 설명해주고 있으니까요!

먼저 유물론관념론에 대한 설명입니다. 관념론은 사람이 물에 빠지는 것은 중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며, 그 믿음을 머릿속에서 몰아내 버리면 물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식의 관점이에요. (중력이 존재한다는)관념이 (사람이 물에 빠진다는)현실을 만들어낸다는 겁니다. 몇 가지 관념론적인 문장의 예를 들어 볼까요? ‘네 스스로 빠르게 달릴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네가 빨리 달릴 수 없는 거야.’, ‘네 스스로 시험을 못 볼 거라고 생각하니까 네가 시험을 잘 볼 수 없는 거야.’ 어때요? 어느 정도 설득력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합리적인 믿음은 아니죠? 이에 반해 유물론은 (중력이 존재한다는)현실이야말로 (사람이 물에 빠질 것이라는)관념을 만들어내는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력이 존재하는 한, 사람이 어떤 믿음을 가지든지 물에 빠진다는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하는 관점이에요. 앞서 살펴본 관념론적 문장들을 유물론적 문장으로 바꿔볼까요? ‘네가 빨리 달릴 수 없는 이유는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거나, 빠르게 달릴 수 없는 신체기능 때문이야.’, ‘네가 시험을 못 본 이유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거나, 공부를 어려워하는 인지기능 때문이야.’ 어때요?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눈앞의 현상을 설명하기 때문에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지지 않나요? 마르크스는 유물론자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사람들은 왜 불행한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이 스스로를 불행하다고 여겨서’라는 관념론적인 대답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행에 대해 유물론적인 이유를 찾아야만 했지요.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에는 ‘세계는 신이 지금의 형상으로 창조한 것’이라는 믿음이 팽배했습니다. 마르크스 또한 그 시대에 태어났지만, 생명과 우주가 긴 시간에 걸쳐 변화한다는 내용의 진화론을 배운 뒤에 세계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있다고 믿게 되었어요. 이처럼 ‘세계 만물이 변화의 과정에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변증법적 관점입니다. 그렇다면 사회가 변화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저 우연에 따르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마르크스는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사회가 변화하길 바란다면, 그 ‘동기’의 방향대로 사회가 변화한다고 주장했어요. 또한 사회는 문화, 정치, 법률 등 여러 요소로 구성되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강한 요소가 경제이며, 경제의 변화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기’의 근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마르크스의 경제학 연구를 유물론적 관점과 변증법적 관점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선, 마르크스는 자신의 연구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느끼는 불행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유물론적(과학적, 현실적)으로 분석했어요. 그리고 그러한 불행 때문에 사람들이 사회의 변화를 바라게 되며, 그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가 점차 공산주의 사회로 변화해갈 것이라는 변증법(만물이 변화의 과정에 있다)적인 예측을 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강제로 몰아내고 공산주의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가 자연스럽게 공산주의 사회로 변화·발전할 것이라고 예측한 겁니다.

도대체 자본주의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기에, 자본주의 시대의 종말이 올 거라고 당당하게 예언할 수 있을까요? 마르크스는 이 질문에 과학적이고 명확하게 대답하기 위해, 장장 15년 동안 자신의 가족까지 외면하고 <자본론> 제1권을 집필한 겁니다. 생산과 노동이 인류의 행복이 아니라 자본의 자기증식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인간 소외 현상’, 앞서 살펴본 예시에서처럼 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400만원을 벌지만 노동자의 몫으로는 200만원밖에 분배하지 않는 자본가의 탐욕을 비판하는 ‘잉여가치론’ 등의 내용을 담고 있죠. 하지만,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의 저자는 <자본론>의 내용이 워낙 방대해서 마르크스를 간략히 소개하는 자신의 책에 요약할 분량이 아니라는 판단, 그리고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에 대해 자신의 설명을 듣는 것보다는 스스로 <자본론> 읽기에 도전하는 게 낫다는 판단 하에 마르크스의 경제이론을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④ 마르크스주의냐자본주의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일을 하지 않고 꾀부리는 사람이 살아가기 힘듭니다. 모두가 열심히 일해야만 하기에 과학기술의 발전, 경제성장의 속도가 공산주의 사회보다 훨씬 빨라요.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자본주의를 공산주의보다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더 벌기 위해 스스로의 건강을 포기하는 사람과 돈을 더 벌기 위해 비윤리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생겨납니다. 안전하지 않은 먹을거리를 유통시키는 일, 환경오염은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림을 파괴하고 수질을 오염시키며 대기를 오염시키는 일 등이 보란 듯이 일어납니다. 소수의 자본가는 최악의 여건에서도 군말 없이 싼 값으로 일할 노동자를 경매하고, 노동자들은 조금의 돈이라도 더 벌기 위해 그런 일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정한 한계는 자본 그 자체다.”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노동자들은 그들의 노동을 통해 잉여가치를 발생시키는데, 그 잉여가치의 대부분은 자본가에게 돌아가고 노동자에게는 최소한의 몫만 돌아가게 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는 자신의 몫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동자의 몫을 줄이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불평등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크고 작은 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한다. 그리고 이런 자본주의의 발전이야말로 자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공산주의) 사회의 성립을 가능케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바라봅시다. 비약적인 경제성장과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몇 십 년 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세상을 만들었지요.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빠른 성장과 발전을 일궈내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자본주의의 영광스런 모습 뒤에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어요. 일하다가 죽어도 보상받지 못하고 기억되지 못하는 비정규직·하청업체 노동자들, 기업의 탐욕으로 목숨을 잃어간 기업범죄의 피해자들, 여가시간보다 학업·노동에 투자하는 시간이 훨씬 많은데도 제 집 마련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인 이 시대의 청춘들. 충분한 발전과 성장이 이루어진 지금이야말로 한 숨 돌릴 시기라고, 경쟁하는 사회를 넘어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자고 말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존재하는 건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존재하는 한 당연한 일이 아닐까요? 마르크스가 말한 평화적인 혁명운동은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글_ 이준기 유레카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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