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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bulddae Jun 19. 2024

의사들 집회 기사를 보다 깜짝 놀랐다.

물가에 내논 자식을 보는 심정-이라고 이해해보려 해도.

이런 때에는 절대 아프면 안돼- 라며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아이 이마를 짚어본다. 평소보다 뜨듯하다 싶으면 가슴이 내려앉았다가 아이가 눈뜨고 밥먹고, 쉬 하고, TV보며 잘 놀면 또 안도한다. 아프면 안돼. 나도. 아이도. 우리 식구도. 이 시기 잘 넘어가자- 종교는 없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뉴스를 본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생겼나.


의사들이 만명 이상 모여 집회를 했다기에 사진부터 들여다봤다. 더웠겠다. 국민들의 지탄과 별개로 이들도 하고싶은 말, 뜻이 있겠지. 그러던 중 '의대생 학부모'라는 부분에서 눈이 멈췄다. 음? 학부모? 누구 학부모? 의대생-학부모? 지금 학교 안나가고 자체휴학한 의대생들 엄빠들이 의사단체와 함께 집회에 참가했다는 건가.  


이들은 한두명이 아니라 여럿이 모여 한 군을 이룰 정도로 많이 모였었나보다. 대표라는 분이 무대에 올라와 입장도 발표했단다. 자식의 처지가 안타까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직능단체 집회에 다 싸매고 참여해 무대에서 마이크까지 잡을 수 있다니... 나로서는 그 사고방식이 놀라웠다.


그렇다면 궁금해진다. 이 분들은 아이가 등교하지 않을 때에도 '그래, 네 뜻이 그렇다면 그러렴' 한 게 아니라 'ㅇㅇ야, 지금 정부가 의대정원 2천명을 늘린댄단다. 어떻게서든 막아야지. 너 학교가지 말아라.' 했을까. 자식의 인생과 진로가 걱정되는 건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그 걱정을 행동으로 옮겨 집회에 단체로 참가해 의사직군과 같은 목소리를 냈다는 것, 그걸 부끄러워하거나 뒤에서 구호만 외친 게 아니라 마이크 잡고 목소리를 낼 정도로 '학부모'라는 자기 처지에 당당했다는 것. 나에게는 퍽이나 낯설었다. 헬리콥터맘-이라는 말이 생긴지 오래되었고, '요즘은 회사 그만 두겠다는 전화도 엄마가 해준다면서?'하는 우스갯소리도 들었지만. 아....이쯤 되니 그 우스갯소리가 진짜 '우스갯소리'만은 아닌가보다- 싶은 생각이 든다.


자식을 내 아이, 내가 만들어줘야 하는 제2의 나의 인생이라 생각하니 헬리콥터맘이 되는 거다. 아이는 자란다. 학원, 학교를 다니는 학생에서 어른이 되면, 그럼 이제는 놓아주어야 하지 않나. 아이를 믿는다면, 아이가 자기 인생을 잘 살 역량이 있는 아이라는 신뢰가 있다면, 아무리 걱정돼도 그 인생을, 선택을 아이에게 맡겨두어야 한다. 만19세가 넘어 성인이 되면 그때부턴 등록금이나 지원해줄지 몰라도, 니 인생 니가 한번 잘 살아보라고 뒤에서 응원하는 것만으로 족하다. 예전에 어느 철학자의 강의 후 뒤풀이 자리에서 본 50대 아줌마는 말했다. '평생을 엄마 딸로 살았어요.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하고, 결혼하라는 남자랑 결혼하고, 하지 말란 건 절대 안했죠. 그런데 2년 전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때부터 내 인생은 뭐지? 하며 엄청난 혼란이 왔어요. 날 이렇게 키운 엄마가 너무 원망스럽고 미웠어요. 그 화가 지금도 풀리지 않아 이것저것 찾아다니고, 배우고, 다시 생각하며 살고 있죠. 나이 50 넘어 이제야 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는 게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요. 부모가 자식 인생을 좌지우지하려는 건, 자식에겐 재앙이에요.'


기사를 보는데 왜인지, 내가 기억하는 줄도 몰랐던 그 이름도 모르는 아주머니 생각이 났다. 선그라스 끼고 모자 쓰고 피켓 들고 의사들 사이에 같이 앉은 학부모들의 아이들은. 의대에 입학해 '우리나라 최고 엘리트'가 됐음을 객관적으로 인증받은 아이들은. 앞으로 행복하게 자기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제발 그러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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