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단녀의 마음은 정말 단단하기도 하여라
그 단단한 마음을 깨뜨릴,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절실합니다.
나와 같은 처지의 학교 후배와 (업무시간인 관계로 카톡대화로) 긴 대화를 나눴다.
후배는 아이를 낳고 육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둔 지 4년이 넘은 상황에서, 예전에 일하던 회사의 상사에게 다시 출근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아 고민하고 있었다. 그 상황을 건네들은 나는 먼저 말을 걸었다. '고민 중이라고?' '응 언니, 결론이 안 나.'
고민하는 이유가 뭔지를 찬찬히 들었다. 제3자가 후배의 상황을 들었다면 '객관적인' 상황만 놓고, 왜 마다하는 건지 알 수 없겠단 표정을 지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으로 마냥 어리지만은 않은데다, 무엇보다 경력이 단절된 지 5년이 가까워진 사람이 이런 좋은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렴풋이 눈치챘다. 후배가 고민하는 이유는 초등학교 2학년의 아이도 혼자서 등하교 준비를 해 혼자 학교에 가긴 아직 이를 수 있다는 점과, 집에서 제인받은 회사까지 출퇴근에 3시간이 걸린다는 물리적인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후배의 두려움 때문일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임신하고 회사를 그만둔 후 코로나19와 맞물려 내내 집에만 있던 3년 전부터 지금 회사에 다시 입사하기 전까지를 나를 지배하던 두려움은 '다시는 회사에 들어가 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었다. 그 두려움은 아이를 낳아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는 동안 잠시 잊을까 싶었지만, 아이를 재우고 나도 자기 위해 누우면 어김없이 반복됐다. 이제는 나를 꾸밀줄도 모르는 그냥 아줌마가 됐고, 일하는 감각, 사람들과 세련되게 소통하는 방식, 시간 맞춰 준비해 지하철타고 회사라는 곳에 출근하는 법을 다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오로지 집안에 머물며 말 못하는 아이와 맘마, 엄마, 쉬, 응가, 까까로만 소통하며 나는 이대로 사회와는 단절된 누군가가 되는 것 같았다.
한때 하이힐을 신고 대중교통을 타고, 전장같은 회사를 누비며, 기사때문에 나보다 연장자들과도 싸우던 나는 이제 없다.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과거의 내 모습은 내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것 같았다. 그 감정은 나의 피해의식 때문만은 아니었다. 실제 내 주변의 많은 선배들이, 매체에서 접하는 많은 육아맘들이 그대로 경단녀가 되어버렸으니까.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배운 인생 후배들은 결혼하지 않거나, 결혼해서도 아이를 갖지 않는 선택을 했고 그 결과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이제 0.7명으로 주저 앉았다.
후배는 그런 불안감으로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고, 종래엔 "근데 언니, 내가 복귀해도 예전처럼 일할 수 있을까. 그것도 자신없어"라고 말했다. 나는 이 부분에서 마음이 철렁했다. 넌 어쩜 불과 1년 전 다시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것 같다며 포기하고 있던 나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니.
"걱정마. 잘 할거야. 출근하는 순간 다시 예전의 네가 될 수 있어. 그러니까 5년 전에 퇴사한 널 기억하고 그 국장님도 '이젠 아이 웬만큼 컸지?'라며 연락 주셨잖아. 그 5년 간 수많은 신입을 뽑고, 트레이닝시켜 일해온 국장님이 괜히 널 다시 불러낼 이유가 뭐겠어. 네가 그만큼 잘 했고, 잘 할 수 있다는 걸 아시기 때문이지."
후배가 내가 느꼈던 불안, 막막, 좌절감을 똑같이 갖고 있는 걸 느꼈다. 비단, 너와 나뿐 만이 아닐게다. 나와 너, 그리고 거의 모든 경단녀가 그렇게 느끼지 않을까. 학력과 경력,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고 소위 말하는 큰회사를 다녔는 지는 이 불안감의 크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사회와 단절돼 고립감을 느끼며, 온종일 남편이 퇴근하는 게 가장 큰 이벤트인 하루를 보내며, 아이가 자라고 아이는 너무 사랑스럽지만 그와는 차원이 다른 별개의 좌절감을 느끼는 엄마들이. 아마 모두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
재취업에 성공하기 직전, 다이소 재고정리 아르바이트와 집 앞 분식집 설겆이 파트타임 모집 공고를 보고 전화번호를 저장했었다. 이제 나의 쓸모,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은 이런 파트타임밖엔 남아있지 않다는 좌절감. 엄마로서는 입지가 공고해지고 있지만 사회인으로서는 절벽 위에 끄트머리에 서 있는 듯한 느낌. 그걸 털어놓자 후배는 "언니, 나도 마트 캐셔 아르바이트 해야하나 하고 있었어"라고 말했다.
나는 후배에게 '그걸 깨는 게 중요하다'고 힘주어 카톡을 보냈다. 경력단절을 우선은 깨뜨려서, 출근하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그래서 다녀보고, 그 회사가 영 안되겠다 싶으면 그만두고 다시 엄마로서 살아도, 집에서 가까운 다른 회사에 취직해도 된다고. 그래서 아이에게도 엄마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임을 인지시키고, 다른 회사에서 보아도 '일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를 보여주어야 한다고. 이제는 못할 것 같다는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을 깨고, 나도 출근해서 (예전처럼 다시) 영민하게 잘 일하는 사람임을 자신에게도 보여주는 게 좋겠다고. 진심을 담아 전했다.
후배는 고맙다고 말하곤 고민을 이어갈 듯 했다. 내일부터 여름휴가에 들어가는 나도 덕분에 딱 1년 전 재취업 직전에 느꼈던 감정을 고스란히 재소환할 수 있었다. 후배를 향해 '화이팅'이라 쓰니 카톡창에서 캐릭터들이 뛰어나와 응원하는 애니메이션이 떴다. 후배가, 그리고 많은 엄마들이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면 정말로, 용기를 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올림픽에 출전한 모든 선수들까지도. 가장 큰 두려움인 내가 나를 한계짓는 그 한계를 깨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