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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lustrator 서희 Jun 21. 2024

사랑하는 내 고양이, 너의 열다섯 살.

급성 췌장염과 신부전 2기 소식 그리고 무럭무럭 자라난 수종 너 이 새끼







언니가 준 아이비와 코코 자는 애기



오늘은 아침부터 동네 동물병원에 갔다. 


다음 주 화요일에 고양이 전문 병원에서 검진 예약이 되어 있지만, 왠지 직감이 말하고 있다. 아르는 요 며칠 정말 많이 아프다. 고양이는 아픔을 정말 잘 숨기는 동물이라던데, 아냐 아닌데. 아르는 아프면 아파한다. 보통은 성질머리에 못 이겨 잔뜩 토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틀 정도 기다려보는 편인데 이번 이틀은 지켜보면서 내가 너무 미안했다. 결국 삼일째 되는 오늘 가까운 병원에 무작정 대기하겠습니다! 하고 달려갔다.



근래에 귀가 종종 뜨거웠다.

그래도 기력이나 식욕, 구토에 문제가 없어서 병원을 미뤘는데, 어제는 고양이 체온이 이래도 되나 싶게 뜨거웠고, 새벽 이틀 내내 토를 했다. 애써 먹인 습식이랑 물에 만 사료도 아침에 다 토했다.



이사 온 집에 에어컨이 없는데, 더워서 그런가?

더운가 하고 아이스팩을 주면 피해서 눕는 걸 보니 더운 게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열이 계속 오르락내리락하는 것 같은데, 인터넷은 그렇다 할 명쾌한 답을 주질 않고. 



오늘 아침 8시에 알람이 울리니까 고양이가 날 밟고 올라온다.



어구, 아르 왔어. 

만져보니 귀에 열이 내렸다.

어제는 옆에도 오지 말라구 하더니,

열이 내려서 왔나 보다.



근데 오늘은 금요일이라, 주말에 어떨지 모르겠다. 또 계속 아플 것 같으면 오늘은 만사 제치고 병원에 가야 한다. 다음 주 검진이 있긴 하지만, 이미 근 몇 주 동안 매번 "열나는 것 같은데?" - 하고 "같은데"만 외쳤던 내 마음의 죄책감이 최고치에 달했다. 오늘은 아침부터 포획 준비를 마쳤다. 결국 피를 좀 보긴 했지만 나도 너랑 병원 다닌 지 10년이다 고양이.


 

이동장에 들어가기 싫다고 발버둥 치다가 내 코에 발톱을 걸고 버티는 바람에 코에서 피가 났다.




검진 결과를 듣고 당일 수액을 맞추기로 하고 집에 왔다. 4시간 뒤에 다시 데리러 가면 된다.


갈 땐 너가 없어서 손이 남네 참나, 하고 커피를 포장했다. 오늘 검진 비용으로 35만원쯤 나갈 텐데 커피는 마시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면서..






집에 왔는데 좀 이상하다. 방금도 창가에서 부스럭 소리가 나서 나도 모르게 아르가 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지, 병원에 있지 참. 문득 이별을 생각하면서 기록을 남기는 사람들은 보통 용감한 사람들이 아니다. 정말 용감한 사람들이다.



나는 아르가 없을 내 시간이 아주 많이 무섭다. 펫 로스 증후군이라던데.. 보통 놈이 아닐 게 분명하다.



쉽게 아르에 대한 기록을 하지 못했던 이유는 어쩌면 잊어야 견딜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과 내가 무언가를 기록하는 일이 너랑 이별이 가까워왔다고 생각하는 것과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동시에 온라인에 너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고 시간을 쓰느니 지금 너랑 같이 누워있는 게 더 좋을 거라고 생각한 것도 있다. 오늘은 집에 너가 없어서 글을 쓴다.



아니 근데, 시대적으로 생각하면, 반려 동물과 생을 함께 하게 된 인류는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증후군의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는 셈 아니냐(길들여서 산다는 생각에 조금 찜찜한 부분이 있지만).



아르가 없이 아르 생각을 하면 그냥 하염없이 너무 슬프다. 슬픈 생각만 난다. 그냥 문득 뭘 하다가- 나는 특히 운전하다가 아르 생각이 나기 시작하면, 곧 짐 캐리처럼 울고 있다. 아무런 저항 불가. (같이 사는 사람들은 전부 공감할 거야) 


공부가 대수냐? 너 귀마사지 한 번 더 해줄걸. 인간이 이렇게 못됐어. 너네는 이런 인간이랑 친하게 지내면 안 되는 건데..


      



나보다 짧은 생을 살기로 되어 있는.. 그런 게 어떤 의미인지 예전에는 잘 몰랐다. 나 20대에 아르가 5살 정도 됐을 때? 너는 내가 키우는 엄청 예쁘고 엄청 귀엽고 엄청 특별한 고양이라고만 생각했지. 물론, 지금이라고 안다는 건 아냐. 하지만 사실 이제 너는 고양이라고 하기엔 뭐랄까.. 어마어마하게 그 이상이고, 내가 널 키운다고 하기엔.. 그것도 틀렸지.



뭐라고 해야 맞을까? 그냥 내가 엄청나게 사랑하는 아르라고 할까? 만약에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르고 내가 누군가에게 너를 소개할 일이 생기면, 나랑 같이 살았던 아르야.라고 말하겠지? 너무나 분명하게 남아있는 건 그 두 글자뿐이겠지?



사랑하는 존재에게 이름을 준다는 건 정말 특별한 일이다. 그러네. 없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전에 김상욱의 물리학 동영상을 수도 없이 보면서 제일 마음에 남았던 게 있다. 우리가 죽음을 이해할 때, 너의 심장이 멈춰도 사실 너를 이루던 원자들? 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얘기였어.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래서 물리학적으로 죽음을 이해해 보면.. 뭐 그렇대.



듣는데 너가 떠오르면서

그게 엄청 엄청 안심이 되더라고.  



아냐, 아니다. 사실 안심된다는 건 개뻥이다. 그냥 계속 무섭고 나는 그런 시간을 원하지 않는다. 그냥 짧은 인간의 머리로 생각하기에, 내가 지금 미리 많이 울어놓으면 정말로 네가 떠났을 때 조금 덜 슬퍼할 수 있을까? 지금 미리 많이 연습해 두면 그때 조금 의연하게 '아르야 행복했지, 나도 행복했어' 하고 보내줄 수 있을까 싶은 거지.


물론, 당연히 아니겠지만. 

지금도 울고 그때는 더 많이 울겠지.



3년 전에도 아르 너한테 편지를 쓰려고 했었어. 근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너는 글자를 모르는데. 그거 다 쓸데없는 이기적인 자기 위안이잖아. 오늘도 병원에 너를 이고 지고 가면서 이동장 사이로 날 쳐다보는 네가 너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어. 방금까지 길에서 울어 제끼다가 내가 이동장을 안아 들었더니 조용해진 게 너무 감동이잖아. 또 직감했지. 나 지금 이 땡볕아래 이 순간의 우리를 남기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6킬로인 너를 드느라 손이 없으니까, 멈춰 서서 핸드폰을 들려다가- 아니다, 역시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나랑 너만 기억하면 되지. 우리의 순간을 증명하려 들지 말자. 나는 다 기억할 수 있어. 나는 다 기억해. 나 기억할 자신은 있어. 



이 사진은 병원에 도착해서 남겼다. 이뿌구만.


   

그러구 나서 걸으면서 생각하다 보니까, 나는 네가 가진 기억의 거의 전부일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행운일 수가. 약간 이기적이지만, 누군가의 기억을 통째로 내가 다 점령해 버리다니.. 조치원에서 구조당한 너를 처음 데려왔을 때, 핏덩이에 털이 부숭한 너가 처음 눈을 뜨고 본 것도 나였다. 처음 본 사람을 엄마처럼 생각하고 따라다닌다고 해서 내심 기대했었던 기억.


물론, 아르는 날 따라다니진 않았다. 너는 좀 독립적인 고양이였지...



나는 널 어떻게든 만지고 쓰다듬고 안아 올리려고 매번 사각지대에서 나타나고, 어렸을 때 너가 깜짝 놀라서 두 발로 걷는 게 귀여워서 자꾸만 놀라게 하고 그랬는데 내가 정말 미안하다. 그래선가 지금도 나한테 곁을 내어주는 게.. 그렇게 내켜보이진 않는데, 그래도 지금은 너가 날 많이 좋아하는 걸 안다. 너는 도대체 언제 날 좋아할까 답답했는데 이렇게 얻어내고야 말았다. 하하하. 



집에 왜 너가 없냐. 정말 기분 이상하다. 얼른 데리러 가고 싶다. 너도 날 돌보는 의무를 가졌는데..



물혹이 갑자기 터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 이제 천지신명께 빌면서 살아야겠음.



그리고 이렇게 스타트를 끊었으니 가끔씩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써야겠다. 오늘은 좀..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게, 그저께 친구 만나서 서로 고양이 얘기 하다가 둘 다 울컥했기 땜시롱. 술집에서 엉엉 울 뻔했다. 함께 체면을 지키는 것에 동의하고 가십 얘기로 돌아감.








아니 근데 진단내용을 쏙 빼놓고 썼다.


몇 년간 살펴보던 신장 물혹이 2cm로 커졌다. 신장 한쪽에 3cm씩인데 초음파 사진을 보니 무지막지하게 커서 너무 속상했음. 3년 동안 1cm 언저리로 자라지 않았던 게 왜 갑자기 두배로 커졌지? 주사로 빼는 시술도 너무 위험하고 개복도 할 수 없고,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하셨다. 시술을 하실 수 있는 의사 선생님이 계실까요..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근데 그럼 어딘가엔 계신다는 소리 아냐!? 물혹이 터지면 바로 복수 차는 단계로 간다고 하셨다. 시술하다가 터질 가능성은 더더 높다고 하셨다. 상상하니까 너무 끔찍해.. 하지만 어딘가에서 수술해 주실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나고 싶다...!!!!!!



관절염은 여전히 심하고, 이전 병원 선생님은 굳이 영양제나 약을 먹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좋을지 잘 모르겠다면서 처방을 안 해주셨는데... 이제는 약 처방을 받아야 하나 고민.



치아는 작년에 치석제거하면서 확인했는데 치아 염증 조금 심한 상태. 하지만 나이에 비에 치아는 살아있는 편.. (아마도?) 오늘은 아르가 너무 예민해서 치아는 손도 못 대셨다고... 다음 주에 가는 병원은 치과 병원이라고 했으니까 잘 좀 부탁드려 봐야겠다. 



그리고 요 근래 아팠던 건 급성 췌장염이라고!!!!!! 아니 이렇게 무서운 병명을 듣게 될 줄이야 (왈칵) 



열이 나는 게 맞았고, 구토, 무기력, 식욕저하 모두 췌장염 증상이었던 거다. 어제가 제일 아팠던 것 같은데, 설사증상이 없었던 이유는 죄다 토했기 때문... 오늘 엑스레이 보는데 배가 텅텅 비어있었다. 배고프겠다 고양이... 일단 소화기능이 떨어져서 (왜일까? 혹시 내가 부담스러운 사료를 주나?) 췌장이 과하게 일한 것 같다고 하셨다. 췌장 수치는 기준치를 넘지 않았지만 35 기준 32였고, 보통은 10 이하라고 하셨으니 높긴 높다. 다른 소화기능 수치는 모두 빨간색으로 격하게 초과... 삐용삐용 소화기능을 도와주는 약을 주실 거라고 하셨다. 3-4일 정도 먹으면 수치가 내려갈 거라고.. 만성이 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걱정 말라고 하셨음.



병원 오느라 열받았는지 혈당도 MAX (웃김)



심장은 엑스레이 상으로 크게 문제가 없고, 갑상선은 아직 안 해도 될 것 같아서 검사 제외했다. 아, 신부전 관련된 수치가... 1기와 2기에 걸쳐 있었는데, 이제는 모든 다른 수치를 고려해서 2기로 진입했다고 진단해 주셨다. 신부전은 모든 고양이의 적..... 작은 몸으로 15년째 사느라 수고가 많다... 내가 비록 얼레벌레 인간이지만, 반드시 너를 허투루 돌보지 않으리.



흠 근데 지금 먹이고 있는 사료가 괜찮은지 모르겠다. 원래는 힐스를 먹이다가 작년 선생님이 로열캐닌 인도어 7+을 추천해 주셨는데 귀지랑 눈곱 알레르기가 너무 심해서 실패, 신장 관련 힐스 사료도 먹여 봤는데 알갱이가 너무 커서 실패. 레날은 처방식이니까 아직 고려하지 않고... 지금은 프로네이처 노르디코 홀리스틱 먹이고 있다. 내가 너에게 홀리스틱을 주게 되다니 기쁘다. 신장 안 좋은 친구들이 먹고 있다기에 시도해 본 건데, 좀 더 자세하게 찾아봐야겠다.






이제 고다에 눌러살아야겠어.

나랑 20살은 넘기자 고양이.



나랑 셀카.



글을 쓰는 동안....

네가 나를 두고

혼자 나이 들었다는 슬픔을

조금이나마 진정시켰다ㅠㅠ


이제 너 데리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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