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3 새벽

2024년 비상계엄과 탄핵소추안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

by Illustrator 서희







12일 3일 10시 27분.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순간이 될, 또 하나의 밤.



4일 새벽 1시경.

모든 국민의 긴장과 우려 속에서 다행히 계엄 해제요구안은 국회가 점령되기 전에 가결되었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서 보도되는 실시간 상황에는 여전히 긴장이 흘렀다. 생각하던 것보다 느슨하게 보이기도, 또는 긴박하게 보이기도 하는 모든 장면들이 아무 현실성도 없이 반복적으로 송출되었다.



서울 시내를 가로지르던 장갑차와

여의도로 향하는 헬기,

국회로 진입하려 하는 무장군인들,

마구 쌓인 바리케이드, 깨진 창문,

소화기를 들고 스크럼을 짠 국회 공무원들.







24년 12월 4일 새벽, 윤석열 정부가 보낸 계엄군은 간발의 차로 국회 점령에 실패했다.


안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함께 후퇴하는 군인들의 모습이 뉴스를 통해 방영되었다. 올해 하반기 수없이 스쳐갔던 계엄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눈앞에서 벌어질 줄 누가 알았을까. 보수 정권, 보수 언론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던 비상계엄 선포가 오늘 이렇게 보수 정권의 대통령을 통해 선포될 줄 누가 알았을까?



맨 몸으로 군인들의 국회 진입을 저지했던 시민들은 계엄 해제 후에도 순순히 군인들을 보내주지 않고 그들의 복귀를 막아선 채 버텼다. 시내에 진입했던 장갑차와 그 외 수송차량들이 시민들을 뚫고 후퇴할 수 없어 쩔쩔매는 장면들이 이어 보도되었다.



"복귀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도와주십시오."



손을 모아 요청하는 군인과 장갑차 앞에 버티고 선 시민들의 모습. 군부독재 시대를 겪으셨을 어르신들도 보였다.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새벽에 뛰쳐나오셨을 모습이 그려졌다.



그 누구도 비켜줄 기미가 없이 대치가 계속되고, 무장 마스크 너머 군인들의 곤란한 표정도 보였다. 완전 무장한 군인들과 장갑차가 시민들에게 연신 돌아갈 길을 터 주십사 호소하는 모습이 24년 티비를 통해 보기엔 너무 낯설었다. 새까만 마스크 너머로 들리는 난처한 목소리를 들을 때는, 무장한 그들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잠시간은 그 군인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동원된 한 대한민국 젊은이로 느껴져 도리질을 쳤다.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배워 온 민주화 시민운동의 역사가, 박근혜 정부의 시위대 물대포 진압을 비롯해 내가 겪었던 그 어떤 것을 통해서도 사실, 나는 그 시절의 비극을 전혀 알지 못했구나ㅡ 하는 생각이 들었다.




44년 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군인과 정부는 이 시민들을 향해 ㅡ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겠구나.


이렇게 눈빛을 보고 말이 통하는 사람들이 ㅡ

무참히 당신을 죽이고, 죽이고, 죽였겠구나.


내가 봐 온 모든 흑백의 기록들이

새벽 뉴스 화면에 겹쳐졌다.




그래서 더욱,

'자, 이제 계엄은 해제되었고, 위급한 상황은 종료되었으니, 아무것도 모른 채 동원된 젊은이들은 안전히 복귀하시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아, 오히려 절대 그럴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렇게 제20대 대통령 윤석열은,

감히 겁도 없이 군부독재시절 국군의 망령들을

국민 앞으로 소환시켰다.



그것도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노벨상을 수상한 2024년에.



아마 대한민국이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 상처, 여전히 벌어져 있는 아픔. 국민을 지켜야 할 군대가 국민들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었던, 이미 수없이 그래왔던 역사. 직면하지도, 화해하지도 못한, 심지어 처벌하지도 못해 슬픔이라는 단어로는 차마 담을 수도 없는 우리 시민들의 역사.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 2항. 진실로 거짓말 같은 헌법 제1조. 만약 24년의 계엄군 중에 누구 단 한 명이라도 비상식적인 무력진압을 통해 윤석열 정부에 충성을 보이려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하는 생각ㅡ 아마 누구라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르신들과 시민들의 노한 목소리는 마치, 그 모든 과거 국군의 망령을 앞에 세워둔 호된 꾸짖음으로 들렸다. 하지만 역시 슬프다고도 생각했다.



그 어떤 준엄한 양심의 꾸짖음도, 사실상 무력 앞에서는 아무 힘이 없다는 역사를 우리는 배웠으니까, 수많은 당신들이 죽어야만 그제서야 굴복하는 무력을 우리는 너무 많이 기억한다. 흑백으로 배웠던 그 역사의 기록들에서는 여전히 피비린내가 난다. 그래서 나는 감히 슬프기도 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슬픔에 빌어 결국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슬픔. 그것은 다시, 대한민국의 부끄러운 정치 역사가 단 한 번도 올바르게 청산된 적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100년 가까운 역사 속에서, 국민들은 기꺼이 매번 그들을 용서했다. 친일파를, 독재를, 군부를 그리고도 수많은 것을. 이 땅에서 같이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 국민으로 기꺼이 그들을 받아들였고, 일부에게는 국민의 주권이라는 것을 일임했다. 나는 이 사실이 조금 슬픈 것 같다.



그럼에도 쉽게 낙담하고 무관심해지지 않기 위해, 사실 인간의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을 떠올려보기도 하지만, 쉽지는 않다. 매번 말도 안 되는 국가의 행정 시스템과 상식을 마주할 때마다 경악스럽기 그지없다. (매번 경악하기에도 조금 지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지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도대체 국민이 얼마나 우스울까?



물론, 우스울 만도 하다. 계엄이 내린 지 며칠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우연히, 누군가가 (벌써) 윤석열을 옹호하는 통화내용을 들었다. 이번 계엄은 그런 관점으로 보면 안 된다나? 대통령이 오죽했으면? 이번 사태 역시, 일부 국민들의 관용은 놀라우리만치 바다와 같다. (그래서 도대체가, 미워하지 않으면서 화합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다..)


이렇게 100년 가까이 국민의 이름으로 내린 면죄부는 2024년 대통령이 내린 시대착오적인 비상계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이 역사에 대한 비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이 전혀 예고되지 않았던, 우발적인 선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24년 비상계엄의 근거로 북괴, 반국가세력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며 국민과 야당을 지목했다.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단어 사용 의도는 또다시 민족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국가의 도구삼아 국민을 위협하고 자신들만의 권력을 도모하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으며, 계엄선포 또한 시민들의 피로 일궈온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아주 지독히도 우습게 본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여당 또한 그 수준이 다르지 않다. 모든 사안을 정당정치로 몰고 가는 그들의 발표와 결정 또한 이제 놀랍지도 않고 (뻥이고 매번 놀랍다.) 심지어 백만의 국민이 국회 앞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특검법 부결 확인 후 곧바로 자리를 떠난 그들은 또다시 대한민국 정치 역사에 경악스러운 기록을 남겼다.



윤석열 탄핵소추안은 정족수 미달로 개표되지도 않았다. 윤석열이 담보해 준 밥그릇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몰라도, 현장에 있었던 백만의 국민조차 우스웠던 것이 사실이니 다시는 국민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그 어떤 자격도 허락되지 않기를 바란다. (개같이 진심)



누구들은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고도 하지만, 나는 생각하길, 우리나라 시민들은 정치에 관심 많다. 계엄선포 당일 새벽에도 전국에서 모인 수많은 시민들이 국회를 지켰고, 계엄 비판과 특검법 가결, 탄핵소추안 가결을 위해 토요일에는 백만 가까이 되는 시민들이 여의도로 모였다. 가득 모인 사람 덕분에 여의도는 춥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제발 이제는 좀 더 발전적인 논의를 이끌어 줄 정부를 원한다. 여러모로 좋지도 않은 상황에서 오가는 국가적 논의가 북괴에 계엄이라니.. 제발 시민으로서 숙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논의를 주는 정부를 원한다. 우리가 서로의 의견을 물고 뜯고, 박 터지는 공론장에서 만나게 되더라도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이야기들을 원한다.



시민들이 모여 논의해야 하는 수많은 안건들의 수준을 퇴보시키지 않기를 바란다. 안 그래도 힘든 시기에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 더 중요하고 필요한 논의들이 많지 않을까. 국민들이 각자의 입장에서 가장 합리적인 의견을 행사할 수 있도록 올바른 시야와 정보를 주는 정치를 원한다... 우리 모두가 시민으로서 배우고 참여할 기회를 차단당하고 싶지 않다. 다 그놈이 그 놈이라는 정치적 매너리즘에 빠져가는 동료 시민들을 보는 일도 슬픈 일이다.




이에 우리는 올해도 다시 광장에 나간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작아질 때쯤,

또 다른 누군가가 그 목소리를 이어받아 줄 것이다.



올해 겨울도,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광장에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다시 만난 세계가 함께 울려 퍼지는 광장에서, 우리는 언제든 서로를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의도에서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함께 확인하길, 박근혜 정부 시기 탄핵 시위는 총 23번 열렸다고 한다. 23번? 정말 대단한 국민들임이 틀림없다…. (물론, 당시 세월호를 비롯한 희생이 너무 컸고, 이후 영원히 비어버린 시민들의 빈자리 또한 기억해야 한다...)



덧붙여, 20대에는 ‘어떻게 내 나라에 이런 일이!’ 하는 마음으로 광장에 뛰쳐나갔는데, 대강 10년 정도 더 살아보니 사는 내내 앞으로도 쭉 이럴 것 같다. 그러니 굳이 비장해질 필요도 없는 것 같다… 50대 분들은 어떻겠어(?)...








그리고 당연히 굳이 광장이 아니더라도 각자의 자리에서 마음을 보태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들 따뜻한 겨울 되시면 좋겠습니다.



어제는 집회 장소로 향하는 길에 잠시 빌딩 1층 화장실에 들른 일이 있었는데, 빌딩 내부에서 한 아저씨가 벽 페인트 칠을 하고 계셨어요. 오늘 일하시는구나 생각했는데 틈틈이 소주를 드시면서 벽 칠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잘못 봤나.. 그냥 그런 장면들이 다 마음에 걸려요. 내년에는 모두의 근심걱정이 조금은 덜어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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