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프롤로그
보통. 사전적 의미로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음.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를 뜻한다. 그러니까 나도, 남이도 특별하지도 뛰어나지도 않은 흔히 볼 수 있는 인간과 고양이다. 그런 우리의 이야기를 글로 쓸 만큼 특별한가 싶지만, 약 77.53억 명 중의 1명*인 나와 약 6억 마리* 중의 1마리인 남이가 한집에 살 확률과 비교하면 로또 1등 당첨이나, 벼락 맞을 확률 보다는 확실히 어려운 일이다. 이건 확실히 특별한 이야기다.
언젠가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다. ‘언젠가'. 당장은 아니고 언젠가. 유튜브의 수많은 고양이 동영상을 보면서, 친구네 고양이 사진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집사*가 될 것이라는 꿈을 꾸었다. 나에게도 고양이로부터 간택의 순간이 찾아올 것이라 막연히 생각하기도 했다. 생각만큼 간택당하는 집사가 많지 않다는 건 동네 고양이들이 나를 피해 다니는 걸 보면서 알았다. 길에서 지내는 친구들은 사람을 많이 무서워하는구나. (내가 싫어서 피해 다니는 건 아닐 거다.)
포인핸드*와 고양이 커뮤니티를 들락날락거리며 분양 글을 꽤 오랜 시간 봤지만, 쉽사리 용기가 나질 않았던 건 내가 정말 잘 키울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으니까. 키우는 고양이를 파양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고, 그런 이들로 인해 분양의 조건은 까다로웠다. 과연 그 조건을 내게 들이밀었을 때 나는 좋은 집사가 될 자격이 있는지 자신도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런 내가 집사가 되었다. 이 글의 주인공인(정확히 밝힌다, 이 글들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남이다.) 남이는 이제 곧 4살이 되는 고양이로, 흔히 '고등어'라고 불리는 고동색털에 검은 줄무늬를 가진 '코리안 숏헤어'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멋진 브이넥 가디건에 하얀 장갑과 하얀 양말을 신고 있는, 깔맞춤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멋쟁이다.
'코리안 숏헤어'에서 눈치를 챘겠지만, 남이는 길에서 태어났다. 길에서 태어난 남이가 어느 날 나에게 찾아왔다. 정확히는 내가 남이를 찾아갔다. 지인의 SNS피드에서 처음 만난 남이는 엄마가 독립시킨 새끼 고양이다. 떠나버린 어미를 기다리며 전봇대 아래에서 우두커니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던 새끼 고양이. 가을이 깊어지고 날씨는 쌀쌀해지는데 그 자리만 지키고 있는 모습이 그저 안쓰러웠다.
랜선집사라며 고양이를 좋아했지만, 실제로 키우는 일, 그것도 개냥이라고 불리는 사람 친화적인 고양이가 아닌 길고양이와 함께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나는 길고양이를 너무 몰랐고, 남이는 인간과 함께 집에서 사는 삶을 잘 몰랐다. 서로를 바라보며 '물음표'를 띄우는 순간이 곧잘 생겼다.
남이가 화를 낼 때, 남이가 짜증을 낼 때, 남이가 이상한 행동을 할 때, 남이가 기분 좋아 보일 때마다 책도 읽고, 수업도 듣고, 유튜브도 많이 찾아보았다. 그리고 알게되었다. 모든 사람이 다르듯 모든 고양이도 다르단 걸. 처음엔 남이가 왜 다른 '개냥이'와 다른지 아쉬움이 들 때도 많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남이는 다른 집 집사들처럼 상냥하지 않은 나에게 아쉬움을 느꼈을 거다. 나는 남이에게 유일한 집사이자, 유일한 (사람)고양이니까. 남이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 바로 그럴 때다. 나만 남이를 다른 고양이와 비교한 것 같으니까. 남이는 오로지 나만을 친구라고 여기니까 말이다.
함께 동거동락한 지 4년 차. 남이가 밖에서 마음껏 돌아다닐 자유를 빼앗아 버린 게 아닐까 미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길고양이의 수명이 3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에 조금 안심했다. 여기서 철퍼덕, 저기서 철퍼덕 누워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고 하는 남이를 보고 있으면 더욱 안심한다. 더 넓은 세상을 볼 기회는 없어졌을지 모르겠지만,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로부터 안전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렇게 좋은 집사는 아니다. 남이의 사진을 폴더 가득 채우지도, 하루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 놀아주지도 못한다. 이 글은 지금보다 더 남이를 좋아하기 위해 쓴다. 애교도 많지 않고 누군가가 집에 찾아오면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남이의 행동은 여전히 이해되지 않을 때도 많고 화가 날 때도 많지만, 오로지 나만 볼 수 있는 남이의 애교와 엉뚱함에서 어제보다 오늘, 우리가 조금 더 가까워졌음을 깨닫는다.
남이었던 보통 인간과 보통 고양이는 이렇게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
*세계 인구 77.53억명(2020년 기준)
*세계 고양이 수(반려고양이, 길고양이, 야생고양이)는 약 6억 마리
*집사 :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을 흔히 고양이를 모신다는 의미로 ‘집사’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포인핸드 : 전국 보호소 유기동물에게 가족을 찾아주는 플랫폼 서비스
*인간고양이 : 고양이는 같이 사는 사람을 같은 고양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