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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유 Aug 25. 2022

사랑은 23만원을 싣고

#01. 냥줍을 해야할까요?


하늘이 열리고 남이가 내려왔다.


관악산 아래 자취방에 친히 납시어 고묘선(!)을 세우시니..그렇다, 그날은 '개천절'이었다. 남이가 나의 자그마한 자취방에 오게 된 날,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지만 키울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초보 집사는 얼떨결에 동거생활을 시작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을 거다. 지인에게 분양받을 수도 있고, 고양이 커뮤니티나 유기동물 APP을 통해 분양받거나, 펫샵(그렇게 추천하지는 않는다.)에서 사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드물게 고양이에게 ‘간택’을 당하는 일이 있다. ‘냥줍’이라고 불리는 길고양이를 줍는 경우가 바로 그렇다.


유튜브를 보면 특히 이 ‘냥줍’을 콘텐츠로 다루는 경우가 제법 있는데, 고양이를 키우고 나서 현실적으로 많이 발생하는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따르는 고양이란, 사람 손을 탔다는 이야기가 되니까. 길에서 새끼 고양이를 보더라도 일단 만지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사람 냄새가 고양이에게 밸 경우, 어미가 새끼를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냥줍은 사람 손을 탄 고양이가 길에서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기에 일어나는 일일 수도 있다.



지인의 SNS에 올라온 글이 남이와의 첫 만남이다. 어미와 함께 다니던 고양이가 어느 순간부터 혼자 다닌다는 이야기와 함께 올라온 새끼 고양이는 작기만 했다. 이렇게 작은 고양이라면 어미가 다시 찾아올지도 모른단 생각을 했지만, 2주가 넘어가도록 SNS 속 남이는 혼자였다. 아무래도 독립시켰거나, 어미의 신변에 문제가 생긴 것으로 보였다. 빼빼 마른 새끼고양이는 동네 사람들이 나눠주는 밥을 먹으며 조금씩 자라고 있었지만, 점점 꼬질꼬질해졌다.


9월 말이 되면서 갑자기 추워진 날이 있었다. 침대에 누워 스며드는 한기를 느끼며 곧 겨울이 찾아오면 새끼 고양이가 위험하리란 마음이 들었다. 작지만 멋진 눈빛을 가진 새끼 고양이를 2주 동안 지켜보면서 나도 모를 애정이 생겨버린 것이다. 지인에게 날씨가 쌀쌀하단 이야기를 나누다 직접 만나러 가기로 한 건 나도 모르게 작게 피어난 애정 때문이었을 거다.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땐 고양이를 키우는 것은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할 일이었지만, 마음엔 ‘그럼에도’와 ‘만약에'가 자꾸 생겨났다. 만약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친구를 키우게 된다면..?


100%의 확신이 없을 때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그 전봇대 아래에 고양이가 있다면 데리고 오자'는 것이었다. 그건 묘연일지도 모르니까. 반반의 확률에 고양이와 내 운명을 맡겨버린 채 나는 지인의 집 근처로 향했고, 머릿속에 TV는 사랑을 싣고 BGM*이 깔리며 새끼고양이와의 운명적 만남을 그렸지만, 어라, 만나지 못했다! 늘 있던 자리에 새끼 고양이가 없었던 거다. 지인도 당황하고, 나도 당황하고. 웅장한 첫 만남을 기대했던 BGM은 어느새 김광석의 편지로 바뀌었다.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어, 여기 있다.” 묘연이 아니었나보다 포기하려고 할 때쯤 지인은 전봇대 바로 근처에서 새끼 고양이를 발견했다. 산책 중이었던(것으로 보이는) 새끼 고양이는 갑자기 찾아온 사람들에 경계심이 잔뜩 생긴 눈으로 쳐다봤다. 고양이는 생각보다도 작았다. 아니 말랐다는 표현이 더 맞을 거다.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는 새끼고양이를 쳐다보며 전봇대에서 발견한 건 아니니까 키우는 게 맞는건가 키우지 않는 것이 맞는 건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확률에 변수가 생겨버린 것이다. 그런 나의 고민과 달리 개를 키우는 지인은 집에서 쓰는 이동장과 가지고 있던 고양이 사료를 집에서 들고왔다. 그렇게 포획 경험이 없는 나를 대신해 그녀는 먹이로 유인해 남이를 잡았다.


남이는 성질이 보통이 아니었다. 병원에 데리고 가는 동안도 어찌나 화를 내던지, 치료받으러 가는 것이라고 설명해도 이동장 안에서 울어대는 녀석이 알아들을리가 없었다. 병원에 도착하자 낯선 분위기에 조용해지나 했더니 이내 치료를 보려고 하는 수의사 선생님에게 하악질을 해 바로 진정제를 맞고야 말았다. ‘핸들링이 안되는 고양이’. 남이에게 내려진 첫 진단명이었다.


기생충 검사, 범백 검사, 피부 검사를 받고 예방주사를 맞았다. 범백은 특히 고양이에게 치명적인 병이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문제가 없었다. 곰팡이로 인한 약간의 피부병을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건강한 친구였다. 성격이 사나운 만큼 건강했다.



병원비는 23만 원이었다. 건강하다고 말했던 의사 선생님의 말과는 달리 병원비는 건강하지(?) 않았다. 예상보다 큰 지출은 앞으로 고양이를 키우는 일에 들어가는 비용을 대충이나마 가늠하게 했다. 보험제도* 같은 것이라도 잘 되어 있으면 좋으련만, 그런 것이 없다 보니 확실히 병원비가 비쌌다. 커뮤니티의 고양이 분양조건에  ‘경제력'에 대한 질문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집사들 사이에 유명한 격언 ‘마음으로 낳아 지갑으로 키운다'이 와닿았다.


처음으로 고양이를 위해 비용을 치르고  기운에 취해있던 고양이를 이동장에 싣고 집으로 왔다. 없는  조용히 있다가도  번씩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새끼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그날 밤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낯선 환경, 사람이 무서워 울었고, 나는 나대로 고양이가 이동장을 박차고 나와서 공격할까  무서웠다. 쫄보 집사와 쫄보 고양이에겐 서로 낯선 첫날 밤이었다.


*길에서 고양이를 데리고 오는  확실히 쉬운 일도 추천할   일도 아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유기묘를 입양하는 방법으로 고려했을 거다. (남이를 키우는  후회하는  절대절대 아니다. 남이야, 이건 읽지마!)




<초보 집사의 참고 영상>

'야옹'은 간택의 신호?! 길고양이 함부로 냥줍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어쩌다어른D]

https://www.youtube.com/watch?v=HOR-jy2PVK4

길냥이가 순화되는 과정에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심'이라고 한다. 남이가 인내한 것인지 내가 인내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는 잘 지내고 있으니 다행이다.


*TV는 사랑을 싣고 BGM : 첫사랑을 찾아주는 방송으로 유명했던 KBS의 TV 프로그램. 두 사람이 드디어 만나는 장면에 늘 제니퍼러시(Jennifer Rush)의 Power of Love가 늘 깔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셀린디옹이 부른 게 더 유명하다.

*고양이 보험 : 이후 펫보험이 생겨났지만, 질병에 적용할 수 있는 혜택이 적은 편이라 별도의 적금을 만들어 일정 금액을 모아두는 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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