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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장장이 휴 Mar 29. 2024

엄마와 아빠의 환갑여행과 선우정아의 '도망가자'

아내가 공항에서 말했다.


"아버님은, 평생을 몰래 사랑하시고 있겠지."


"... 그런가.. ㅎㅎ"


엄마와 아빠는 아빠의 오랜 투병으로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친 상태였다.

심장수술 도중 심정지가 왔던 아빠는, 기적처럼 다시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지만 그 후로 1년 반이 넘도록 일상생활을 잘 할만큼 회복이 되진 않고 있었다.


집도의가 수술 도중 나와서 우리에게

"아버님 심장이 심정지가 와서 멈췄는데, 일단 가슴은 닫지 않고 있다. 기다려보는 수밖에는 없다."

라고 말했을 때, 엄마는 찬찬히 날 보며 이야기했다.


"이런 상황에서 할말은 아니지만,
느그 아빠가 혹시 이대로 다시 심장이 뛰지 못하게 되면
나는 느그 아빠 없이 살 마음도, 살 이유도 없다.
... 미안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빠의 심장은 멈춰있었고, 나는 아들이지만 왠지 거기서 엄마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참담했지만, 곧장이라도 왠지 쓰러질 것 같았지만, 어쨌든 그랬다.

나는 그저 하나남은 내 정신줄을 간신히 부여잡고, 어떻게든 버티고 서있었던 기억만 난다.


아빠는 의식이 돌아오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중환자실에 있었고,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다른 사람 앞에서도 펑펑 우는 법을 배웠고, 

전화벨만 울리면 심장이 두근거려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날들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몇달동안 견뎠다.


그리고 올해초 겨울의 끝자락에, 엄마가 이야길 꺼냈다.


처음이었던 거 같다.

무언가를 해달라고 자식에게 이야기한 게.

평생을 바보처럼 자식에게라면 간이고 쓸개고 다 빼주고 살면서도, 자식들이 밥이라도 한끼 산다고 하면 손사래치며 기어코 얻어먹지 않던 엄마아빠였다.


"느그 아빠 너무 침대에만 갇혀서 답답하게 오랜 세월을 지내는 거 같아서. 제주도라도 어떻게 해서든 한 번 여행 좀 다녀올까 싶다."


곧장 아내와 내가 숙소와 비행기 티켓을 끊어드렸다.

엄마아빠는 자동차를 배에 실어보내고, 

아빠의 약과 저염식 식단재료들을 바리바리 챙겨서 제주도로 환갑여행을 갔다.


두분이 여행을 간 후에 

나와 아내, 동생도 주말에 잠시 엄마 아빠를 뵈러 제주도에 갔다.

동생은 마산으로 가고 나와 아내는 다시 김포공항으로 돌아왔다.

그 때 아내는 공항에서 불쑥 내게 그 이야길 한거다.

"아버님은, 평생을 몰래 사랑하시고 있겠지."


아빠가 아내와 둘이 잠시 서있는 동안 그랬단다.


"느그 엄마가, 내가 아픈 것 때문에 내내 병원에서 고생하고 내 때문에 맛있는 거 못 먹고 어디 여행도 못가고 고생하는데. 여행 와서도 내 아픈거 때문에 맛있는 식당도 못가고 야채밥만 먹다가. 그래도 느그 와서 느그 핑계로라도 식당에 가서 맛있는 것도 좀 먹고 할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


아빠는 정작 엄마 앞에서는 무뚝뚝하게 별말도 안 하고, 몸이 너무 힘드니 그저 힘들어만 하고 가끔은 엄마에게 투정도 부리고 짜증도 내곤 했다.


아빠는 자기 컨디션이 여행을 갈 상태가 도저히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몇년을 자신의 간호만 하느라 고생하는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좋게 해주고 싶어 여행을 왔다고 말했다. 물론 그 말은 엄마 없을 때 내게 한 말이다.


결국 엄마는 아빠를 위해, 아빠는 엄마를 위해, 서로 여행을 가기로 한거였다.


아빠는 심부전으로 폐와 복수, 다리에 부종이 생기고 물이 차서 숨이 가빠 걷거나 눕는 게 힘들었다.

결국 예정된 여행을 다 마치진 못하고, 여행 도중에 급히 비행기를 타고 병원 응급실로 들어와 입원을 했다.


제주도에 환갑여행을 가서도 사고도 많았다.

숨이 차서 밤에 잠을 거의 못자다보니, 

새벽에 잠결이었는지 침대에서 낙상을 하는 바람에 온가족이 혼비백산 하기도 했고.


누워서는 도저히 숨이 차서 잠을 못자니 자동차 조수석에 앉아있으면 거의 30초만에 잠들었다가 

다시 다리에 쥐가 나거나 숨이 차면 깨곤 했다.

그래도 차에 타고 있으면 그나마 30분씩이라도 자는 아빠를 위해, 

엄마는 거의 비몽사몽으로 잠들어있는 아빠를 태우고 여행 내내 제주도 이곳저곳을 운전하며 시간을 보낸듯 했다.

그러면 아빠는 좀 잘 수 있으니까.


아빠가 하루하루가 힘겹고, 

그걸 보는 엄마의 하루하루도 눈물겹고, 

그걸 보는 나와 동생과 아내의 가슴도 미어지는 이 날들이 

문득 문득 너무 고통스럽고 눈물만 나다가도.


그래도 전화를 걸면 아빠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주말에 내려가면 아빠와 눈을 마주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하고 사무치게 고마운지 모른다.


엄마 아빠는 가난했지만, 

서로 투닥거리거나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그래도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


덕분에 낭만과 사랑이 괴담처럼 되어버린 시대에 살고 있는 나도, 

결국은 마음을 다 바칠 수 있는 사랑하는 아내를 만날 수 있었다.

사는 내내 보고 배운 게 그런거니까.


아빠의 환갑은 작년이었지만 많이 아프다보니 다른 기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보냈고, 

엄마의 환갑인 올해는 난생 처음으로 원하는 걸 말한 엄마 덕분에 여행을 선물로 드렸다.


물론 여행 자체가 아빠의 투병이 있으니 남들이 말하는 여행은 아니었지만, 

나는 왠지 그 여행을 들은 직후부터 선우정아의 노래가 떠올랐다.


선우정아의 '도망가자'라는 노래가 있다.

나는, 엄마와 아빠의 환갑여행을 떠올리면 이 노래가 생각난다.


언젠가, 반드시, 꼭, 씩씩하게 다시 예전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서로 웃는 날이 오겠지.

그 날을 믿는다.


도저히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지 않아서, 

내심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가족들 모두가 그런 날이 안 오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떨고 점점 믿음이 바래져가도.

나는 끝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기대와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그렇게 기도하고, 진심으로 기원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이다.


P.S) 동생은 이 이야기를 듣곤 

예전부터 한 번씩 말한 것과 똑같은 이야길했다.

"저게 진짜 사랑이지 사실."


내가 평생을 아들로 살면서 지켜본 결과, 동생의 말은 사실이다.

엄마와 아빠는, 서툴고 투박하지만, 

가끔은 서로를 미워도 하고 서운해도 하지만, 

서로를 마음 다해 사랑한다.

정작 본인들은 그런 걸 정확히 모르는 것 같을 때도 있고, 표현을 못한다는 게 좀 그렇지만.




도망가자

어디든 가야 할 것만 같아

넌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아

괜찮아

우리 가자

걱정은 잠시 내려놓고

대신 가볍게 짐을 챙기자

실컷 웃고 다시 돌아오자

거기서는 우리 아무 생각말자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

있을까, 두려울 게

어디를 간다 해도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너라서 나는 충분해

나를 봐 눈 맞춰줄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멀리 안 가도 괜찮을 거야

너와 함께라면 난 다 좋아

너의 맘이 편할 수 있는 곳

그게 어디든지 얘기 해줘

너랑 있을게 이렇게

손 내밀면 내가 잡을게

있을까, 두려울 게

어디를 간다 해도

우린 서로를 꼭 붙잡고 있으니

가보는 거야 달려도 볼까

어디로든 어떻게든

내가 옆에 있을게 마음껏 울어도 돼

그 다음에

돌아오자 씩씩하게

지쳐도 돼 내가 안아줄게

괜찮아 좀 느려도 천천히 걸어도

나만은 너랑 갈 거야 어디든

당연해 가자 손잡고

사랑해 눈 맞춰줄래

너의 얼굴 위에 빛이 스며들 때까지

가보자 지금 나랑

도망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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