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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숲속의우주 Dec 19. 2024

어른에게도 필요한 놀이터, 레고랜드

[춘천] 전 세계 모두가 사랑하는 LEGO로 이뤄진 호기심 천국에서 놀기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놀이의 방식은 나이 듦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화해 왔다. 한두 살 때 내가 어땠는지는 부모님 댁에 놓여 있는 추억의 앨범을 뒤져 보면 알게 된다. 항상 내 손에는 보드라운 털의 곰돌이 인형이 들려 있었다. 내 품에서 떨어지면 안 되는 애착인형이었던 곰돌이는 유모차에 타서 외출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하얀 털이 새까매질 때까지 나와 함께 했다.


입이 트여 사람답게 말을 할 수 있게 된, 미운 네 살의 나는 인형을 내려놓았다. 역할 놀이에 심취해서 어른들의 모습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내 기억에는 엄마랑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돌아와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과정을 즐거워했던 것 같다. 어린 꼬마가 칼과 불에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위험하기 때문에, 엄마는 장난감 부엌이나 요리식당을 사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처럼 가짜 도마 위에서 당근을 썰고, 가짜 프라이팬에 계란을 구웠다. "OO이가 아침 만들어 줄게"라며 식탁 위에 모형 음식을 차려 놓고는 엄마가 맛있게 먹는 시늉을 해주는 것에 행복했다.


일곱 살이 되던 해, 곧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나이가 되어 '꼬맹이'로 취급받는 게 싫었던 것 같다. 나도 어른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나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받고 싶었다. 이제 부모님과의 가짜 역할 놀이는 이제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또래 친구들과 실존하는 세계, 놀이터에서 경찰과 도둑을 하고 쫓고 쫓기는 놀이를 시작했다. 공동으로 지켜야 할 놀이의 규칙을 정하고, 이를 따르지 않는 소위 이기적인 친구는 놀이터 밖으로 추방됐다.


내 나이가 두 자리 숫자가 되었을 때, 친구들과 활발하게 밖을 누비던 열 살의 나는 다시 집안에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수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접하면서 엉덩이를 붙이고 조용히 앉아 머리를 써야 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구구단을 외우면 덧셈과 곱셈은 이해가 되었는데, 가장 어려운 것은 '시계 읽기'였다. 왜 시침이 숫자 3을 가리키면 3시인데, 분침이 3을 가리킬 때는 15분이 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분침이 12를 가리키면 60분 즉, 한 시간이 지난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아채지 못했다.


내게 수학적 사고가 부족해질까 걱정했는지 엄마는 나에게 레고(LEGO) 한 박스를 사주셨다. 놀이학습으로써 레고 블록을 조립하면서 입체 도형에 대해 스스로 이해하고 깨우치기를 바랐을 것이다. 태생이 이과생 스타일이 아니었던 나는 블록을 바닥에 와르르 쏟아낼 때의 소리와 어질러진 바닥에서 레고와 뒹구는 것이 좋았다. 가장 넓은 블록은 맨 밑바닥에 깔고, 점점 크기가 작은 블록을 위로 쌓아 레고 매뉴얼 대로 건물을 완성하는 데는 큰 관심이 없었다. 알록달록한 색깔의 블록을 마음대로 끼워서 이상한 모양을 만들어 놓고는 무엇을 만든 것인지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게 좋았다. 레고를 통해서 내 눈에만 보이고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비밀스러운 세계가 시작되었다.


어느덧 레고를 가지고 노는 시간도 멈춰야 했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배우는 교과목은 늘어났고 공부량은 많아졌다. 무엇보다 학교 시험에서 석차를 내는 일이 가장 중요해졌다. 어른이 되면 다시 돌아올 줄 알았던 놀이의 시간은 이 십 대가 되어서도 찾아오지 않았다. 대학교에서 낭만을 알려주는 멘토는 많지 않았다. 그저 "놀이는 게으른 자의 산물"이라는 것이 사회적 모토였고, 친구들 모두 학기가 끝나는 방학 때도 쉬지 않고 취업을 준비했다. 자격증을 따거나 관심 있는 회사에 인턴으로서 경험을 쌓으며 사회생활을 배워 나갔다.


그렇게 이십 대 청춘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뻔한 회사원이 되었다. 치열한 돈벌이에 조금씩 지쳐갈 무렵, 나는 숨통을 트이게 해 줄 취미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피아노도 연주해 보고, 노래도 불러 보고, 사진도 찍어 보고, 새롭게 헬스장도 다녀 보았다. 그런데 일부분에서는 내가 원하는 만큼 내 실력이 늘지 않아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다. 또 다른 부분에서는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지루해서 그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기가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진정한 취미를 찾지는 못했던 것이다.


2021년 7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레고랜드가 개장한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나는 "레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다. 한참 동안 어른이 되면 어린이들의 장난감인 레고는 가지고 놀면 안 되는 것인 줄로 착각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레고를 샀다고 자랑하는 어른은 찾아보기 힘들다. 보통은 어린 자녀가 있는 부모들이 백화점의 토이스토리 매장에 들어가 아이들에게 레고를 선물하고는 하니까 말이다. 또한 현실적인 시각에서 보면, 가뜩이나 좁은 집에 레고는 쓸데없이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애물단지일지 모른다. 경제적으로 볼 때도, 레고를 구성하는 블록 수가 많고, 인기 많은 피규어가 포함되어 있으면 가격이 몇십만 원을 훌쩍 넘는 사치품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어른이 된 내가 레고를 보면 만지고 싶고, 또 가지고 싶은 이유가 뭘까? 1934년 덴마크인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줄여서 '올레'라고 부름)이 처음 작은 목각 장난감을 만들어 '레고'라는 이름을 붙여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레고사는 세계대전, 대형화재 등 여러 번의 위기를 극복해 내고 레고를 대체할 수 없는 보통명사로 만들며 전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고 있다. 이러한 성공 비결에는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한 10대 원칙'을 레고에 그대로 녹아내는 경영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질 것

남녀 성별에 초월할 것

나이를 초월할 것

일 년 내내 질리지 않을 것

활기차고 흡입력을 가질 것

세대를 초월할 것

상상력, 창조력, 발전성을 지향할 것

놀수록 가치가 높아질 것

늘 아이들의 화제가 될 것

안전성이 높고 품질이 좋을 것

 

레고랜드 코리아 테마 1. 시티(City)
레고랜드 코리아 테마 2. 캐슬(Castle)
레고랜드 코리아 테마 3. 해적(Pirate)
레고랜드 코리아 테마 4. 닌자고(Ninjago)


개장 이듬해 봄의 계절이 시작되던 시기에, 강원도 춘천에 위치한 레고랜드 코리아를 찾았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서 자녀를 데리고 가족단위의 방문객이 많았지만 수도권에 위치한 다른 놀이공원처럼 엄청나게 붐비는 느낌은 없었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레고의 세계관은 시티, 캐슬, 해적, 닌자고 등으로 테마들이 다양해져 있었다. 레고로 만든 세계가 진짜로 느껴질 만큼 각 테마별로 진정성 있는 디테일과 깊이감 있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레고랜드 직원들이 양손을 모두 디귿(ㄷ) 자로 만들어 레고 피규어의 손처럼 보이게 한 다음, 입장하는 손님들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하며 손을 흔들었다. 레고라는 가상 세계에 들어온 현실 인간인 나는 노랗게 얼굴이 변하고 있음을 상상하며 똑같은 손모양을 만들어 인사에 화답했다. 덕분에 나는 아이처럼 들뜬 마음이 되었다. 레고랜드에 있는 동안만은 내게도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지는 것만 같았다. 현실적인 제약 조건 속에 붙들려 있는 나 같은 어른들에게도 레고랜드는 복잡한 일상을 잊고 상상력과 창의력의 날개를 달아 어린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처럼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레고를 사랑한다. 레고는 단순한 놀이, 취미를 넘어서 사람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매력적인 매개체이기도 하다. 현재 레고만이 가진 좋은 메시지를 전달함에 있어서 '레고랜드 코리아'가 좋은 메신저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렇지만 메신저를 공격하다가 메시지를 잃어버리는 행동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레고를 사랑하는 한 사람 그리고 어른으로서 레고랜드에서의 추억을 조심히 꺼내어본다.

2022년 9월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개발을 맡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기업회생을 발표하면서 신용위기 사태가 발생했고, 당시 외환 보유액이 두 달간 200억 달러 이상 증발했다. 그 이후로 국가 및 지자체가 발행하는 채권 신용도가 낮아지면서 채권 가격이 급락하고 자본시장이 경색되었다. 이외에도 레고랜드 사업 시행 과정에서 하중도 문화재 훼손 등 논란은 아직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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