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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인표 Jun 19. 2019

12일

"삼촌, 근데 나 궁금한 거 있는데, 삼촌 손은 왜 이렇게 울퉁불퉁해? 징그러워!”

"아, 흉터? 다쳤어. 대학생 때 식당에서 아르바이트 하다가. 벌써 십오 년도 더 지난 얘기네"

"아르바이트? 남의 집에서 일하는 거? 무슨 일 했는데?"

"치킨집 배달을 했지."

"우와! 삼촌 오토바이 아저씨였어? 엄마가 그러는데 삼촌은 학교 다니면서 계속 아르바이트 했다던데. 그럼 삼촌은 부자겠다.”

"부자는 무슨. 아르바이트해서 전부 대학 수업료 냈는데."

"그래? 근데 왜 다쳤어? 닭이 물었어?"

"아니. 배달하다가 넘어졌어."

"우웩. 엄청 아팠겠다.”

"아팠지. 지금은 만져도 안 아파.”

"엄마가 그러는데, 삼촌은 어딜 가도 일을 달고 다닌다던데. 일복이 많다던가?"

"일이 많다기보다는 열정이 넘쳤지. 손님 없을 때는 유리창도 닦고, 오토바이 수리도 하고. 잘하고 싶었으니까. 가게에 돈도 많이 벌어주고 싶었고. 그래서 사장님도 삼촌을 참 좋아했는데.”

"그럼 삼촌은 열정맨이라 다친 거야?"

“치킨 배달은 속도가 생명이잖냐. 그 생명 지키려다가 이 생명을 잃을 뻔했지. 치킨보다 삼촌 몸이 먼저 식을 뻔했다니까. 너도 치킨 시키면 언제 오냐고 계속 보채잖아.”

“응. 빨리 먹고 싶으니까.”

“삼촌도 빨리 배달해주고 싶었거든! 튀기고, 포장하고, 배달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구! 사람들이 그래도 피자에는 좀 관대한데, 치킨에는 아주 냉혹하다니까. 아주 매정하다구.”

“피자도 식으면 맛없는데. 그럼 그때 그만둔 거야?”

“일은 하고 싶었는데 사장님도 그만 나오라고 하더라고. 누가 붕대 낀 미라한테 일을 주냐. 사실은 일을 더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더 이상 할 수가 없게 된 거지. 그래서 알겠다고 했어. 나만 생각할 수는 없으니까. 짐 챙기고 한참 기다리는데 사장님이 이제 그만 가보라고 하는 거야. 삼촌은 기다렸지. 그동안 일한 알바비는 받아야 하니까. 근데 줄 수가 없다더라. 병원 수술비로 썼고, 그 날 장사도 못했고, 오토바이도 고장 났고. 여러모로 삼촌 때문에 피해가 많았다면서.”

“나쁜 아저씨네! 그래도 돈은 줘야지. 그래서? 그래서 삼촌은 어떻게 했어? 경찰 아저씨한테 신고했어?”

“그때는 그러지도 못했어. 그게 관행이었거든”

“그럼 어떻게 했는데?”

“매일 찾아가서 기다렸어. 12일 동안. 정말 평생 먹을 욕 다 먹었다. 넌 거지냐, 자존심도 없냐, 이럴 시간에 다른 일을 알아봐라. 이건 엄연한 영업 방해다. 등등. 그때 생각했지. 애정이란 건 말이야, 치킨만큼이나 쉽게 식어 버리는 거라는 걸. 시간이 지나 돈도 받았고, 상처도 아물었지만, 그때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던 경멸 어린 시선과 말들은 지금도 잊히지가 않네. 마음의 흉은 보이는 게 아니니까.”

“에이, 훌훌 털어버려 삼촌. 겨울방학 숙제처럼.”

“그냥, 그 기다림이 삼촌에게 선택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수단이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어. 너는 삼촌 말 이해하겠니?”

“음, 잘 모르겠는데, 지금부터 이해하려고 노력해 볼게.”

“그래. 그럼 삼촌 마음에 난 상처도 조금씩 아물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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