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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남 Mar 31. 2017

[소설]내려놓음 134 6cycleⅡ

20대 한의사, 암에 걸리다.



134 6cycleⅡ






 MRI를 촬영했다. 3cycle 후 찍었던 날처럼 있는 그대로, 오차 없이 나오게만 해달라고 기도했다. 최근에 배운 묵주기도를 2단 정도 바치니 촬영도 끝났다. 일주일을 기다려 판독하러 교수님을 만나 뵈었다. 면담 있는 날마다 늘 그러했듯이 아침 일찍 일어나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받았다. 마지막 경과를 보는 날이니만큼 어머니도 반차를 내고 동행했다. 이미 3개월 전에 결말을 스포일러 당하기도 했고, 치료가 없는 3개월을 보낸 뒤에 있을 f/u 결과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나와는 달리 부모님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MRI를 앞두고, 그리고 찍고 나서 지금 이 순간까지 어머니는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평소와 똑같이 생활하셨다. 잔걱정이 많은 분이셨기에, 살짝 의아해했지만 수많은 일들이 벌어졌던 지난 시간이니만큼 무뎌졌나보다 여기고 있었다. 타고난 쫄보인 나도 그랬으니까. 이제 보니 아니었다. 감점을 크게 드러내시지 않는 아버지조차 굳은 얼굴을 하고 계시는데 어머니는 오죽하셨을까. 무뎌진 게 아니라 숨겼던 거였다. 언젠가 읽었던 소설 속 대사가 떠오른다.


여직껏 꿋꿋하게 잘 버티기에 그냥저냥 극복한 줄 알았더니 이제 와서 웬 약한 소리냐구요?
형님 보시기에도 제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보입디까?
아무렇지 않지 않은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면 그게 얼마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였는지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으시죠.


 오늘 일이 그렇게까지 중요하지 않다고 위로해드릴까 고민하다 그만두었다. 그렇다고 해서 사라질 걱정이 아님을, 지금은 그냥 부모님의 마음속의 원하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모든 게 굳어버린 시간 속에서 마음속으로 묵주기도를 바쳤다, 모든 게 사르르 녹기를 기다리며.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재발하지 않게 해주세요.’

 ‘부모님이, 가족이 힘들지 않게 해주세요.’

 ‘살려주세요.’


김동완님, 들어오세요.


 진료실로 들어갔다. 늘 그렇듯 교수님의 얼굴에서는 어떤 정보도 나오지 않았다. 교수님이 보여주는 MRI 영상은 3개월 전과 별 차이가 없었다. 플레어 영상의 고음영 부위가 넓게 남아있는 것이 여전했고, 조영증강 영상도 마찬가지였다. 치료가 종료되어도 돌아오지 않는 고음영 부위가 미심쩍었지만 교수님은 별 문제 없다는 식으로 넘어갔다. 뇌부종이냐는 질문에 그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믿지 않았다. 그 부위만 아직 부종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수술 당시 잘라내어 비어있는 부분이거나 종양이 주위의 뇌혈관을 누르면서 경색이 온 부분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게 분명했다. 그래도 굳이 설명하지 않으시려는 교수님의 마음을 믿었다. 믿고 싶었다. 아무래도 경색이나 제거보다는 뇌부종이 경미하니까.

 ‘굳이 알 필요가 없는, 예후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 사소한 문제라서 그냥 넘어간 것이겠지.’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이 없냐고 물으시는 교수님께 할까 말까 고민했던 질문을 조심스레 꺼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재발하게 되면 어떻게 되나요?
그때는 다른 약을 쓰게 되어요.


 교수님은 두 종류의 약을 언급하며, Temodal보다는 효과가 떨어지며 부작용도 크다고 하셨다.

 ‘아, 젠장. 재발하면 종말을 각오해야 하는 건가.’


그렇군요. 설마 재발하겠어요. 감사합니다.


 심란한 마음을 부모님께 들키지 않으려 재빨리 인사하고 나왔다. 방사선 치료를 다시 한다거나 등의 다른 방법도 이루어지는지 물어보려다가 말았다. 괜히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가둬두었던 종양의 악령이 빠져나와 다시 머리에 들러붙지 않을까 하는 미신이 입을 막았다. 그걸 알게 됨으로써 마음이 더 암울해질 것 같아 두려워졌다. 회피했다.

 ‘들어봤자 똑같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머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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